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반지성주의」

정승민 독서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
2020.11.23

미국 반지성 풍조는 건국 초기의 유산

독립전쟁으로 근대 민주주의를 세운 미국이 흔들리고 있다. 대통령을 뽑는 투표는 끝났지만 선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패배한 트럼프 대통령은 부정선거라는 입장이다. 자신이 민 후보의 낙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대중은 믿고 싶은 정보와 의견만 받아들이면서 확증편향을 강화하고 있다. 신문과 방송을 내세운 악의 세력이 미국을 나락에 빠뜨렸으며 음모의 주체는 민주당에서부터 중국까지 다양하다. 시간이 경과하면 사실이 드러난다는 경험칙은 요즘 같은 탈진실의 세상에서 유효하지 않은 것 같다. 한마디로 반지성의 시대다.

리처드 호프스태터 지음·유강은 옮김·교유서가

리처드 호프스태터 지음·유강은 옮김·교유서가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반지성 풍조가 건국 초기부터 내려온 유산이라는 지적이다.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미국의 반지성주의>에서 미국 역사와 사회의 특성을 반지성주의라는 키워드로 규명한다. 그에 따르면 반지성은 “정신적 삶과 그것을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의심이며 또한 그러한 삶의 가치를 얕보려는 경향”이다. 상대적으로 지성은 물질이나 세속적 가치를 몇 걸음 떨어져 바라보려는 자세다. 때문에 지성은 반성이다. 정치나 공동체가 극단으로 쏠리는 것을 막아주는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만약 지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사회의 퇴행이나 타락은 불가피할 것이다.

호프스태터는 1950년대 초반 횡행하던 매카시즘을 의식하면서 반지성주의의 연원을 추적하는 것으로 미국사회의 자기교정을 시도한다. 그에 따르면 미국 문화의 출발선은 유럽의 귀족주의에서 벗어나면서다. 전통적으로 지성이나 교양은 귀족과 같은 특권층의 독점적 문화자본이었다. 하지만 신생 독립국 미국에서는 신분이나 계급을 내세우지 못하므로 경제적 성공이 최고의 척도가 된다. 이렇게 해서 물질주의와 평등주의는 반지성의 역사적 토양이 되었다. 무엇보다 미국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온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다. 책보다 설교 위주의 복음주의가 맹위를 떨치는 나라다. 지성인의 사색과 숙고 대신에 대중의 열광과 감성이 득세하는 분위기다. 지금도 진화론에 반대하는 교육이 성행하고 근본주의적 종교가 부활하는 것도 반지성의 영토가 축소되기는커녕 여전히 강고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전문가와 지식인에 대한 불신과 혐오도 강렬하다. 귀족계급의 위계와 억압에 분개하는 것처럼 소수의 인텔리가 다수의 대중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상상의 구도를 만들고 적대하는 것이다. 무명의 매카시 의원이 국무성의 엘리트 관리들을 반역자로 낙인찍을 때 거국적 광기가 분출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주기적으로 반지성을 표방하는 정치인들은 국민 스타가 된다. 1950년대의 매카시나 21세기의 트럼프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정치의 타락을 가져오는 반지성주의의 후과가 국민의 몫이라는 것이다. 매카시즘이 풍미한 미국은 얼마 안 가 소련에 과학기술의 주도권을 빼앗겼다. 이른바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미국은 전문가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풍조를 일신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과학적으로 대처하는 파우치 전염병연구소장에 불만을 품는 지금의 아메리카는 대체 어떤 충격을 받아야 제자리로 돌아갈까.

<정승민 독서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매체별 인기뉴스]

      • 경향신문
      • 스포츠경향
      • 주간경향
      • 레이디경향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