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피두 상하이’와 한국 문화외교 현실

정필주 독립기획자
2019.12.23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과 더불어 프랑스 파리를 대표하는 3대 미술관인 퐁피두센터가 중국 상하이 분관인 퐁피두센터 웨스트 번드 미술관을 열고 5년간의 운영에 들어갔다. 개원식에는 시진핑 중국 주석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참석했다. 퐁피두센터는 2015년 첫 분관을 스페인 말라가에 개원했으며, 2018년에는 벨기에 브뤼셀의 오래된 자동차 공장을 개조해 ‘퐁피두센터-킹카날’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해 오고 있다. 유럽 대륙을 벗어난 분관으로는 이번 상하이가 처음이다. 퐁피두센터를 유치한 상하이의 예술특구 웨스트 번들 측이 건축비·임대료는 물론 매년 약 35억원에 달하는 전시기획비를 부담한다.

‘퐁피두 상하이’가 개원한 중국 상하이 퐁피두센터 웨스트 번드 미술관 내·외부 경관 / 필자 제공

‘퐁피두 상하이’가 개원한 중국 상하이 퐁피두센터 웨스트 번드 미술관 내·외부 경관 / 필자 제공

‘퐁피두 상하이’를 프랑스 문화외교의 성과물로 선전하는 프랑스 측의 대응은 주목할 만하다. 프랑스 대통령이 직접 시진핑 주석과 만나 상하이 분관에 대해 협조를 요청해 ‘미술관외교’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검열이나 정치 상황 등으로) 중국 진출을 하지 않는 것보다 서구문물의 접점이자 중국의 예술가, 관객 그리고 파트너들과 대화할 수 있는 채널 역할을 하는 것(이 낫다)”이라는 세느주 라스비뉴 퐁피두센터 관장의 말에서는 중국에 대한 서구권 문화예술계의 복잡한 심경을 읽어낼 수 있다. 10여 년 간 준비를 거쳐 소프트파워를 통한 문화교류, 국제정세 속의 외교전략은 물론 전시기획과 소장품의 패키지 수출을 통한 막대한 수익창출을 고려해 진출을 결정한 뒤, 그 성사를 위해 대통령까지 움직인 것이다.

반면, 2016년 ‘퐁피두 서울’ 유치 움직임과 관련해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정부 차원이 아닌 민간 계약 차원에서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계약이 잘 성사되면 국내 미술계에 긍정적이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내용을 알고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경기 화성의 유니버설 스튜디오나 강원 춘천의 레고랜드처럼 국제적인 문화예술 자본·기관 유치사업이 줄줄이 무산되고 있는 이유도 엿볼 수 있다. 순환근무로 인해 때로는 만 1년도 채우지 못하는 정부의 담당 실무자들이 즐비한 가운데, 10년은커녕 12월 예산심사 때만 반짝하는 1~2년 주기의 사업 평가 시스템은 이들 사업을 문화외교 채널로 인식하기보다는 또 다른 개발 호재로만 다루게 될 뿐이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아트바젤 서울’ 등의 유치에 대한 찬반여부나 이해관계로부터 독립돼 있으면서 이 사업들을 부동산 호재가 아닌 소프트파워적 문화외교 측면에서 바라보며 5년이고 10년이고 일관되게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그에 힘을 실어주는 권한과 국제교류 감각을 동시에 가진 예술문화 분야 전문가가 절실한 시점이다. 민간의 능동적 사업 진행을 위해 불가능한 것과 가능한 것을 담당 부관 소처에서 명확히 해줄 수 있고, 사업실패에 대한 책임을 실무자에게 묻는 대신 실패로 얻게 된 노하우를 공유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정필주 독립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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