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공공성의 추억 ‘공중전화’ 없애면 서운하죠~

2016.05.24

좀처럼 찾는 사람이 없는 공중전화들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고민과 실험이 최근 계속되고 있다. 공중전화에 필요한 것은 ‘혁신’이 아니라 ‘관리’다. 공중전화는 크게 성공시켜야 할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죽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테크놀로지이다.

2010년대 한국에서 공중전화는 1990년대를 추억할 때 유용한 물건이 되었다. 공중전화 통화 장면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그 드라마는 20세기 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다. 드라마 주인공이 공중전화 박스로 걸어들어가 동전을 넣고 전화를 거는 장면에서 우리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삶의 모습을 상기하고 애틋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통화가 시작되고 끝나는 것을 알리는 동전 내려가는 소리를 모처럼 들으면 반갑기도 하다. 이렇게 공중전화는 한 시절을 대변한다.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진 공중전화를 굳이 1990년대와 연결지어 생각하는 것은 그때가 공중전화의 전성기였기 때문이다. 관리하거나 감시하는 사람이 붙어 있지 않은 무인 공중전화가 처음 설치된 것은 1962년이었다. 전국에 설치된 무인 공중전화 숫자는 꾸준히 증가하다가 1999년에 약 15만3000대로 최대치를 기록한 후 하락하기 시작하여 현재 7만대 정도가 남아 있다.

1980년대 공중전화

1980년대 공중전화

1990년대 움직이는 사람들의 미디어
자기 집이나 회사 근처, 학교 캠퍼스 안에 공중전화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도, 여기저기 꽤 많은 공중전화 부스가 지난 시대의 화석처럼 서 있다.

공중전화, 그 중에서도 1990년대의 무인 공중전화란 어떤 테크놀로지인가? 주요 길목이나 공공장소에 공중전화들이 설치되기 이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이나 사무실 등 고유한 전화번호를 부여받은 장소에서 전화를 걸고 받았다. 집과 사무실 밖으로 나가서 거리를 활보하는 동안은 통화가 불가능했다. 이동의 자유는 통신의 자유와 아직 결합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개인의 삶과 사회의 구조를 유동적으로 만드는 데 걸림돌로 작용했다. 공중전화는 거리에 나간 사람이 실내로 들어오지 않고도 통신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현대인의 ‘유동하는 삶’을 매끄럽게 구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즉 공중전화는 움직이는 사람들의 미디어였다. 터미널과 기차역에서, 또 거리 곳곳에서 마주치는 공중전화를 통해 한국인들은 ‘이동통신’의 초기 형태를 체험할 수 있었다.

물론 현실에서는 모든 것이 기대처럼 매끄럽지는 않았다. 공중전화 숫자가 계속 증가한 1990년대에도 서울 시민들은 필요한 장소에서 공중전화를 쉽게 찾고 쓸 수 없다고 느꼈다. 특히 지하철 승강장의 공중전화 부족은 서울 시민들의 자유로운 ‘이동통신’을 크게 방해했다. 한 시민은 “지하철을 타고가다 급한 일이 생길 때 공중전화가 없는 곳은 개찰구 밖으로 나가서 전화를 하고 다시 지하철을 타야 하므로 불편함은 말할 것도 없다”고 신문에 편지를 보냈다(<한겨레>, 1998년 6월 27일). 지하철 안에서 생긴 급한 일이란 대개 ‘삐삐’로 온 호출에 응답하거나 음성메시지를 확인하는 정도였을 것이다. 대합실로 나와서 공중전화를 발견한 후에는 줄을 서야 할 때가 많았다. 지하철역 이외에도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는 공중전화 줄도 길어졌다. 통신을 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이동을 멈추고 발신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공중전화를 조금 더 자유롭고 편하게 쓸 수 있도록 만든 한 가지 큰 변화는 1986년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도입된 카드식 공중전화와 전화카드였다. 전화카드 사용자가 아직 많지 않았던 1990년대 초에는 동전식 전화기 뒤로 길게 늘어선 줄을 피해 그 옆에 비어 있는 카드식 전화기 부스로 쓱 들어갈 수 있었다. 카드 전화기는 마치 요즘의 고속도로 하이패스처럼 미리 구입한 카드를 가진 사람들이 더 빨리 통화를 하고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또 주머니 속에 있는 동전을 하나씩 넣으면서 동전이 다 없어질 때까지만 통화를 할 수 있었던 이전과 달리 전화카드 한 장을 넣으면 잔액이 있는 한 통화를 계속할 수 있었다. 무게가 2.45g인 5000원 전화카드 한 장이면 100원짜리 동전 50개의 무게만큼 통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음 없이 부드럽게 잔액이 줄어드는 카드식 전화기를 사용하면 예전에 동전을 새로 넣을 때마다 날아오던 다음 사람의 따가운 시선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다.

1970년대 공중전화

1970년대 공중전화

공중전화 앞 풍속도와 수난의 전화 부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한정된 서비스를 선착순으로 독점사용하도록 할 때 생길 수 있는 온갖 일들이 공중전화 부스에서 일어났다. 감독하거나 중재해 줄 사람이 없는 무인 공중전화 앞에서 시민들은 서로의 필요와 인내를 조절하는 법을 실습해야 했다. 공중전화 부스 주위에는 통화를 하는 사람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 미묘한 관계가 생겨났다. 앞사람은 눈치를 보면서 통화를 이어갔고, 뒷사람은 무언의 압력을 가했다. 통화를 오래하거나 두세 통 연달아 했다는 이유로 앞사람을 폭행하거나, 통화가 길다고 타박하는 뒷사람을 폭행하는 일들이 있었다. 1990년 여름에는 유독 공중전화 폭력사건 보도가 많았는데, 그 중에는 결국 실명이나 사망에 이르게 된 사건들도 있었다. 개인주의와 자제심 부족에서부터 인명경시 풍조와 험악한 사회 분위기까지 여러 진단이 나왔다(<동아일보>, 1990년 8월 25일).

전화 부스 자체가 혹사와 폭력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전화를 하다가, 혹은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공중전화를 파손하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전화 부스에 담배꽁초를 버리고, 침을 뱉고, 음료수 캔을 버려두고 나갔다. 전화기 번호판을 불로 태워서 녹이는 사람도 있었고, 전화기 자체를 훔쳐가는 사례가 1년에 1000건 넘게 발생하기도 했다. 가장 흔한 훼손은 공중전화 부스의 유리창을 깨는 일이었는데, 1997년 11월부터 1998년 2월 사이에만 3만6000건 이상의 유리 파손이 있었다. 한국통신 관계자는 “웬만한 성인이 발로 차도 깨지지 않을 만큼 유리가 단단한데, 술에 취한 사람들이 도구를 이용해 기를 쓰고 깨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소식을 전한 기자는 “IMF 체제로 국민들 모두가 심한 고통을 받자 최근 들어 애꿎은 공중전화 부스에 ‘화풀이’를 하는 사례”라고 진단했다(<매일경제>, 1998년 3월 19일). 공중전화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시에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었다. ‘공중전화 사회학’이 쓰여질 법한 시기였다.

무선호출기를 보고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고 있는 남자.

무선호출기를 보고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고 있는 남자.

1990년대에 나온 공중전화 관련 신문기사의 상당수가 독자 편지나 의견란에 등장했다. 공중전화는 시민들이 손쉽게 직접 관찰하고, 지적하고, 제안할 수 있는 평범하고 만만한 인공물이었다. 자기 물건이 아니라고 함부로 다루지 말자는 당부, 전화 부스 재질을 잘 깨지는 유리 대신 플라스틱으로 바꾸자는 제안, 통화시간을 줄이기 위해 요금 부과기준을 바꾸자는 의견, 요금체계가 아니라 전화카드 사용으로 인해 시간-돈 관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는 분석까지, 공중전화는 공중의 토론을 잘 이끌어내는 재주가 있는 물건이었다. 시민들은 공중전화를 통해 이른바 공중도덕의 수준이 내려가고 있음을 진단하고, 세상살이가 점점 팍팍해지고 있음을 직감하고, 이 사회는 공중전화를 쓰는 사람들과 쓸 일이 없는 사람들로 나누어져 있음을 파악했다.

무엇보다 시민들은 공중전화에서 통신기술의 공공성을 목격했다. 경제성을 고려하되 사적 이익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고, 실적이나 수익 이외의 다른 척도로 평가하는 것이 필요한 테크놀로지가 존재하며, 그런 테크놀로지들이 현대 사회의 기본적인 작동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공중전화는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었다. 또 그런 테크놀로지의 설계와 운영에 모두가 당사자로서 한마디씩 보태는 것이 가능하고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경험하도록 해주었다. 공중전화는 주어지는 혜택이 아니라 요구하는 권리로서 테크놀로지를 이해하는 좋은 사례가 되었다. 휴대전화의 등장으로 공중전화의 지위가 점차 위협받고 있던 1998년 어느 시민은 이렇게 질타하고 요구했다. “공공기업마저 이익에만 급급한다면 서민들의 삶은 비참해질 수밖에 없다. 곳곳에 카드용 공중전화를 설치해 통신 편의를 제공하기 바란다. 공중전화를 찾아 헤매는 서민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하다”(<한겨레>, 1998년 7월 18일).

카드용 공중전화

카드용 공중전화

2000년대 들어 전국의 공중전화 숫자와 통화량이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공중전화는 우리가 여전히 테크놀로지의 공공성이라는 생각을 완전히 잊지 않도록 하는 상징적 존재이다. 경제적 이유로 혹은 어떤 일시적인 상황 때문에 사적인 통신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도 동전 몇 개를 들고 몇백m를 걸어가면 꼭 필요한 통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다. 공중전화는 개인이 구입해서 소유하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편의를 국가가 제공하고 관리해야 하는 필요성을 상기시켜 준다. 공중전화가 감소하는 경향을 되돌릴 수 없음이 확실해졌고, 그 수익성을 따지기도 어려워진 2004년의 한 조사에서 절반 정도의 사람들이 비용을 충당하지 못해도 공중전화를 없애서는 안 된다고 대답했다는 사실은 공중전화의 상징적 힘을 잘 보여준다. 텅 빈 공중전화 부스는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엇이든 다 없애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희미하게나마 붙들어 담아주는 공간이다.

설문조사 결과 절반 정도가 철거 반대
좀처럼 찾는 사람이 없는 공중전화들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고민과 실험이 최근 계속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제대로 관리받지 못하는 공공시설이 얼마나 빠르게 도시의 흉물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공중전화가 제시된다. 함부로 손대면 안 될 것 같은 누군가의 소유물로 가득 차 있는 거리에서 공중전화는 내맘대로 해도 될 것 같은 유일한 시설로 생각되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전화 부스에 새로운 무언가를 집어넣어서 시민들을 공중전화 부스로 다시 끌어들이려 시도하고 있다. 전화기 옆에 자동심장충격기나 현금자동인출기를 같이 붙여넣거나, 전화 부스를 전기차 충전소나 길거리의 위험상황을 모면하는 대피소로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다지 전망이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공중전화에 필요한 것은 ‘혁신’이 아니라 ‘관리’다. 공중전화는 크게 성공시켜야 할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죽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테크놀로지이다.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순간에 선명한 음성통화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 것이 공중전화의 기본 임무다. 공중전화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휴대폰이 보급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전화기가 새로 나온 동전을 인식하지 못하고, 신용카드를 넣어도 반응이 없고, 전화카드를 파는 곳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계속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최소한의 필수 기능을 다하도록 유지하고 보수하는 일은 쉽지 않은 과제다. 대부분의 삶의 현장에서 우리를 안전하게 떠받쳐 주는 것은 ‘파괴적인 혁신’이 아니라 ‘끊임없는 관리’라는 사실을 공중전화는 잘 보여준다.

<전치형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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