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어둠과 빛은 정말 동등한 ‘존재’일까?

김태호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
2018.11.19

새롭게 바라본 우주는 뜻밖의 사실을 알려주었다. 우리 눈에는 컴컴하게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어두운 밤하늘 저편에는 사실 매우 많은 존재들이 숨어 있지만, 단지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할 뿐이라는 것이다.

태양이 추분점을 지나면 하루 중 어두운 시간이 더 길어진다. 겨울에 가까이 가는 끊임없는 여정이 한 번 더 시작되는 것이다.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은 어둠의 존재를 새삼 느끼게 된다.

터너 <눈보라: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과 그의 군대>(1812), 영국 테이트 갤러리 소장 / 위키피디아

터너 <눈보라: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과 그의 군대>(1812), 영국 테이트 갤러리 소장 / 위키피디아

대부분의 문명에서 빛과 어둠은 세계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한 쌍이었다. 지역마다 빛의 신과 어둠의 신이 있었고, 그들에 얽힌 갖가지 신화와 제의와 금기가 있었다. ‘어둠’과 ‘빛’이라는 2개의 명사를 짝지어 쓰는 것이 거의 모든 언어에서 어색하지 않은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예로부터 어둠을 빛에 맞서는 독립된 존재로 여겨 왔다.

빛과 어둠은 예술가들의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은 특히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변화들에 주목하여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내었다. 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 터너(J. M. W. Turner, 1775~1851)는 빛과 어둠이 뒤섞인 동틀녘이나 해질녘의 풍경을 탁월하게 묘사하여 이름을 높였다.

파동과 입자의 모습을 모두 보여주는 빛

그런데 잠깐 생각해 보자. 어둠과 빛은 정말 동등한 ‘존재’인가? 곰곰 따져보면 어둠이란 빛이 없는 결핍 ‘상태’인 것이지 빛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빛에 대한 지식들이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되어 나가면서 어둠은 빛의 결핍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졌고 학자들의 관심은 빛의 정체에 집중되었다.

근대화학의 토대를 세운 라부아지에(1743~1794)는 빛도 세상을 이루는 근본물질 중 하나라고 보았다. 그는 뉴턴의 생각을 받아들여 빛도 무게가 없는 작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화학원론>(1789)에서 새로운 원소체계를 제안하면서 빛을 33개의 원소 가운데 하나로 포함했다.

하지만 19세기가 되자 빛을 입자로 이해해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하나둘씩 알려졌다. 대표적인 것이 2개의 빛살이 만나면 서로 간섭하는 현상이었다. 빛이 입자라면 서로를 튕겨낼 수는 있지만 이렇게 섞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19세기 중반까지는 빛을 음파나 마찬가지로 파동의 일종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성행했다.

19세기 후반 전기와 자기에 대한 이론이 통합되어 전자기학(electromagnetism)이라는 학문이 정립되면서 빛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졌다.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은 전자기학을 수학적으로 정리하면서 빛의 정체도 함께 설명했다. 전기장과 자기장이 상호작용하면 전자기파라는 파동이 생겨나는데, 우리가 보는 ‘빛’ 즉 가시광선은 이 전자기파 중 특정한 주파수의 것을 일컫는다는 것이다.

이후 20세기 초 양자역학이 발전하면서 빛을 비롯한 전자기파는 파동의 성질뿐 아니라 입자의 성질도 보여준다는 것이 새롭게 알려졌고, 상대성이론은 물질과 에너지가 사실 같은 것이며 ‘E=mc²’이라는 관계식으로 서로 변환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요컨대 현대과학을 통해 인간이 이해하고 있는 빛이란 ‘파동의 모습과 입자의 모습을 모두 보여주는 특정한 주파수 영역의 전자기파(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현대과학은 빛뿐 아니라 어둠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전자기학과 양자역학, 상대성이론 등을 활용하여 인간은 자신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먼 우주 또는 과거의 우주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가설을 세우고 계산하며 그 결과를 현재의 실험값과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반타블랙(Vantablack) 도료를 바른 알루미늄박. 빛을 모두 흡수하여 마치 알루미늄박 가운데가 비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 위키미디어

반타블랙(Vantablack) 도료를 바른 알루미늄박. 빛을 모두 흡수하여 마치 알루미늄박 가운데가 비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 위키미디어

그렇게 새롭게 바라본 우주는 뜻밖의 사실을 알려주었다. 우리 눈에는 컴컴하게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어두운 밤하늘 저편에는 사실 매우 많은 존재들이 숨어 있지만, 단지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할 뿐이라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이 계산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만유인력의 크기를 설명하려면 우리 눈에 보이는 천체들로는 턱없이 모자라다. 우리 눈에 보이는 각종 천체들의 약 다섯 배의 질량이 더 있어야 하는데, 이만큼의 질량에 해당하는 존재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암흑물질(dark matters)’ 또는 ‘암흑에너지(dark energy)’라고 부른다. 과학자들은 1930년대부터 암흑물질의 존재를 예측하고 그 정체를 밝히고자 연구해 왔지만, 아직까지 그다지 많은 것을 알아내지 못하였다.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실재하는 어둠’

또한 어떤 별들이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 변신하여 만들어내는 ‘블랙홀’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천체다. 블랙홀의 중력이 너무 세어 그 주변을 지나는 빛도 빠져나오지 못하므로 우리 눈에 그냥 검게 보이는 것이지, 블랙홀은 엄연히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또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이런 ‘실재하는 어둠’을 인공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2014년 영국의 서리 나노시스템(Surrey Nanosystems)이라는 기업은 ‘반타블랙(Vantablack)’이라는 신물질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름 가운데 반타(VANTA)란 ‘수직으로 정렬한 탄소나노튜브’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반타블랙은 평면 위에 탄소나노튜브가 빼곡히 서 있는, 마치 칫솔모와 비슷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이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은 사물 표면에서 반사된 빛이 인간의 눈으로 들어오기 때문인데, 반타블랙의 표면에 닿은 빛은 탄소나노튜브 기둥 사이로 흡수되어 버리므로 거의 반사되어 나오지 못한다(가시광선은 99.6%까지 흡수된다). 이 덕에 반타블랙은 지금까지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안료 가운데 가장 철저한 어둠을 구현한다.

이 인공적인 어둠은 의외로 쓸모가 많다. 망원경이나 카메라 등 광학기기의 내부에 반타블랙을 바르면 빛이 손실 없이 관찰자의 눈까지 도달하므로 기기의 성능을 크게 높일 수 있다. 또한 태양전지나 군용 위장무늬 등에도 활용할 수 있다.

현대과학은 어둠이 빛의 결핍이 아니라 스스로 존립할 수 있는 물질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과학은 우리가 감각으로 경험하는 것을 설명하는 데서 출발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자주 우리 감각과는 다른 사실들을 알려주곤 한다. 이렇게 과학이 알려주는 새로운 사실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이 인지하는 세계가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어 더욱 넓고 깊어졌다고도 말할 수 있다.

<김태호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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