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이 묻힌 매체의 입장에서 주관적인 억울함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이들이 연달아 특종을 내는 주요 고비 고비마다 ‘저쪽’에선 물타기 정보를 흘려 그 특종기사들을 물먹였다.
제목 충격과 공포
원제 Shock and Awe
제작연도 2017
감독 로브 라이너
출연 우디 해럴슨, 밀라 요보비치, 토미 리 존스, 제임스 마스던
상영시간 91분
영화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18년 9월 6일
이제는 이게 역사가 되었군. 감회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아들 부시가 항공재킷 차림으로 미국 항공모함에 내려 종전을 선언한 며칠 뒤, 기자는 한국의 긴급구호팀과 함께 국경수비대가 사라진 시리아 측 국경을 넘어 이라크에 들어갔다. 14박15일간의 그 취재기간이 돌이켜보면 가장 안전한 때였다. 여러 번 오가서 익숙하던 바그다드 인근의 다리 난간에 불에 탄 미군 병사의 시신이 걸린 외신 보도를 본 것은 그 후 1년쯤 지난 뒤였다.
그리고 2018년 현재, 여전히 미국은 이 전쟁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기자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후세인 독재의 잔재를 청산한 뒤 자유롭고 부강한 이라크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던 바그다드대학교 교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섯 살이었던 교수의 딸은 벌써 15년이 흘렀으니 성인이 되었을 텐데 IS 치하를 잘 견뎌 살아남았을지, 가끔 예전에 찍은 사진을 돌이켜보면 걱정이 앞선다.
이라크 침략 결정의 막전막후
영화 <충격과 공포>는 이런 자막과 함께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실제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그러니까 주인공들이 다니던 언론사 <나이트 리더(knight ridder)>-인기 TV 방영극 <전격Z작전>의 주인공 나이트 라이더(knight rider)가 아니다-가 진짜 있던 언론사라고? 막연하게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에 밀리는 2류 언론사쯤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더 감정이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시사회에서 돌아와 찾아보니 이 회사, 꽤 큰 회사다. 한국과 미국의 언론 소유구조는 조금 다른데, 당시 35개 매체를 운영하고 있는 넘버2의 언론체인 그룹이다. 이 언론그룹의 워싱턴 지부, 그러니까 백악관과 미국 정부 소식을 전담취재해 각 매체에 공급하던 기자들의 이야기다. 모든 언론이 럼즈펠드와 네오콘이 주장하던 이라크의 WMD, 대량살상무기 ‘정보’를 전할 때 CIA, 국방부 고위관계자, 익명의 정부 소식통 등을 취재해 그것이 모두 럼즈펠드의 ‘거짓말’이며,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날조한 정보라고 보도하던 거의 유일한 메이저 매체였다. 거의 유일한 메이저 매체라고 한 까닭은 비슷한 보도를 한 반전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독립매체들은 꽤 됐던 것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들의 특종은 완전히 묻혔다! 앞서 거론한 매체들-앞의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와 같이 신뢰를 쌓고 있는 미국의 전통 신문들, 그리고 CNN이나 ABC, NBC 등 메이저 방송들은 ‘나이트 리더’의 보도를 외면했을 뿐 아니라 ‘정부 내의 고위소식통’이 계속 흘리는 거짓정보를 경쟁하듯 보도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언론자유 연대, 그리고 30년 후
특종이 묻힌 매체의 입장에서 주관적인 억울함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이들이 연달아 특종을 내는 주요 고비 고비마다 ‘저쪽’에선 물타기 정보를 흘려 그 특종기사들을 물먹였다. 영화는 이라크 전장에 나간 지 3시간 만에 IED(사제폭탄)에 하반신이 마비된 19살 흑인 참전용사의 상원 청문회 증언에서 시작하여 미국 백악관 인근의 베트남전 참전기념비 앞에서 그 기자들과 휠체어를 탄 흑인 참전용사가 만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영화를 보다보면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다. 먼저, 이 코너에서도 리뷰를 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더 포스트>. <뉴욕타임스>의 펜타곤 페이퍼 특종을 대하는 <워싱턴포스트>의 사주 및 편집장, 기자들의 이야기다. 얼핏 비슷하다. 사회의 목탁 내지는 감시견(watch dog)으로서의 공적인 기능과 사적인 인연, 가정, 욕망의 갈등을 내러티브 전개의 매개로 사용하는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두 영화를 비교한다면 역시 스필버그다. 로브 라이너 감독의 연출도 훌륭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영화와 이야기를 다루는 스필버그의 연출력이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든다.
<더 포스트>의 엔딩은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이 이끌어낸 세기의 특종, ‘워터게이트’로 이어진다. 이 과정을 다룬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 역시 같이 떠올릴 수 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실, 팩트를 다루는 장인(craftman)이라고 할 수 있는 언론인들의 태도가 펜타곤 페이퍼에서 워터게이트로 이어지는 1970년대와 30여년이 지난 2000년대 초반이 달랐다는 것이다. 정부 기밀 누출 혐의가 언론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여긴 언론사들의 연대라든가, 당장 회사가 망할지도 모르지만 “GO!”를 선언한 용감한 언론사 사주는 2003년에 이르러서는 사라졌다. 특종은 외면되고 정파적 프로파간다과 상업적 이익만 좇는 언론의 맨얼굴을 확인하는 것은 씁쓸한 경험이었다. <더 포스트>를 리뷰하면서 지난 2016년에서 2017년 사이의 촛불시위를 떠올렸었다. 박근혜 정권의 비선을 보도하면서 찰나적 순간 만들어졌던 보수·진보매체의 연대가 겹쳐 보였다. 한국도 이라크전 당시의 미국 언론 상황처럼 흘러가게 될까. 그럴 것 같기도 하다. 경향 자료사진
중동 전문기자 ‘주디스 밀러’는 왜 욕을 먹을까
“오늘날 언론인들의 67%는 자신이 독립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기자 중 자신이 민주당 지지자(democrat)라거나 공화당 지지자(republican)라고 하는 사람들은 약 4대 1의 비율인데, 실제 자기가 어느 당으로 치우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언론인들의 상당수는 좌파(liberal)다.”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언론인 주디스 밀러의 주장이다. ‘언론을 믿으세요?’라는 제목의 영상이다. 영화 <충격과 공포>에서 그녀의 이름은 경멸적으로 언급된다. 왜일까. <나이트 리더>의 특종기사들이 묻힐 때마다 그녀의 보도가 있었다.
2003년, 그녀는 <뉴욕타임스>의 중동문제 전문기자였다. 그녀는 조지 부시 행정부의 내밀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후세인이 진짜로 WMD를 생산하고 있다는 그럴 듯한 기사들을 양산한다. 그녀는 이라크전 이전부터 스타 기자였다. 9·11테러가 벌어지자 배후로 알카에다와 빈 라덴이 이끄는 테러리스트가 있다는 것을 알린 것도 그녀였다. 2005년 즈음엔 취재원을 공개하는 것 대신 감옥행을 택한 것으로 다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그리고 반전. 알다시피 이라크 침략의 근거였던 WMD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녀가 보도한 그 수많은 뉴스들의 소스는 무엇이었다는 말일까. 그녀가 조지 부시 행정부 깊숙한 곳에 취재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분명,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흘린 그 정보들은 충분히 검증되어야만 했다. 그녀가 감옥까지 가면서 지켰던 취재원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한 ‘딥스로트’와는 다른, 사악한 의도를 지닌 네오콘 측 인사였다. 더 총체적으로 중동문제를 다루는 주디스 밀러 기자의 시각은 서구적·친이스라엘적 관점에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었다고 에드워드 사이드는 비판했다. 결국 <뉴욕타임스>는 WMD와 관련한 자사의 오보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기자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주요 보도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뉴욕타임스>를 떠난 주디스 밀러는 폭스뉴스로 옮겨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중동문제 전문기자로 이름을 날리다 전 정권과 야합한 경영진 편에 서서 언론자유 탄압의 선봉에 섰던 한국의 어떤 언론인의 ‘변신’이 떠오르지만 굳이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겠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