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사실 공표’와 ‘국민의 알 권리’

박기태 법무법인 한중 소속 변호사
2019.10.07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 관련 수사과정에서 ‘피의사실공표죄’가 논란이 되고 있다. 형법상 피의사실공표죄는 수사기관의 종사자가 직무수행 중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판 청구 전 외부에 알릴 경우 처벌한다는 것이다. 헌법 제27조의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유죄의 판결이 확정되기 전의 피의자를 무죄로 추정하는데 수사기관이 파악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알릴 경우, 여론에 의해 유죄나 다름없다는 판단을 받을 수 있다. 피의자의 반론 기회가 보장되기 힘든 점, 이후 재판 결과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는 점, 재판으로 무죄가 밝혀져도 명예를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는 위험하고, 금지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수사기관이 수사 중인 내용을 직접 브리핑하거나, ‘관계자’라는 이름으로 기자에게 피의사실을 알려 기사화하는 일이 매우 잦은 대한민국에서 실제 피의사실공표죄로 처벌받은 사람은 없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지난 9월 25일 충남 천안시 대전지검 천안지청을 나오고 있다./연합뉴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지난 9월 25일 충남 천안시 대전지검 천안지청을 나오고 있다./연합뉴스

어떤 이들은 미국 등 외국에서는 수사 중인 피의자의 얼굴도 공개하고, 수사내용도 자유롭게 보도된다고 이야기한다. ‘국민의 알 권리’를 토대로 피의사실 공표를 옹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 등의 외국에서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고 피의사실이 보도되는 것은 대개 ‘언론의 자유’와 연관이 더 깊다. 언론이 보도 가치가 있는 뉴스를 보도한 경우 불건전하고 선정적인 엿보기 기사이거나 악의적인 왜곡이 아니라면, 검찰과 법원은 언론의 자유 차원에서 보도를 ‘막을 수 없다’. 수사기관 스스로는 연방검찰의 수사상황 언론 공개 매뉴얼에 따라 판결이나 결정에 실질적 영향을 주지 않는 한에서 공공의 안전, 이익, 복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 홍보담당관 책임하에 브리핑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런 판단 없이 브리핑하거나 언론에 임의로 정보를 제공할 경우 언론의 자유와 별개로 정보를 제공한 자는 비밀누설죄로 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모든 브리핑 뒤에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따라 붙는다.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는 우리보다 미국에서 신중하게 이루어진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공공의 알 권리’가 어디까지 미치는지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추가 피해가 우려되고 범인이 도주 중이라면 지명수배로 얼굴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범인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는 상황이라면 피의사실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국민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 알 권리가 있음은 물론이다. 또 피의자가 정치인 등 공적 인물인 경우 제한적으로 피의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구속 및 압수수색 등으로 이미 신원이 파악되고 증거 수집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피의사실을 공개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일까? ‘공공의 알 권리’는 대중의 흥밋거리까지 포함하는 것일까? 범죄 사실과 수사 대상에 따라 다르겠으나, ‘공공의 알 권리’에 대한 신중한 고찰이 필요하다.

피의사실 공표의 관행은 검찰과 언론의 오랜 관행이라 갑자기 피의사실공표죄를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그러나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여론이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줄이기 위해, 무엇보다 피의사실 공표로 생길 수 있는 억울한 피해자를 막기 위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피의사실 공표의 관행은 바뀌어야 한다.

<박기태 법무법인 한중 소속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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