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분쟁 휘말린 그림책 <구름빵>

박기태 법무법인 한중 소속 변호사
2020.10.19

백희나 작가가 쓴 <구름빵>이라는 책이 있다. 세계적 아동문학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40여만부가 팔리는 등 흥행에도 성공한 그림책이다. 그러나 이 책을 검색하면 나오는 이야기는 온통 분쟁 이야기뿐이다.

<구름빵>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먹을거리인 빵에 구름을 합쳐 ‘하늘을 나는’ 상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회사에 늦을세라 아침도 못 먹고 나간 아빠한테 빵을 갖다 주는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 한솔수북 제공

<구름빵>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먹을거리인 빵에 구름을 합쳐 ‘하늘을 나는’ 상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회사에 늦을세라 아침도 못 먹고 나간 아빠한테 빵을 갖다 주는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 한솔수북 제공

신인 작가였던 백희나 작가는 출판사와 ‘저작물 개발 용역’ 계약을 체결한다. 원칙적으로 작가가 회사의 용역에 따라 작품을 생산하는 것이기에 저작재산권은 회사에 부여되는 계약이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작품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는 점, 작가는 위험부담 없이 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 점이 장점이지만, 이후 저작재산권을 작가가 전혀 행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 소지가 있었다.

역시나 문제는 책의 성공으로 발생했다. 이후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 2차 콘텐츠가 나오게 됐는데 백희나 작가는 이에 대해 수익을 거두지 못함은 물론 의견을 내지도 못했다. 백희나 작가는 자신이 만든 작품에 아무런 권리 행사도 할 수 없다는 것은 불공정하다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계약 당시 책의 성공여부를 알 수 없는 상태였기에 계약이 불공정하다 볼 수 없고, 작가가 계약의 내용을 알고 계약을 체결한 것은 유효하다면서 백 작가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후 작가는 억울함을 호소했고, 출판사는 자신의 위험부담과 홍보활동으로 책이 성공하게 된 것이라는 점을 이야기하며 작가의 인격을 비난하기도 했다.

법적 관점에서 보면, 이 쟁점은 아이돌과 기획사 간의 계약 문제에 대한 쟁점과 거의 흡사하다. 비슷한 문제들이 사회 여러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적 자치의 원칙(계약 자유의 원칙)은 근대법의 대원칙이므로, 작가가 계약의 내용을 이해하고 자신의 의사에 따라 계약했다면 계약의 내용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 현대가 되어 법은 계약 자유뿐 아니라 계약 공정을 고려하게 되었으나, 계약 체결 당시 불공정하다 볼 수 없다면 이후 성공에 따른 이익 분배가 불공정해 보이더라도 이에 대해 불법이라 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구름빵’ 사건 이후 여러 법안이 나왔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자유로운 계약을 막는 것은 오히려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출판사가 윤리적 비난을 억울해하고 작가를 비난까지 하는 것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저작물은 재산권이면서 예술 작품이고, 일반인들은 예술품에 대한 작가의 애착에 더 공감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예술의 특질을 감안하면 윤리적 비난은 회사가 내용 등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 작품에 대해 ‘용역 계약’을 체결한 이상 감수해야 할 몫이고, 대중의 비난으로 출판사가 경제적 손해를 본다 해도 역시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이번 일은 업무상 관계에서 인지상정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고, ‘계약서 없음’이 믿음의 징표로까지 여겨지는 사회의 한 단면이다. 이를 막기 위해 국가는 표준계약서를 배포하거나, 계약 체결 단계의 예술가에게 법률적 도움을 줘야 할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작가들이 계약의 내용을 꼼꼼히 검토하고,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생각하며, 전문가의 법적 검토를 받아 계약을 체결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있을 수 없다. 부디 앞으로는 법적 지식의 불균등이 결과적 불공평으로 이어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박기태 법무법인 한중 소속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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