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솔로 아닌 나를 위한 시간 ‘혼밥식당’

2016.08.16

혼밥식당을 찾는 이들은 의외로 한 끼 식사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었다. 간단히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는 김밥집이나 분식집으로도 충분하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해 지갑을 열 수 있는 이들이 혼밥식당을 찾는다는 분석도 가능했다.

어둠이 깔린 신촌 유흥가 식당 창문 안으로 친지, 가족과 함께 즐겁게 식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서로를 위로하고 위안 받는다. 행복의 그림자가 유리창에 비치고 있었다. 어디를 봐도 혼자 밥을 먹거나 술잔을 기울이는 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번잡한 식당들을 지나치면 번화함과는 거리를 둔 식당이 눈에 띈다. 식당 안의 모습은 거의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았고, 드나드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혼자다. 혼자 먹는 밥집, 세칭 혼밥식당이다. 서울의 경우 혼밥식당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각각 분위기와 메뉴, 좌석 배치와 서비스 등을 무기로 입소문과 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해서 조용히 번창하고 있었다. “입소문 듣고 찾아오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지방에서 일부러 오는 분도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젊은이들이 주고객이었는데, 지금은 대체로 다양한 연령대가 찾고 있습니다.” 문을 연 지 8년째에 접어드는 우리나라 혼밥식당 1세대격인 신촌 일식라면집 현모 실장의 말이다.

옆 손님은 물론 종업원과 접촉도 최소화
혼밥식당이 가장 먼저 시작됐고 뿌리를 내린 지역은 서울 노량진과 신림동 일대. 고시생과 공무원시험 준비생이 많은 특성 때문에 혼자서 빠르고 배 불리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자리잡고 있다. 뷔페식 백반집부터 중국음식점까지 이 동네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오히려 여럿이 함께 밥을 먹으면 눈길을 끈다. 혼밥식당마저 찾을 여유가 없는 이들을 위해서 개발된 것이 노량진표 컵밥인데, 이제는 컵밥 전문 식당까지 생겨 전국 체인점도 문을 열었다. 노량진과 신림동의 중국음식점도 탕수육부터 깐풍기까지 모든 요리는 1인분이 기본이다. 진정한 혼밥식당의 천국이다.

독서실 스타일의 혼밥식당 식탁.

독서실 스타일의 혼밥식당 식탁.

학원가의 혼밥식당이 생존형이라면 최근 문을 여는 혼밥식당은 좀 더 다양한 취향을 반영하고 있다. 혼자 식당을 찾는 이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최근 혼밥식당의 분위기다. 신촌의 한 라면집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다른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없다. 주문은 자판기를 통해 식권을 발급받는다. 자판기 옆에 빈 좌석이 표시된 전광판을 보고 종업원의 안내 없이 자리를 찾아 앉는다. 모든 좌석은 칸막이로 가려져 있어서 옆 좌석 손님과 눈을 마주칠 필요가 없다. 맵기와 짜기 등 구체적인 음식 주문도 메모판에 체크해두고 벨을 누르면 종업원이 가져가 맞춤 주문을 완성한다. 음식이 나오면 주방과 연결된 커튼이 내려가고 오직 밥과 자신만이 오롯이 남는다. 고독한 식사를 즐기는 시간이다.

혼밥식당의 공통점은 손님이 쑥스럽지 않게 드나들고 혼자서도 편안히 밥을 먹을 수 있는 분위기다. 손님과도 최소한의 접촉만이 가능하도록 신경을 썼다. 홍대 인근에서 혼밥식당을 운영하는 박상민 대표는 성공의 여부를 이렇게 설명했다. “혼자 오는 사람을 위해 최대한 배려하는 것이 식당의 특징입니다. 직원들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부러 말을 걸지 않습니다. 혼자라는 사실이 불편하지 않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 없이 식당 인테리어와 자리 배치를 했습니다. 다른 곳보다 편안하다고 느낄 수 있다면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식당 입구에는 ‘혼자 와도 마음 편한 곳’이라고 쓰여 있다. 신촌의 혼밥식당에는 ‘2인석은 작은 배려입니다’라는 역설적인 문구가 강조되어 있었다.

1인석 칸막이는 최근 문을 여는 혼밥식당들의 특징이다. 독서실 좌석 형태로 타인의 시선과 철저히 차단된다는 특징이 있다. 신촌에 있는 혼밥식당의 총 좌석수는 23석, 그 중에서 2인석이 6개, 1인석이 11개이다. 식당의 지배인은 칸막이 테이블의 특색을 이렇게 설명한다. “1인석 손님들의 경우 식사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밥을 먹으며 음악을 듣는 사람도 있고 모바일 기기로 드라마를 보면서 식사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문에 2인석보다는 회전율이 떨어지는 편입니다. 칸막이 안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해도 눈치를 보지 않으므로 식사시간이 평균적으로 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성 손님의 경우 독립된 공간을 선호하므로 독서실 형태의 좌석이 인기라는 분석도 있다. 아직까지는 혼밥식당의 주고객이 여성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식당 분위기와 소품 등에 더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도 혼밥식당의 특징이다.

최근 문을 여는 혼밥식당의 메뉴와 인테리어 등은 거의 일본풍 일색이다. 이 점은 일본에서 혼자 밥을 먹는 문화가 먼저 시작됐기 때문이라고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실제 일본에서 시스템과 메뉴를 벤치마킹하여 문을 여는 식당도 많았다. “일본 출장 중에 혼자 밥 먹는 문화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니까 우리나라도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돌아 와서 곧바로 창업을 준비했습니다.” 문을 연 지 1년 정도 된 혼밥식당 주인의 설명이다. 그는 자신의 판단이 성공했다고 확신했다. 일본에서 인기를 얻은 만화 원작의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는 맛집을 찾아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드라마의 거의 전부이다. 매회마다 주인공 고로씨는 유명한 식당을 찾아 홀로 밥을 먹는다. 혼자라도 맛있게 먹고 그 맛에 언제나 감동한다. 이 드라마는 국내에서도 만만찮은 인기를 얻고 있어서 일본의 혼밥문화가 자연스럽게 유입되고 있다.

혼밥식당의 요리 1인분.

혼밥식당의 요리 1인분.

혼자 먹기 편한 면요리나 덮밥 등이 혼밥식당이 선호하는 메뉴인 것은 상차림이 편하고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혼밥족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한 성신여대 앞 한 식당의 윤정태 사장은 일본식 식단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식 메뉴 자체가 한상차림이라 개인을 위한 식탁 차리기가 편합니다. 일본 가정식을 기준으로 상차림과 메뉴 구성을 위해 벤치마킹을 많이 했고, 인테리어 등을 감각적으로 해서 젊은 층에게 다가간 점이 성공한 것 같습니다.” 그가 운영하는 식당은 혼밥식당은 아니지만 손님 중에 4분의 1 정도는 혼자 오는 손님이고 혼밥족들에게 유명하다고 설명했다. 식기와 인테리어, 메뉴의 구성과 좌석 배치 등이 혼자와도 불편하지 않아 혼밥족들의 입소문이 퍼진 경우다.

1인석 칸막이에 일본 메뉴가 주종
“손님 대부분은 입소문을 듣거나 인터넷 블로그 등을 보고 옵니다.” 혼밥식당 관계자들 대부분의 공통된 설명이다. 함께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실 현실의 친구보다는 인터넷 상에서 정보를 나누고 인간관계를 대신해가는 현실의 반영인 셈이다.

혼밥식당을 찾는 이들은 의외로 한 끼 식사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었다. 메뉴는 단출하지만 가격대는 일반식당보다 약간 높은 수준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려는 이들이 찾기에는 부담이 있었다. 식사도 투자고 자신을 위한 보상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혼밥식당을 찾는다고 관계자는 강조했다. 간단히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는 김밥집이나 분식집으로도 충분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끼는 이들이 주요 고객이라는 설명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지갑을 열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이들이 혼밥식당을 찾는다는 분석도 가능했다.

“아직은 사회적으로 남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분위기입니다. 혼자 밥 먹는 것을 왠지 불쌍하게 보는 눈길도 있습니다. 고깃집에서는 아예 2인분 이상만 주문 받는 곳도 있고, 큰 상에 혼자 앉아 밥을 먹는 것도 불편해서 가끔씩 혼밥식당을 찾습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박모씨는 일의 성과가 있을 때마다 혼밥식당을 찾아 자신에게 보상한다고 이야기했다. 식단의 가격대가 높을수록 전문직 종사자들의 비율도 높다는 것이 식당 운영자의 귀띔이었다. 바쁘게 일하다가 식사시간을 놓치거나 야근으로 끼니를 거를 수밖에 없는 이들이 편하게 밥 먹을 수 있는 여유와 사치를 누리기 위해 혼밥식당을 찾는다는 것이다.

혼밥족들 사이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것이 고기와 술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러나 고기와 술마저도 혼밥식당의 메뉴가 됐다. 홍대 인근에는 최근 1년 사이 혼자 먹는 고깃집들이 줄지어 문을 열었다. 개인용 화로는 기본이고 큰 테이블도 커튼을 내려서 혼자 온 손님을 배려한다. “처음에는 손님들이 더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자리에 앉아서도 두리번거렸는데, 한 석 달쯤 지나니까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혼자서 고기 구워먹는 분위기를 받아들이더군요.” 가게 한쪽에는 혼자 술 먹는 이들을 위한 바도 마련돼 있었다. 옆 좌석과는 커튼으로 차단하고 홀로 앉아 술을 마시는 이들은 도시인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주문은 자판기에서 한다.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도록 배려가 되어 있다.

주문은 자판기에서 한다.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도록 배려가 되어 있다.

혼밥 최후의 메뉴는 고기와 술
혼밥식당이 늘어나는 것은 현실이지만 그 전망에 대해서는 상반된 평가가 있다. 우리 사회가 점차 고독사회로 접어들면서 앞으로는 혼자 밥 먹는 문화가 점차 늘 것이라 혼밥식당도 번창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혼밥식당의 메뉴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높은 가격대의 메뉴를 도입하는 데는 제약이 따르며, 영업적인 성패가 불분명하므로 일시적인 유행으로 그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점점 혼자 밥 먹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서 비교적 오래 동안 영업하고 있는 혼밥식당의 지배인은 시대상의 반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결혼 연령대가 점점 늦어지고 있습니다. 경제적 능력을 갖고 혼자 사는 여자들도 점차 늘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주로 찾아오고 있습니다. 혼자 밥 먹을 수 있는 공간도 가족의 울타리가 느슨해진 요즘 사회에서는 반드시 필요하고, 앞으로 당분간은 늘어날 것이라고 봅니다.”

나홀로족을 상대로 한 사업들은 혼밥식당만이 아니다. 혼밥식당 바로 옆에는 건물마다 원룸과 고시원이 줄지어 있다. 홀로 사는 이들을 위해 동전세탁기가 놓인 세탁방들이 있다. 아침마다 반찬을 배달하는 서비스가 있고, 청소 서비스와 싱글 여행 상품이 번창하고 있다. 텔레비전에서는 <나 혼자 산다>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누린다. 혼자 사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고 혼자 밥을 먹는 것이 더 이상 쑥스럽지 않은 일이다. 정호승 시인은 그의 시 ‘수선화에게’에서 고독을 읊조렸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만나지 못할 사람과 정하지 못할 식사 약속을 안타까워하지 않고 홀로 식당을 찾는 이들을 위해 혼밥식당이 있는 것이다.

혼밥식당은 점심과 저녁시간 내내 북적이고 있었다. 시간대의 구별 없이 일정하게 손님들이 찾아오고, 특히 주말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는 것이 식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신촌 어느 혼밥식당의 벽에 빼곡히 써진 낙서 사이에서, 그러나 우울한 혼밥족의 심사를 읽을 수 있었다. “고독. 보고 싶다. 친구가 생기게 해주세요….” 고독을 회피하지는 않지만, 외로움에 갇히기를 바라지 않는 우리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공간이 혼밥식당이다.

<글·사진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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