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가 이 책 좀 읽어줬으면

최미랑 뉴콘텐츠팀 기자
2021.01.18

중학생 때 나는 내가 싫었다. 학교는 너무 이상한 곳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 시스템의 최고 수혜자였다. 선생님들은 나를 예뻐했다. 나는 그들의 친절함이 내가 아닌 성적을 향한 것이라고 의심했다. 이웃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시험 점수가 떨어진 학생에게 인사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세상이 궁금했지만, 학교 밖으로 나갈 꿈을 꾸지 못했다. 외고에 입학했다. 모의고사 때마다 벽에 붙는 등수를 외면하기 어려웠고, 다시 등수 경쟁에 내 젊음을 팔았다. 저항할 대상을 찾지 못하자 칼날이 또다시 스스로를 향했다. 고문 같은 공부를 강철 같은 의지로 이겨내지 못하는 자신을 질책했다.

호밀밭

호밀밭

10대 시절을 왜 그렇게 보낼 수밖에 없었을까. 부끄러움만 커지는 채로 30대 중반이 되어버렸다. 그동안 어른들이 이렇게 세상을 망쳐왔다고 탓할 수가 있었는데, 이제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할 것 같다. “얘들아, 미안해. 너희 때는 다를 줄 알았어.” 여전히 줄세우기를 위한 정답 맞추기가 기본값이고, 이것을 안 하기로 한 아이들은 차별에 허덕인다. 어느 장관후보 부부가 자녀의 앞길을 닦아주려 벌인 온갖 일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동안에도 공장에선 사람이 매일 죽어나갔다. 대학 같은 건 안 나와도 된다고, 용꿈만 안 꾼다면 붕어든 개구리든 가재든 개천에서 행복할 수 있다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허태준은 부산에서 한 공고를 졸업하고 공장에서 3년 7개월간 일했다. 그 경험을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에 담아냈다. 읽다 보면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 싶어 머리가 아득해진다. 어떤 청춘들을 사회의 가장자리로 내몰아버리고 온갖 짐을 스스로 지게 하는 것은 너무나 부당하다. 생수회사에 실습을 나갔다가 목숨을 잃은 이민호군이나 콜센터에 실습을 나갔다가 실적 압박을 못 이겨 세상을 등진 홍수연양의 일상도 저자가 그린 모습들과 엇비슷했을 것이다.

노동과 교육 현장의 갖은 모순 앞에 저자가 자꾸 “부끄럽다” 할 때, 학벌주의의 수혜를 입고 제도권 언론에 들어와(우리 회사에는 고졸 기자가 없다) 오늘 이 지면에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왜 부끄러움이 당신의 몫이냐고, 자격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말을 건네고 싶어진다.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며 10대 시절을 보낸 나도 당신의 글에 크게 위로를 받았다고.

작가 이슬아의 말을 빌려 표현하면 허태준은 자신의 삶을 정말로 “부지런하게 사랑”한 것 같다. 고된 노동과 부당한 일, 차별받은 경험과 저항의 기억을 세심하게 성찰해 아름답게 그려냈다.

실습 나간 공장에서 초과근무와 사내폭력을 겪고 세상을 떠난 고 김동준군 어머니를 만난 날에 대해서는 이렇게 썼다.

“버스에서 오랜만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무언가를 달라고 기도하지는 않았다. 용기나, 지혜나, 인정이나 자격을 얻길 바라지 않았다. 다만 하나만 가져가 주기를. 가져가서 다시는 돌려주지 않기를. 옳은 일을 할 때, 억울함이 없게.”

혹시 가수 아이유가 이 책을 보았을까. 대학에 가지 않고 꿋꿋이 길을 닦아 세상을 위로하는 예술가로 성장한 그가 어디선가 이 책을 소개해주는 게 올해 내 바람이다.

‘꼬다리’는 어떤 이야기나 사건의 실마리를 뜻하는 꼬투리의 방언이다. 10년차 이하 경향신문 기자들이 겪은 일상의 단상을 소개한다. ‘꼬’인 내 마음 ‘다’ 내보이‘리’라는 의미도 담았다.

<최미랑 뉴콘텐츠팀 기자 rang@kyunghyang.com>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매체별 인기뉴스]

    • 경향신문
    • 스포츠경향
    • 주간경향
    • 레이디경향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