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비타민, 안 사도 되는 것을 사게 만들기

김태호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
2018.10.08

밥에 현미를 조금 섞는 것만으로도 각기병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지는 마당에 결핍증을 예방하겠다는 소극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비타민을 먹으면 더 좋은 일이 생긴다고 소비자들을 설득해야 했던 것이다.

현대인이 평생토록 먹는 약의 종류와 수는 백년 전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늘어났다. 그 중에는 치료약 뿐 아니라 비타민과 같은 보충제도 큰 몫을 차지한다. 사진은 2003년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전시된 작품 ‘Cradle to Grave’ / Pharmacopoeia.

현대인이 평생토록 먹는 약의 종류와 수는 백년 전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늘어났다. 그 중에는 치료약 뿐 아니라 비타민과 같은 보충제도 큰 몫을 차지한다. 사진은 2003년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전시된 작품 ‘Cradle to Grave’ / Pharmacopoeia.

미국의 화학자 윌버 애트워터(Wilbur O. Atwater)는 1896년 야심찬 실험을 벌였다. 단열 밀폐된 방에 들어간 사람이 하루에 어느 정도의 열을 내는지 측정한 것이다. 애트워터와 동료들은 인간이 하루에 얼마나 많은 열량의 음식을 섭취해서 얼마나 많은 열을 호흡과 배설 등으로 내놓는지, 500번이 넘는 실험을 통해 꼼꼼하게 기록해 평균을 냈다.

그 결과 인간의 생명활동도 숫자로 표현하게 되는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 시대에 따라 구체적인 값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모든 성인은 신진대사를 통해 하루 2500에서 3000㎉의 열을 내놓으므로 적어도 그만큼의 에너지를 음식물로 섭취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음식의 가치도 얼마나 많은 칼로리를 공급할 수 있느냐에 따라 매겨졌다. 1906년에는 하루에 먹어야 할 음식의 양을 칼로리 숫자로 표현하는 글이 등장했다.

이렇게 식품의 가치를 모두 칼로리로 환산하자 한동안 채소와 과일이 인기가 없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고기나 곡물과 비교하면 같은 양을 먹었을 때 낼 수 있는 열량이 턱없이 낮았기 때문이다.

위기에 빠진 채소와 과일이 다시 각광받게 된 계기가 비타민의 발견이었다. 비타민이라는 이름이 어차피 나중에 붙인 것이니 ‘영양소 결핍증에 대한 연구’라고 하는 것이 순서가 맞겠다. 오늘날 우리는 비타민이라는 영양소가 한 무리로 발견되었다고 착각하기 쉽다. 교과서에서 비타민 A, B, C, D 등의 특징과 결핍증(야맹증, 각기병, 괴혈병, 구루병 등)을 한꺼번에 묶어서 배우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채소는 빼고 생각하자?

그러나 여러 미량영양소에 비타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하나의 영양소 집단처럼 취급하자는 생각은 중요한 비타민들이 발견된 뒤인 1910년대 중반에야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는 서구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관련이 있다. 비타민 B3를 분리하여 뒷날 노벨상을 받은 풍크(Casimir Funk)가 1912년 제안한 ‘비타민(vitamin·처음에는 vitamine)’이라는 이름도 ‘생명(vita) 현상에 필수적인 아민(amine)계 화합물’이라는 뜻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첫째, 영양소 결핍증이 집단적으로 나타날 조건이 제국주의적 팽창기에 갖춰졌다. 영국이나 네덜란드 등 제국주의 국가들은 넓은 바다를 누비는 수병이 많았다. 이들은 극도로 종류가 제한된 음식물에 의지하여 몇 달씩 단체생활을 했으므로 영양소 결핍증에 걸리기도 쉬웠을 뿐 아니라 그 증상이 매우 쉽게 눈에 띄었다.

1940년의 와카모토 광고.

1940년의 와카모토 광고.

둘째, 제국주의의 발호와 더불어 전세계적인 과학 연구 네트워크가 성립되었다. 영국 해군이 라임주스를 배급하여 괴혈병을 예방하게 되었다는 소식은 금세 네덜란드나 프랑스 해군에 전해졌다. 인도네시아의 네덜란드 과학자가 닭에게 현미를 먹여보고 각기병을 치료했다는 소식도 곧장 논문의 형태로 발표되고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렇게 1920년대 중후반쯤에는 비타민을 비롯한 미량영양소(micronutrients)의 개념이 자리 잡았고, 미량영양소 결핍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평소 식단에도 영양소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보급됐다.

비타민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자 자연히 이를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려는 이들이 나타났다. 그런데 새로운 시장을 열기 위해서는 비타민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밥에 현미를 조금 섞는 것만으로도 각기병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지는 마당에 결핍증을 예방하겠다는 소극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비타민을 먹으면 더 좋은 일이 생긴다고 소비자들을 설득해야 했던 것이다.

맥주 효모로 만든 ‘원기소’와 ‘에비오제’

비타민 연구가 계속되다 보니 비타민이 지닌 여러 효능이 새롭게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소화 보조작용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비타민 B군에 속하는 화합물들은 모두 보효소(coenzyme) 또는 보효소의 선구체로서 세포의 물질대사에 관여하기 때문에 영양소의 소화·흡수 효율을 높여 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나 이를 위해 반드시 보충제를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음식물을 적게 먹는 것보다는 과하게 먹는 것이 문제인 현대 선진국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비타민을 일상적인 식사를 통해 충분히 얻을 수 있다.

그럼에도 선진국의 제약회사들은 소화·흡수에 이바지한다는 논리로 비타민 보충제를 맹렬하게 광고하기 시작했다. 특히 육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주부들을 겨냥한 광고가 쏟아져 나왔다. 성장기 어린이의 비타민 결핍증을 예방하는 것은 주부의 의무가 되었고 건장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식사로 섭취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비타민 보충제를 넉넉히 챙겨 주는 것이 현명한 주부의 선택이라고 광고들은 주장했다.

흥미롭게도 이 과정에서 또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 바로 맥주 효모다. 맥주 효모를 배양하면 효모뿐 아니라 효모의 작용으로 만들어진 매우 많은 종류의 화합물들을 얻게 된다. 그래서 효모를 건강보조식품으로 이용하는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효모를 먹으면 여러 가지 비타민도 함께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맥주 효모를 건강식품으로 응용하는 시도를 시작한 나라는 역시 맥주의 나라 독일이었다. 곧 다른 서구 나라들과 일본도 이를 받아들였다. 일본에서는 거대 맥주회사인 아사히맥주가 ‘에비오스’라는 이름으로 맥주 효모 건강식품을 출시했고, ‘와카모토’라는 회사도 회사 이름을 상표로 한 효모 제제를 선보였다. 에비오스와 와카모토는 구 일본제국 전역에서 상당히 인기를 끌어서, 두 회사 모두 한반도에도 공장을 세우고 제품을 만들어냈다.

광복 후 일본인들이 철수하자 한반도의 공장 설비들은 한국인의 손에 접수되었다. 주인은 바뀌었지만 공장에서 만드는 물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서울약품은 와카모토 공장을 인수하여 ‘원기소’를, 삼일제약은 에비오스 공장을 인수하여 ‘에비오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맥주 효모로 만든 이들 쌉싸래한 알약은 전후 복구와 고도성장을 겪은 세대의 한국인들에게 ‘귀한 영양제’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이제는 비타민제보다는 소화보조제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들 추억의 알약에는 이렇게 긴 역사가 스며들어 있다.

<김태호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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