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오공이 속끓일 때 먹었다는 다래 열매 미후도

권혜진 청효대동한의원 원장
2020.05.18

얼마 전 다래가 면역 과민반응에 개선 효과가 입증됐다며 다큐멘터리 제작 자문 요청이 왔다. 한약재로는 ‘미후도’라고 하여 열매를 쓰기도 하고, ‘미후등’이라고 하여 그 줄기를 쓰기도 한다. <동의보감>에는 맛이 매우 떫고, 서리를 맞은 후에야 달아져서 먹을 수 있다고 하니, 홍시철에 이 다래도 먹음직스러워지나 보다.

다래는 한국의 산에 널리 자생하는 열매이다. 다래의 열매는 갈증을 없애고 열을 해소시키고 소변을 누는 데 도움을 주며, 가지와 잎은 구충제로 유용하다./위키피디아

다래는 한국의 산에 널리 자생하는 열매이다. 다래의 열매는 갈증을 없애고 열을 해소시키고 소변을 누는 데 도움을 주며, 가지와 잎은 구충제로 유용하다./위키피디아

<동의보감>에서는 “성질이 차갑고 맛은 달콤새콤하며 독이 없다. 심한 갈증과 번열증(煩熱症)을 해소하고, 석림이라 하여 방광결석으로 소변이 방울방울 나오는 것, 위염과 같은 증상을 치료한다”고 나온다. 사상체질에서는 태양인 반위(反胃)의 처방에 사용된다. 반위증이란 식후에 명치가 그득해지고 답답해 트림이 올라오거나 신물이 올라오는 증상이다. 현대의 역류성 식도염에 해당한다. 복부팽만감과 변비에도 사용된다.

역류성 식도염 환자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만성피로와 과도한 긴장, 풀리지 않은 심리적 갈등을 오랜 기간 끙끙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몸의 리듬을 조절하는 자율신경계 과부하로 실조증(근신경 기능 장애)이 오고, 위장관의 연동운동도 불규칙해지면서 이런 증상은 더욱 악화된다.

40대 후반의 교육공무원이 내원했다. “코로나19 이후 누워서 자본 적이 없다. 눕기만 하면 신물이 올라오고 목부터 명치까지 가슴뼈를 칼로 긁는 통증이 있다. 가스가 차고 쾌변을 못 봐 속이 답답하다. 일도 바쁜데 잠을 못 자니 녹초가 되고 업무처리가 느려진다”라고 호소했다. 식도염약·소화제 등을 먹어도 그때뿐, 몇 달째 힘들어 보약을 지어달라고 한다. 이분의 증상인 역류성 식도염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환자는 정부의 코로나19 관련 긴급조치들을 학교 현장에 전달하고, 현장의 문제점을 상부에 보고해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유례없는 사이버 개학과 수업으로 선생님·학생·학부모가 모두 힘들어한다. 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는 조치지만, 현장에서는 마찰이 심한가 보다. 그 가운데 환자가 보고해도 조치가 느리고, 현장에서는 불만의 소리를 듣다 보니 여간 스트레스가 크지 않았다.

권혜진 원장

권혜진 원장

음식이 체하듯 감정에도 체한다. 소화가 안 될 정도의 압박감은 곧 병을 일으킨다. 이렇게 번열증(煩熱症)이 온다. 번(煩)은 ‘번잡하다’를 뜻한다. 즉 혼돈의 상태라는 뜻이다. 한자를 보면 ‘불화(火)’에 ‘머리 혈(頁)’을 쓰는데 ‘머리에 불이 붙은 혼란스러운, 번뇌하는 모습’이다. 곧 신경과민·신경쇠약·자율신경 실조증을 가리킨다. 초조감과 불안감은 불면증·어깨통증·생리통·편두통·위염·역류성 식도염 같은 증상으로 ‘신체화’된다. 번열을 잡아줘야 하는데 그 처방에 다래, 즉 미후도를 넣는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고려시대 <청산별곡>의 잘 알려진 구절이다. 한적한 산속, 부드러운 산바람과 새소리 들으며 바위에 걸터앉는다. 달콤새콤한 머위·다래를 따 먹으며 나뭇잎에 반짝이는 햇살을 보는 상상만 해도 어깨에 힘이 풀리고 속이 편안해진다. ‘미후’는 원숭이의 한자명이다. 이들이 즐겨 먹는다고 해서 미후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손오공이 방정맞지 않고 고민과 욕심이 많아 속을 끓일 때, 다래를 먹고 마음의 진정을 찾는 모습을 떠올리니 제법 어울린다.

<권혜진 청효대동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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