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위법한 공무집행

백인성 변호사(KBS 법조전문기자)
2020.11.09

법원은 “위법한 공무집행에 대항하는 것은 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상해를 가한 행위는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근거 없는 위력 행사를 지시했던 공무원들은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았다.

전북평화와인권연대 등이 지난 10월 14일 전주교도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주교도소 내의 인권침해를 진상 조사하고 보호장비 착용 법령을 개정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북평화와인권연대 등이 지난 10월 14일 전주교도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주교도소 내의 인권침해를 진상 조사하고 보호장비 착용 법령을 개정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A씨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였다. 그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받고 서울구치소 제9동상 소용동 1실에 수감됐다. A씨는 2014년 7월 ▲하절기 순시점검 시간 반바지 착용 금지 ▲외국인 분리수용 문제 등을 이유로 교도소장 면담을 신청했다. 그러나 소장은 A씨를 면담하지 않았다.

같은 달 17일 보안과장과 기동대장, 교도관들이 순시점검 시간에 A씨가 수용돼 있던 1실을 지나가자 A씨는 수용실 안에서 “강제탄압 중단하고, 소장이 직접 면담하라” 등의 내용을 큰소리로 외쳤다. 보안과장이 10실 부근을 순시할 즈음 A씨는 한 번 더 같은 구호를 반복했다. 보안과장은 기동대장에게 “A씨를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기동대장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교도소장을 면담하도록 A씨 요구를 들어주거나 면담이 불가능한 이유를 설명하는 대신 A씨에게 “소란행위에 관한 기초조사를 할 것이니 관구실로 가자”고 했다. 기동대장은 이때 A씨가 ▲소란행위에 대한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거나 ▲타인 또는 자신에 대한 위해 우려가 있다는 언급 등을 하지 않았다. A씨는 “소장 면담을 요구하는 의사를 전달한 것일 뿐 소란을 피운 바 없다”며 조사실행을 거부했다.

기동대장은 A씨에게 “강제로 조사실에 데리고 가겠다”라고 경고하고 기동대원들을 시켜 A씨의 사지를 붙들고 강제로 조사실로 끌고 갔다. A씨는 단식으로 인해 신체 상태가 좋지 않아 버티지 못했다. 기동대원들은 A씨를 조사실 의자에 앉히려고 시도했다. A씨는 이를 거부하며 조사실 밖으로 나가려 했다. 실랑이가 벌어졌다. 기동대원들이 “수갑 등 계호장비를 착용시키겠다”라고 경고하자 A씨는 다시 의자에서 일어나 몸부림을 쳤다. 그 과정에서 A씨는 교도관을 밀어 함께 넘어졌고, 이 교도관은 염좌 등을 입었다. A씨는 재판에 넘겨졌다. 공무집행방해 및 상해 혐의였다.

대한민국 헌법은 기본권을 제한하려면 법률에 근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구치소가 수형자를 징계하는 건 형벌이 당연히 예정한 기본권 제한에 해당하지 않고, 별개의 불이익 조치에 해당한다. 따라서 수형자 신체의 자유를 통상의 수형 상태보다 더 제한하기 위해서는 법률의 규정이 필요하다.

당시 교도관들이 A씨를 조사실로 데려가 의자에 앉히려고 한 행위의 근거는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형집행법)’ 제110조였다. 이 조항에 규정된 ‘조사를 위한 분리 수용’을 하기 위해선 두 가지 경우에 가능하다. 그 수용자가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는 때,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거나 다른 수용자의 위해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는 때다. 그러나 A씨는 이런 경우가 아니었다.

결국 법원은 “위법한 공무집행에 대항하는 것은 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상해를 가한 행위는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재판은 대법원이 검찰의 상고를 기각해 지난달 확정됐다. A씨가 재판에 넘겨진 지 7년째 되는 해였다. 근거 없는 위력 행사를 지시했던 공무원들은 그동안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았다. 기소도 없었다. 형기를 마친 A씨는 감옥을 나왔고, 이 일은 결국 없던 것이 됐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부조리는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

<백인성 변호사(KBS 법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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