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극복 ‘발코니의 아리아’

구정은 국제부 선임기자
2020.04.06

코로나19 한파로 전 세계에서 문화·예술·스포츠 행사가 거의 올스톱되다시피 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노래하고, 그림을 그리고, 삶 속의 문화를 지켜나간다. 그 최전선은 ‘발코니’다. 극장이나 콘서트홀에 갈 수는 없어도 발코니를 무대 삼아 사람들은 안부를 전하고 연대의 메시지를 보낸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돼 유럽과 남미 등으로 퍼져간 ‘발코니의 아리아’들은 코로나19 시대를 비춰주는 빛이다.

헝가리 음악가 아담 모세르가 3월 22일(현지시간) 부다페스트의 아파트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헝가리 음악가 아담 모세르가 3월 22일(현지시간) 부다페스트의 아파트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유럽에서 이탈리아 다음으로 감염자와 사망자가 많이 나온 스페인에선 지난 3월 18일 밤(현지시간) 시민 수천 명이 발코니에서 냄비 시위를 했다. 최근 스페인에서는 2014년 퇴위한 후안 카를로스 전 국왕이 재임 시절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1억 유로를 몰래 받았다는 폭로가 터져나왔다. 그런데 아들 펠리페 국왕은 이날 TV 연설에서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자는 말만 했을 뿐 아버지의 부패에는 침묵했다. 이에 성난 시민은 “검은 돈은 우리 의료시스템을 고치는 데 써야 한다”며 발코니에 나와 냄비를 두드렸다.

이날 카탈루냐 지방의 발코니 시위에서는 <파르티잔 투쟁가>로 유명한 이탈리아 민중가요 <벨라 차오(Bella Ciao)>가 냄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울려퍼졌다고 현지 언론 <엘 나시오날>이 전했다. 이탈리아의 빈농들이 부르던 곡인데, 1940년대 이탈리아 반파시스트 저항군의 노래로 유명해졌다. 자유를 찬양하는 가사 때문에 유고 내전 당시에도 많이 불렸고, 환경운동가들이 기후변화에 맞서자는 뜻을 담아 개사곡을 내놓기도 했다. 영화 <두 교황>에도 이 노래가 나온다.

<하늘은 언제나 푸르다>. 이탈리아 가수 겸 작곡가 리노 가에타노가 1975년에 부른 노래다.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다는 의미를 지닌 이 노래가 코로나 시대를 맞아 이탈리아 사람들 사이에 되살아났다. 지난 2월부터 격리가 시작된 이탈리아 북부의 아파트 주민들이 발코니에 나와 노래하는 모습은 유튜브 등으로 세계에 퍼졌는데, 발코니의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가 이 노래다. U2의 보컬 보노는 이탈리아의 발코니 노래들에 감명받아 <당신의 사랑을 알려주세요>라는 신곡을 내놨다.

프랑스의 테너 가수 스테파네 세네샬이 3월 24일(현지시간) 파리의 아파트에서 노래를 부르자 이웃들이 나와 감상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프랑스의 테너 가수 스테파네 세네샬이 3월 24일(현지시간) 파리의 아파트에서 노래를 부르자 이웃들이 나와 감상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춤과 그림도 빠지지 않는다. 마르코 로시라는 밀라노의 한 엔지니어는 발코니에서 탱고를 추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올려 유명해졌다. 유튜브를 비롯한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한 ‘스트리밍 파티’도 등장했다. DJ가 자기 집에서 음악을 틀면, 이를 듣는 이들이 각자 자기 집에서 춤을 추며 영상을 전송한다. ‘모두 잘될 거야(Andra Tutto Bene)’라는 문구와 함께 무지개를 그려 아파트 유리창에 붙이는 것도 이탈리아의 새로운 문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문구가 이탈리아의 ‘비공식 국가 구호’가 됐다고 적었다.

감염증은 온갖 인터넷 유행도 양산하고 있다. 여행안내서 <론리플래닛>을 ‘집’이라 부르고, 감기 기운만 좀 있어도 호들갑 떠는 남자를 ‘독감맨(man flu)’이라 부르는 식이다. 이탈리아 북부 코도뇨에서는 정치인을 풍자한 그림이나 집에서 찍은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리는 ‘코도뇨의 코로나 놀이’가 퍼졌다.

<구정은 국제부 선임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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