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삶의 대변자가 될 수 있을까

김주연 연극평론가
2020.08.24

키이란 헐리가 쓰고 부새롬이 연출한 <마우스피스>는 슬럼프에 빠진 극작가 리비와 불우한 환경 때문에 예술적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고 있는 데클란,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연극이란 무엇인지 성찰하게 만드는 연극이다. 극 중 리비와 데클란이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는 장면. 자신을 극작가라 소개하는 리비에게 데클란은 묻는다. “극작가의 ‘극’이 뭐예요?” 여기에 리비는 잘 대답하지 못한다. 평생 극을 써왔으면서도 정작 ‘극’이란 게 대체 뭔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연극 <마우스피스>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이야기, 즉 연극에 관한 연극이라 할 수 있다.

연극열전 제공

연극열전 제공

제목인 ‘마우스피스’에는 대변자란 의미가 있다. 이 작품에서 마우스피스는 두 가지 층위에서 그 의미와 한계를 보여준다. 일단 드라마적인 구성에서의 마우스피스. 어려운 형편상 자기 목소리를 내기 힘든 데클란의 삶을 소재로 한 연극을 집필함으로써 리비는 데클란의 목소리를 무대 위에서 들려주고 세상에 널리 알린다. 그러나 좀 더 본질적인 차원에서 이 작품은 연극이 과연 현실의 삶을 대변하는 마우스피스가 될 수 있는지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삶의 동력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던 리비는 데클란을 만나면서 작가로서 그의 삶을 극으로 쓰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처음부터 그의 삶에 소재적으로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리비는 진심으로 데클란의 재능과 그의 불우한 환경에 안타까움을 느꼈고, 그의 삶을 무대 위에 진정성 있게 그려내 널리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데클란의 비극적 삶을 소재로 한 도발적인 작품으로 재기에 성공했고, 이미 자기 작품 속 인물과 세계에 빠진 뒤에는 데클란의 진짜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는 점차 작가적 욕망에 빠져 자기 내부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

<마우스피스>는 리비의 글쓰기와 무대 위 이야기가 나란히 펼쳐지는 독특한 극 구조를 보여준다. 리비가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하면 무대 위에 그의 글이 글자로 새겨지면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식이다. 첫 장면부터 후반부 클라이맥스 장면까지 무대 위의 모든 이야기와 리비의 글은 거의 동일하게 진행되면서 삶을 담은 연극, 현실을 비추는 연극의 힘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자신의 삶이 연극으로 공연되고 있는 극장 무대에 현실의 데클란이 뛰어들면서 이 구조는 갑자기 깨져버린다. 무대 위 리비가 쓰고 있는 글과 데클란의 실제 행동은 전혀 다르게 펼쳐진다. 리비는 자신의 연극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이야기를 써내려가지만, 데클란은 리비의 대사와는 전혀 다른 말과 행동을 하며 극장을 뛰쳐나간다. 그리하여 마지막 장면에서 이 작품은 리비와 데클란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서로 다른 결말을 제시한다. 작가가 이러한 결말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결국 연극은 현실과 같지 않으며 그러므로 결코 현실의 대변자, 마우스피스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일 뿐이다.

9월 6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김주연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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