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움 뽐내는 국악 퓨전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
2020.01.13

국악 퓨전 영역은 연일 다채로움을 뽐낸다. 일단 우리 전통음악과 다른 장르가 결합하는 기본 방식이 여러 빛깔을 내는 일을 가능케 한다. 주된 융화 대상인 대중음악의 형식이 날로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국악이 어울릴 수 있는 면적도 넓어졌다. 뮤지션 개개인의 음악적 취향이나 연출 역량에 따라서 같은 장르를 선택하더라도 결과물은 모두 다르게 나온다. 또한 각자 취하는 태도와 지향도 영향을 미쳐 작품에 개성이 깃들게 된다. 지난해 12월 출시된 경로이탈, 비단, 심은용의 음반으로 국악 퓨전의 호화로운 면면을 엿볼 수 있다.

경로이탈의 데뷔 EP ‘오늘은 경로이탈’

경로이탈의 데뷔 EP ‘오늘은 경로이탈’

경로이탈의 데뷔 EP ‘오늘은 경로이탈’에 실린 노래들은 그룹 이름과 음반 제목처럼 익살맞다. 전라도 민요 <까투리타령>을 토대로 한 <까.투.리>는 남자 친구가 바람피우는 현장을 덮치는 과정을 희극적으로 묘사해 웃음을 안긴다. 특히 ‘까’를 운율로 정해 감정의 격양을 내보이는 부분이 압권이다. 다른 남자

와 술을 마시다가 남자 친구에게 걸린 여성이 변명하는 모습을 그린 <오해야>도 우스꽝스럽다.

경로이탈은 음악도 튼실하다. 국악 전공자와 서양악기 연주자들이 고르게 분포하는 팀답게 국악과 대중음악의 혼합이 치우침 없이 나타난다. 음악적 견고함도 갖췄기에 지난해 8월 열린 ‘2019 국악창작곡 개발·제13회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 경연에서 대상을 받을 수 있었을 테다. 구성이 단단해서 재기 넘치는 표현이 더욱 돋보인다.

비단의 네 번째 EP ‘도깨비’는 경쾌함과 부드러움을 아울러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 활발한 리듬 진행과 전통악기의 유기적인 조화로 우리의 색채가 진한 ‘펑크(funk)’를 완성한 <도깨비>, 한국 발라드의 정서를 지닌 멜로디와 구슬픈 해금 연주가 서정미를 증대하는 <연리지가>, 탁성을 최소화한 가창과 가야금, 건반이 순수한 느낌을 내는 <은하수> 등 수록곡들은 저마다 역동성이나 정적인 기운을 선명하게 띤다. 이를 통해 형성된 굴곡이 흥미를 제공한다.

비단의 네 번째 EP ‘도깨비’

비단의 네 번째 EP ‘도깨비’

비단은 ‘한국의 보물을 노래하다’라는 표어를 달고 활동하고 있다. 이번 음반 수록곡들 역시 도깨비·경복궁·황진이·첨성대 등 우리의 문화유산과 위인을 소재로 삼았다. 해당 소재에 대한 설명을 다룬 영상들은 도슨트 같은 역할을 한다. 비단의 음악은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거문고 연주자 심은용의 솔로 데뷔 앨범 ‘잔영(殘影)’은 시종 을씨년스럽다. 전자음·색소폰·전기기타·멜로디언 등이 이따금 곁들여지긴 해도 대부분 거문고가 조용히 주연으로 나선다. <불면>·<검은 고요속에도>·<독소>·<어느 잔혹한 동화> 등 제목이 암시하듯 노래들이 보유한 심상이 어두운 탓도 크다.

그녀가 속한 그룹 잠비나이와는 음악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 실험적 접근과 침울함은 남아 있지만 거칠게 휘몰아치던 소리는 온데간데없다. 그러나 이 고요함 안에도 긴장과 이완, 빠름과 느림이 존재한다. 이 차이가 청취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음악을 생동감 있게 느껴지도록 해준다.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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