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인생사 보편적 주제에 대한 사색과 통찰

정승민 독서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
2020.08.24

‘중동의 파리’ 베이루트에서 핵폭탄급 폭발 사고가 터졌다. 내전으로 황폐해졌던 시가지가 이번엔 초토화된 것이다. 폭발로 형성된 버섯구름은 과거의 히로시마를 떠올리게 할 만큼 무시무시했다. 대부분의 참사가 그렇듯이 고질적 부정부패에 따른 인재(人災)라고 한다.

칼릴 지브란 지음·류시화 옮김·무소의뿔

칼릴 지브란 지음·류시화 옮김·무소의뿔

대가를 치르는 것은 시민이다. 수많은 목숨이 스러지고 무수한 가옥이 허물어져 생존자들은 길바닥에 나앉을 지경이다. 아랍권에서 이슬람과 기독교가 그나마 절충점을 찾고 공존해온 레바논의 진로는 안개에 휩싸이게 됐다. 그럼에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베이루트 시민은 다시 일어설 것이다. 무너진 건물을 재건하고 부서진 도로를 이을 것이다. 문제는 금이 간 마음이다. 무엇으로 참사가 안긴 트라우마를 극복할 것인가.

레바논의 상처는 레바논의 정신으로 치유해야 한다. 20세기의 성자 칼릴 지브란이 바로 주인공이다. ‘영혼을 고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처럼 지브란은 애국자였다. 까마득한 시절 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한 페니키아의 후예들이 그 후 오랫동안 외세의 지배와 탐욕에 시달리고 있다고 그는 절규했다. 마론파 기독교인인 지브란의 가슴에는 무함마드와 예수가 함께 들어 있었다.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는 레바논의 포용성과 개방성을 상징하는 인물답게 그가 지은 <예언자>는 바이블과 코란의 교직으로 구성된 산문시와도 같다. 베스트셀러의 단골 관형어구인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이 남세스럽지 않을 만큼 1억부가 넘게 팔렸다고 한다.

지학(志學)의 나이에 초고를 썼지만 좀 더 ‘향기와 맛과 빛깔’이 여문 다음에 발표하라는 어머니의 충고에 따라 숙성의 시간을 거쳤다. 자칫 ‘중2병’에서 나온 치기와 감상(感傷)의 부산물로 오해할 수 있지만 결코 아니다. 사랑과 결혼부터 자유와 노동까지 인생사의 단계마다 부각되는 보편적 주제를 깊은 사색과 통찰로 담아내고 있다. 게다가 사회적 원리에 대한 인식도 혁명적이다. 죄와 벌을 언급한 대목은 가해자의 가책성과 더불어 피해자의 유책성까지 전체적으로 포괄하면서 정의와 심판에 대한 관념을 재구성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노동 또한 사나운 팔자소관이 아니라 ‘이 땅의 가장 깊은 꿈의 한 토막’을 성취하는 것이기에 일하지 않는 모든 지식은 쓸데없다고 꾸짖는다.

무엇보다 지브란은 초월과 탈속의 탈을 쓰지 않고 담담히 우리 곁에 함께 있는 친구로서의 매력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예언자>가 인생의 가시밭길을 만난 방황하는 영혼들에 호소력이 있는 것이다. 나이 60에 ‘십자가도 거짓말이고 아미타불도 빈말’로 다가올 만큼 삶의 위기에 처한 함석헌 선생이 이 책을 “어둠을 밝히는 영원의 노래”라고 극찬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기어이 <예언자>를 우리말로 옮긴 그는 지브란이 죄인인 자신의 친구가 되어주고 일으켜주었다고 말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욕을 하고 돌을 던질 때 같이 아파하는 단 한 사람은 바로 어머니가 아닌가. “또 다른 여인이 나를 낳으리라”는 예언자 알무스타파의 말처럼 지브란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 그 누구에게나 다정한 어머니로 거듭나고 있다.

<정승민 독서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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