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의 민낯

2016.07.05

가수 겸 배우 박유천씨가 성폭행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박씨는 '악의적 흠집내기'라며 무고를 주장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가수 겸 배우 박유천씨가 성폭행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박씨는 '악의적 흠집내기'라며 무고를 주장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대 여성 두 명이 한밤중에 다른 직장 여성 동료의 집을 찾아가 폭행했다. 옷을 벗기고 알몸에 음료수를 끼얹고 열쇠로 몸 이곳저곳을 찌르는 등의 가혹행위를 한 뒤 동영상까지 촬영했다. 성형수술 사실을 주변에 소문냈다는 이유였다. 2014년 2월 25일 오전 3시부터 오전 8시까지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피해자가 가해자들이 잠든 틈을 타 탈출해 경찰에 신고하면서 일단락됐다. 피해자와 가해자 셋 다 유흥업소 직원들이었다. 중요하지 않은 사건이라 크게 기사화되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 자체는 기자실에서 화제였다. 형사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가혹행위의 방식은 기상천외했다. ‘룸’ 안에서 남자 손님들에게 평소 당하던 방식이었다.

유흥주점을 관리하는 법은 식품위생법이다. ‘유흥접객업’으로 분류돼 술과 조리한 음식을 팔 수 있고 ‘유흥종사자’를 둘 수 있다고 법에 명시돼 있다. 밀폐된 공간 안에서 여성접객원과 손님 사이에 벌어지는 일은 ‘흥을 돋우는 행위’일 뿐이다. 요즘은 ‘고객편의’를 위해 룸 내에 화장실까지 둔 업소가 많다. 가수 겸 배우 박유천씨는 바로 이런 화장실에서 여종업원을 성폭행했다는 내용을 포함해 유사한 내용의 고소 4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박씨는 무고 혐의로 상대방들을 맞고소한 상태다. 경찰이 염두에 두고 있는 성폭행 혹은 성매매 여부는 법정공방이 끝나봐야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유흥주점이라는 법이 인정한 공간에서 법으로는 금지된 ‘성적 거래’ 혹은 ‘성폭행’이 손쉽게 벌어질 수 있고, 업소는 이를 조장한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공론화됐다. 여성을 폭력과 섹스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이 ‘유흥’의 민낯이다. 성폭행 사실 여부와 별도로 우리가 유흥이라 부르는 야만은 존재하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학대받거나 위험에 처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박유천씨 피소 사건이 ‘사생활 추문’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다.

1955년 전역 해군 대위를 사칭해 여성 70명과 성관계를 맺었다 혼인빙자간음죄로 기소된 박인수씨(당시 26세)에게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며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한다”고 밝혔다. “70명 중 처녀는 한 명뿐”이라는 박씨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60년이 지나 ‘유흥업소 여직원’도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소할 수 있게 됐다. ‘모든 이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인식을 흐리게나마 성취했다. 성매매 혹은 성폭행, 그리고 각종 학대행위를 돈 몇 푼으로 허용하며 ‘유흥’이라 부르는 제도와 인식의 문제도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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