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표 속 과학자는 누구에게 말을 거는가

2017.03.14

우표는 이제 편지를 부치기 위해 사는 것이라기보다는, 수집가들의 취미생활에 가까운 지난 세기의 유물이 됐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 과학자의 얼굴을 구태여 우표에 싣는 것은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가?

북한 과학기술자 중 가장 유명한 이를 꼽으라면 리승기(1905~1996)가 빠지지 않는다. 교토제국대학 유학 시절 합성섬유 ‘비날론’을 발명해 일본과 국제 과학계에 명성을 떨쳤고, 해방 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창설을 주도했으나 한국전쟁 중 월북해 북한 화학공업의 재건을 지휘하고 특히 합성섬유산업의 기틀을 닦았다. 어떤 이들은 1960년대 초반 비날론의 공업화가 너무나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이후 개발된 더 우수한 합성섬유들이 북한에 제대로 도입되지 못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 정도로 비날론과 그 개발자인 리승기는 북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북한에서 주체사상의 권위가 확고해진 뒤에는 과학기술 연구에서도 ‘집체성’이 강조돼 과학자 개개인의 기여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분위기가 됐지만, 그 속에서도 리승기는 예외적으로 온갖 영예를 누렸다.

그 가운데 리승기를 주제로 한 우표가 있다. 리승기의 사후인 1998년에는 ‘비날론의 발명가’라는 우표가 발행됐다. 이 우표는 연구 중인 만년의 리승기의 모습과 비날론의 구조식을 함께 담고 있으며, 우표를 둘러싼 시트에는 길게 뻗은 비날론의 고분자구조 모형 뒤로 인공위성과 한반도 지도를 그렸다. 인공위성은 물론 비날론과는 별 관계가 없으며, 화면 아래의 전자회로 기판을 연상시키는 문양과 함께 다분히 전형적인 과학의 상징으로 차용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 요소와 어울려 화면을 채움으로써 비날론은 북한(또는 한반도)을 대표하는 첨단과학의 성과로 자신을 웅변하고 있다.

과학기술을 주제로 한 우표들. 1960대 발행된 우표에는 충주비료공장 준공과 농업진흥, 경제개발에 대한 염원이 담겼다.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가 원자구조 등 자연의 이치를 탐구하는 것에서 출발하더라도 기계공업, 농업 등 실질적 산업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우표 그림에서 드러난다. 손편지가 과거의 유산이 된 시대에도 과학자를 주제로 한 우표는 꾸준히 발행된다. 북한에서도 비날론 발명가 리승기 박사를 한반도를 대표하는 첨단과학의 상징으로 활용하고 있다.

과학기술을 주제로 한 우표들. 1960대 발행된 우표에는 충주비료공장 준공과 농업진흥, 경제개발에 대한 염원이 담겼다.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가 원자구조 등 자연의 이치를 탐구하는 것에서 출발하더라도 기계공업, 농업 등 실질적 산업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우표 그림에서 드러난다. 손편지가 과거의 유산이 된 시대에도 과학자를 주제로 한 우표는 꾸준히 발행된다. 북한에서도 비날론 발명가 리승기 박사를 한반도를 대표하는 첨단과학의 상징으로 활용하고 있다.

‘비날론’ 발명한 리승기 북한서 온갖 영예

전 세계가 기념한 ‘국제 화학의 해’인 2011년에도 북한에서 나온 기념우표에는 역시 리승기와 비날론이 들어갔다. 마리 퀴리 및 라듐과 우표 지면을 나눠 쓰기는 했지만, 비날론의 구조식과 분자구조 모형을 합치면 리승기가 퀴리보다도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실은 비날론 공장은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 전력 부족 등으로 가동을 멈추고 방치돼 있었는데, 국제 화학의 해를 앞둔 2010년 5월 복구를 마쳤고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오랜 은둔을 깨고 복구 기념식에 참석해 국제적 뉴스가 되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리승기 사후 15년이 지났고, 세계 화학공업의 조류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지만, 북한에서 리승기와 비날론의 지위는 오히려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

영국에서 1840년 발행한 최초의 우표는 빅토리아 여왕의 얼굴을 그렸다. 이후 여러 나라에서 왕과 영웅들의 얼굴로 우표를 만들다가, 20세기에 넘어오면서 유명한 과학자와 발명가들을 주인공으로 삼기 시작했다. 폴란드는 1923년 코페르니쿠스를, 미국은 1926년 발명가 존 에릭슨을, 프랑스와 독일은 1934년 각각 발명가 조제프 마리 자카드와 페르디난트 폰 제펠린 등을 기념하는 우표를 냈다. 20세기 중반 이후로는 자기 나라의 유명한 과학자들을 우표에 실어 국가의 자존심을 높이는 것이 흔한 일이 됐다. 근대과학을 주도한 유럽과 미국뿐 아니라 전통과학에 자부심을 지닌 중국, 인도, 아랍, 페르시아, 그리고 비서구 국가로서 근대과학에서 두각을 나타낸 일본 등이 앞다퉈 과학자 우표를 발행했다.

그러면 한국에서 우표에 나온 과학자는 누가 있는가? 약간 뜻밖이지만 최초의 과학기술자 우표는 2015년에야 나왔다. 2015년 4월 과학의 달을 기념해 이론물리학자 이휘소(1935~1977), 동물분류학자 석주명(1908~1950), 전기공학자 한만춘(1921~1984) 세 사람을 묶어 ‘한국을 빛낸 명예로운 과학기술인’ 우표가 발행됐다. 이듬해인 2016년에는 두 번째 묶음으로 장영실, 허준, 이태규 세 사람의 초상이 우표로 나왔다. 조선말인 1884년 우정총국이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를 발행한 뒤 130여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물론 과학기술을 주제로 한 우표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의 우표에는 과학기술을 담당한 사람은 잘 보이지 않지만, 사람이 지워진 과학기술의 상징들은 상당히 자주 등장한다. 충주비료공장(1961년 준공) 건설을 기념해 충주우체국에서 1958년 제작한 관광우편 날짜도장은 당시 고장의 주산물이었던 담배와 함께 미래의 산업화를 기약하는 상징으로서 거대한(사실 국제적으로는 규모가 크지 않은 편이었다) 공업설비를 보여주고 있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1962년부터 기념우표를 매년 2종씩 발행했는데, 이들은 댐이나 변압기처럼 국민의 생활을 바꿀 수 있는 기술들을 경제개발계획이 약속하는 미래상으로서 보여줬다.

이휘소·석주명·한만춘 2015년 첫 등장

과학기술처가 발족하고 과학기술 진흥 5개년 계획이 수립된 1967년에는 ‘과학기술의 진흥’을 주제로 한 우표가 발행됐는데, 여기에서도 산업 생산을 통한 물질적 풍요를 과학기술과 등치시키는 당시의 관념이 그대로 드러난다.

과학기술의 진흥은 원자구조와 같은 자연의 이치를 탐구하는 데서 출발하지만, 그 귀결은 기계공업, 농업, 수산업 등의 실질적인 산업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바람이 그 시대를 지배했다.

이렇게 과학기술을 그 효과(구체적으로는 물질적 풍요 또는 효용)로 번역해서 이해하는 한국 특유의 과학문화는 사실 오늘날까지도 튼튼하게 살아남아 있다. 효용 중심의 과학관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은 2005년 황우석 연구팀의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 성공(좀 더 정확하게는 <네이처> 출판)을 기념하는 우표일 것이다. 뒷날 황우석 연구팀의 연구 부정행위가 드러나면서 이 우표는 전량 회수됐고, 그 바람에 희소성이 높아져 우표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액면가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 우표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과학기술은 나라를 부강하게 해줄 때 의미가 있다는 개발독재시기의 과학관을 답습하고 있다. 일어서서 가족의 품에 안기는 난치병 환자의 모습은 이른바 ‘수백조원의 국익’에 대한 허황된 기대감을 인도주의적 포장지로 감싼 것에 불과하다.

이런 역사를 거쳐, 2015년에 드디어 과학기술의 결과나 효용이 아니라 그것을 하는 사람이 우표에 등장했다. 한국 사회는 많은 대가를 치른 뒤 비로소 과학기술이 약속하는 열매만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눈을 돌린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누구의 얼굴을 실을 것인가, 그것은 또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가, 과학자의 얼굴을 우표에 싣는 이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등의 문제들은 그와는 별개로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한국의 우표가 비로소 과학기술자들의 얼굴을 싣게 된 지금, 우표와 그것을 사는 행위가 예전의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제 종이에 편지를 써서(또는 인쇄해서) 부치는 이는 거의 없다. 편지를 부치더라도 우체국에서 뽑아주는 바코드를 붙이면 그만이다. 우표는 이제 편지를 부치기 위해 사는 것이라기보다는 수집가들의 취미생활에 가까운 지난 세기의 유물이 됐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 과학자의 얼굴을 구태여 우표에 싣는 것은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가? 19세기 후반부터 확립된 기념우표라는 양식을 통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과학기술자들의 집단적 욕구가 21세기에 결실을 맺은 것은 아닌가?

<김태호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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