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이 받은 ‘행운의 편지’

이재덕 뉴콘텐츠팀 기자
2020.11.02

“이 편지는 스웨덴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따라 지구를 여덟바퀴 돌았으며, 35일 안에 당신 곁을 반드시 떠나야 합니다.” 편지의 지시를 따르면 행운이, 그렇지 않으면 저주가 내린다는 ‘행운의 편지’가 21대 국회의원들에게 전해졌다. 흔히 보는 익명의 고약한 장난 편지가 아니라 ‘다음 세대’인 청소년들이 보낸 엄중한 경고의 편지다. “당신은 국민이 깨끗하고 쾌적한 지구 환경에서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음에도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기후 역적’으로 역사 교과서에 남겨질 것입니다. 석탄산업의 경쟁력과 수익성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당장 코앞의 이익만을 챙기려다 국가 환경과 경제를 망친 자라는 설명이 따라붙을 것입니다. 다행히도 이 저주를 막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이 진행한 ‘21대 국회에게 청소년들이 보내는 행운의 편지’ 웹페이지 화면 / 청소년기후행동

청소년기후행동이 진행한 ‘21대 국회에게 청소년들이 보내는 행운의 편지’ 웹페이지 화면 / 청소년기후행동

편지는 국회의원들이 ‘기후 역적’의 저주에서 벗어나려면 ①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을 즉각 중단하고 ②금융기관들의 석탄산업 투자를 금지시키고 ③2030년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배 이상 강화하고 ④2030년까지 석탄발전을 모두 중단하고 ⑤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총회에서 한국 등 195개국이 채택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 내용을 달성하기 위한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는 2018년 인천 송도에서 열린 제48차 IPCC 총회에서 발표된 것으로, 세기말까지 지구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배출량의 최소 45% 수준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과 흡수가 완전히 상쇄돼 총배출량이 ‘0’이 되는 ‘넷 제로(net-zero)’가 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편지는 “기후재난이 더 강하게, 더 자주 닥쳐온다면 ‘미래세대’라 불리는 청소년에게 안전한 미래는 없다”며 “엄중한 경고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당신이 가진 책임과 권한을 제대로 발휘하라”고 요구했다. 현재(10월 20일 기준)까지 이 편지에 응답한 의원은 정의당 장혜영 의원뿐이다. 그는 “제가 살면서 받아본 가장 엄중하고 무서운 편지”라며 5가지 지시를 이행하겠다고 답했다. 장 의원은 또 ‘저주를 피하기 위해’ 행운의 편지를 다른 의원 3명에게 보냈다.

우편을 나르는 각국의 우체국들도 이산화탄소와 메탄 등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10년 전 한국의 우정사업본부도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의 20%를 감축하는 내용의 ‘그린포스트 2020’을 발표했다. 전기차를 도입하고, 나무 심기, 태양광 발전 지원 사업 등도 벌였다. 하지만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은 오히려 온실가스가 증가세에 있다. 영국의 기후변화 전문 미디어 ‘클라이밋 홈 뉴스’는 한국을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세계 4대 ‘기후 악당’으로 꼽기도 했다. 한국 등 각국 정부는 올해 말까지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을 유엔에 제출해야 한다. ‘탄소 제로’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됐지만 산업계 반발이 만만찮다. 우정사업본부 역시 석탄화력발전에 투자해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린포스트 2020’ 이후 우정사업본부는 어떤 답을 제시할까. 우리는 영원히 ‘기후역적’으로 남을 것인가. 모두가 행운의 편지에 답을 할 때다.

<이재덕 뉴콘텐츠팀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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