대한민국에는 전통적으로 5대 갈등이 존재한다. 그 첫 번째는 이념갈등, 두 번째는 계층갈등, 세 번째는 지역갈등, 네 번째는 세대갈등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꼽혀온 갈등은 생물학적 다름에서 비롯된 사회적 차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바로 양성갈등이라 불러온 문제인데 요즘은 이를 ‘양성’으로 표현하지 않는 추세이다. 성별을 단 2개로 구분하지 않는 인권 차원의 세계적 흐름 때문이다. 과거 양성평등을 이제는 성평등이라고 부른다. 성별이 양성, 즉 2개가 아니면 몇개냐고?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존중을 중심으로 LGBT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꾸준히 변화해 왔지만 어쩌면 ‘성’이란 그 민감한 스펙트럼을 잘게 구분하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 개체수만큼이나 다양해질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어쨌든 전통적으로 인식하고 표현해온 양성갈등, 남과 여의 갈등은 시대가 바뀌면 나아질 줄 알았건만 더 격화하고 심화하는 것 아닌가 큰 걱정이다. 이 문제를 언급하고 건드리면 어떤 대목에서는 실수하기 십상이고, 싸움이 가라앉기는커녕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커지는 형국을 겪다 보니 식자들은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제목만으로도 ‘차이’를 체감시켰던 한권의 책, 이젠 고전이 되어버린 책 한권의 표지가 떠오른 것이다. 부부갈등 상담을 30여년 하고 이 책을 저술했다는 그레이 박사가 아니더라도 부부상담은 상담심리학에서는 이미 자리 잡은 주요영역이다. 그만큼 갈등이 심하다는 반증도 되겠다.
SF문학에서는 고전이 된, 올더스 헉슬리의 1932년작 <멋진 신세계>에 그려진 미래사회에는 결혼이 없다. ‘사랑’이니 ‘모성’이니 ‘엄마,’ ‘어머니’ 같은 단어는 금기어일 뿐만 아니라 입에 올리기에 낯뜨거운,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원시적인 미개언어로 여겨지는 세상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아이는 어떻게 낳나? 종족의 번식은 어떻게 도모하나? 생식의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나? 생물학적 재생산이 궁금해지겠지. 소설 속 그 시대에는 인간은 지배계급부터 노동계급까지 4개의 계급으로 구분돼 ‘생산’된다. 인공수정되고 인공부화(?)돼 하나의 세계관이 주입되며 집단양육되는 세계이다. 지금 우리가 달력에 쓰는 기원전, 기원후의 ‘서기력’은 멋진 신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대신 대량생산의 아버지, 자동차왕 헨리 포드의 등장을 기원으로 ‘포드력’을 쓴다. 남녀 간의 자유연애는 무제한 허용된다. 그 시대의 ‘성’은 노동생활의 스트레스를 푸는 ‘쾌락’의 기재로만 작동한다. 그 세계는 분명 디스토피아로 그려져 있다.
우리는 당대의 젠더와 섹슈얼리티가 지닌 파괴적 갈등을 어떻게 접근하고 풀어야 할 것인가? 필자가 생각하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난제임에 틀림없다. 모르겠다. 하지만 적대감만 농축돼 가는 침묵이 해결책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디지털 가상세계 속에 폐쇄돼 대안을 찾는 자기 위안의 독방에서 광장으로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를 넓히는 담론의 장을 구축하고 소통해야 하는 방향이 필요하다. 말도 안 통하고 전혀 다르게 생긴, 심지어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와도 공존을 말하는데 어쨌든 우리는 같은 ‘인간’이고 차이점 못지않게 공통점도 많지 않은가. 화성의 숫종족과 금성의 암 종족이 지구에서 평화롭게 더불어 살 길이 찾아지기를 기도해본다.
<최영일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 이사·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