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의 야만성을 용서할 수 있나

2017.04.18

[신간 탐색]가해의 야만성을 용서할 수 있나

폭력 앞에 선 철학자들
마크 크레퐁·프레데릭 웜 지음·배지선 옮김 이숲 펴냄·1만3000원

한 독재자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지 29년 만에 세 권짜리 회고록을 펴냈다. “나는 광주사태 치유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라고 강변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펴낸 <전두환 회고록> 얘기다.

37년 만에 일어난 또 한 번의 ‘역사 쿠데타’ 앞에서 누가 ‘용서’라는 말을 꺼낼 수 있을까. 지난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에서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가해자와 합의한 국가의 결정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용서의 불가능성에 대한 책의 한 대목은 이 문제를 다시 고민해 보게 한다.

“요컨대, 누가 희생자를 대신해서 용서를 공언할 수 있습니까? 어떤 정치가가 희생자들에게서 용서할 권리를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고통이 서려 있는 묘비명처럼 간결한 장켈레비치의 이 문장은 널리 알려졌습니다. ‘용서는 사람들이 죽어간 집단수용소에서 이미 죽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부터 5월혁명이 일어난 1968년 사이에 벌어진 폭력적인 상황과 이에 맞서 행동하고 사유했던 현대철학자 12명의 사상과 논쟁을 들여다 본 책이다. 국가는 폭력을 수단으로 사용할 권리가 있는지, 어느 지점부터 타자의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할 권리가 생기는지, 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일은 실제로 가능한지 등 폭력과 용서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고문과 테러리즘에 대한 사르트르와 카뮈의 대립부터 시작해 나치의 폭력 앞에 절대적인 평화주의를 포기해야 했던 시몬 베유, 감시와 감금을 통해 권력과 폭력을 분석했던 푸코 등 프랑스의 대표적인 현대철학자들의 사상이 총동원됐다.

특히 나치의 폭력에 희생됐던 이들이 가해자의 야만성을 어떤 언어로도 용서할 수 없고, 국가가 피해자를 대신해 ‘정치적으로’ 가해자와 화해할 권리가 없음을 말한 장켈레비치의 담론은 여전히 위안부 합의라는 상처가 남아있는 한국 사회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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