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굴기의 민낯

2016.05.10

중국 베이징의 왕푸징 거리. / 전병역 기자

중국 베이징의 왕푸징 거리. / 전병역 기자

대국굴기(大國嵋起). 2006년 11월 중국중앙방송의 경제채널(CCTV-2)에 방영된 12부작 역사 다큐멘터리 제목인데, 중국의 부상을 상징하는 낱말이 됐다. 전환점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즈음이다. 기자는 2005년 3월과 올림픽 직전인 2008년 4월, 그리고 올해 4월 중국 베이징을 다녀왔다. 길게는 11년 만에 중국 심장부의 변화된 모습을 잠깐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먼저 달라진 점이 있다. 당시만 해도 베이징 한가운데에서는 소달구지와 벤츠가 거리를 나눠 달렸다. 지금은 적어도 베이징 중심가에 우마차는 안 보였다. 더 많은 아우디와 벤츠, BMW, 마세라티가 거리를 메운다. 세계 어느 대도시를 가도 이렇게 많은 고급차를 단시간에 볼 수 있는 곳은 잘 없다. 자본주의의 심장부 미국 뉴욕 맨해튼을 방불케 하는 세련된 거리는 중국 젊은이들의 해방구 같았다. 속옷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과감한 패션의 여성들, 길 가다가 거리낌 없이 애정을 주고받는 남녀….

한 달이 다르게 올라간다는 마천루 빌딩 숲, 멋진 고급차들 등 중국이 G2 대국으로 급성장하는 모습 이면에 바뀌지 않은 것들도 있다. 왕푸징 골목 한편에 살아있는 전갈을 꼬치에 끼워서 튀겨낸 주전부리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초두부 같은 ‘중국적 전통’만이 아니었다. 바로 구석구석에 깔린 공안 같은 체제 수호자들의 권위적인 얼굴이다. 호텔의 인터넷 속도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만큼 빨라졌다. 그러나 검색을 위해 미국 구글에 접속한 순간 차단됐다. 그제야 ‘아, 여기는 중국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구글은 창만 뜰 뿐 검색이 되지 않았다. 아래 안내된 홍콩 구글 접속창을 눌렀지만 역시 묵묵부답이다. 우회 프로그램인 프록시 등을 이용하면 가능한 방법이 있을지 모르지만 일반인에게는 구글 접속 자체가 차단당해 프록시로 갈 수도 없을 것이다. 인터넷 감시망인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은 만리장성만큼 높고 견고하다.

물론 중국인도 인터넷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허락된 틀 안에서다. 베이징의 명품거리나 왕푸징 등에서 표출되는 자유도 일정한 테두리 안에 한정된 듯했다. 대국굴기로 G2는커녕 아시아의 맹주로 중국이 우뚝 서고자 한다면 앞서 풀어야 할 숙제가 몇 가지 있다. 경제력·군사력에 의지하는 게 아닌, 진정한 패권자가 되기에는 갈 길이 멀다. 왕초 노릇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돈을 풀어서, 힘으로 겁박해서 얻은 패권은 얼마나 지탱될까. 이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중국의 수천년 역사 속에 흥망성쇠한 왕조들을 보면 안다. 북방 오랑캐를 막으려 쌓은 장성은 아직도 건재하지만 왕조는 무너졌다. 중국 체제가 어떤 식으로 사회 양극화나 민주화 요구에 대응해 나갈지 궁금증이 커진 출장이었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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