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인간 수백 년 후 깨어나면 행복할까?

2016.03.29

향후 인체냉동보존술이 완벽해지면 어떻게 될까? 깨어난 환자의 불치병을 고쳐 죽음을 다시 미룰 수 있다면 무조건 좋은 일일까? 냉동인간은 일종의 시간여행자다.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 자신이 알고 지낸 이들은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낯선 세계에 있게 된다.

올 초 미국의 한 대학생이 술에 취해 영하 4도의 눈 위에서 정신을 잃었다가 이튿날 병원으로 옮겨진 뒤 30일 만에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아 화제가 되었다. 동상이 심해 발가락과 손가락 일부를 잘라냈으나 다행히 뇌손상은 없었다. 심각한 저체온증이었지만 에크모(체외산소공급장치)에 연결한 지 90분 만에 심장이 다시 뛰었다고 한다. 인체는 신비하다. 체온이 너무 내려가면 얼어 죽기 딱 좋을 것 같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일정 조건 아래 세심하게 관리하면 가사상태로 장기보존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로 인해 현재 냉동인간은 당장은 치료할 길 없는 불치병환자들이 사망 직전 택하는 마지막 탈출구로 쓰인다. 2015년 중국의 유명작가 두훙(杜虹)은 췌장암 말기에 딸의 권유로 냉동인간 대열에 합류했다. 중국인 최초의 냉동인간인 그녀는 중국까지 찾아온 미국 의료진의 손에 일단 영하 40℃로 냉동된 뒤 미국의 앨코어(Alcor) 생명연장재단으로 옮겨졌다. 영하 196℃의 특수용기 안에서 그녀는 치료제가 개발될 날을 고대하며 50년간 잠들어 있을 것이다.

지난 1976년 미국 미시간 주에 설립되어 현재까지 운영 중인 냉동보존학 협회(Cryonics Institute)의 극저온 물질 저장탱크.

지난 1976년 미국 미시간 주에 설립되어 현재까지 운영 중인 냉동보존학 협회(Cryonics Institute)의 극저온 물질 저장탱크.

부활 기다리며 잠든 냉동인간 250명 넘어
인체냉동보존술(Cryonics)은 아직 실용화 단계는 아니지만 과학적 근거는 간명하다. 원자의 운동은 온도가 낮아질수록 느려진다. 이론상 절대0도(섭씨 -273도)가 되면 원자는 아예 멈춰 운동에너지가 0이 된다. 이 논리를 인체에 적용해보자. 체온을 낮출수록 그에 비례해 신진대사가 느려질 테니 성장이나 노화를 늦출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생각처럼 쉽지 않다. 냉동할 때 몸속에 얼음결정이 생기지 않게 저온보호물질(일반적으로 글리세롤과 에틸렌글리콜, 디메틸술폭시드, 설탕, 글루코오스, 폴리비닐피로리돈 등이 사용된다)을 주입하고 냉동과정은 심장이 정지되는 수분 이내에 완료되어야 한다. 또한 기억과 인성이 담긴 뇌가 여전히 활동하고 있을지 모르니 사후(死後) 분석을 좀 더 지켜본 뒤 시술해야 한다. 언제쯤 냉동에 착수해야 뇌신경에 손상을 주지 않을지 입증된 바가 없어 그 경계는 사실 모호하다. 인체냉동보존술이란 용어는 1965년 뉴욕의 산업디자이너 칼 워너(Karl Werner)가 지었지만 이 개념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기폭제는 미국 물리학자 로벗 에팅어(Robert C. W. Ettinger)의 논문 <불사의 전망 (The Prospect of Immortality·1964년)>이다. 처음에 자비로 출판했다가 2년 뒤 대형출판사에서 다시 펴냈다. 출판사가 해당 기술이 사이비과학인지 몰라 출간을 주저하자 아이작 아시모프가 설득했다 한다. 에팅어는 이보다 22년 전 같은 주제를 <완성이 임박한 비장의 무기(Pentultimate Trump·1948년)>라는 과학소설로 발표하기도 했다.

인체냉동보존술은 수백, 수천 년이 걸릴지 모르는 항성 간 유인우주여행에 장차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불치병 환자의 죽음 유예라는 실용적 목적이 더 우선순위에 들어온다. SF는 일찌감치 이러한 아이디어를 써먹었으니 1930년대 초에 발표된 닐 R. 존스(Neil R. Jones)의 <제임슨 위성(The Jameson Satellite)>이 그 효시다. 에팅어 역시 어린 시절 이 단편소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현실로 돌아오면, 1967년 캘리포니아 인체냉동보존학협회(Cryonics Society of California)가 갓 죽은 사람들을 냉동하기 시작한 이래 2012년까지 냉동인간 수가 벌써 250여명을 넘어섰다. 월트 디즈니도 지원했다는 루머가 돌았는데 실제로 유명인 중에는 미국 프로배구 선수 테드 윌리엄스(Ted Williams)가 이 시술을 받았다. 아직 냉동 중인 사람을 되살리는 기술이 불완전하여 주로 의학적·법적으로 사망진단을 받은 사람들만 지원한다. 미국에서는 법적 사망선고를 받지 않은 사람을 냉동보존하면 살인 내지 살인방조죄로 처벌된다. 1972년 이후로는 냉동인간 전문기업들까지 생겨났다. 미국에는 앨코어와 트랜스타임(TransTime), 유럽에는 크리오러스(KrioRus)가 유명하다.

인체냉동보존술의 시술을 둘러싸고 관련기업과 미국 정부 간에 심한 마찰이 있었다. 1974년 세 명의 고객을 냉동보존하던 뉴욕의 냉동보존학 협회는 당시 보건사회복지부로부터 즉각 시설을 폐쇄하거나 매일 벌금 1000달러를 내라는 통고를 받았다. 결국 세 냉동인간은 각자의 가족에게 되돌아갔다. 1980~90년대에는 보건사회복지부가 앨코어사와 법정공방을 벌였다. 세계 최초의 냉동인간 제임스 베드포드 박사(Dr. James Bedford)를 앨코어사가 불법으로 보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LA 대법원은 앨코어사 손을 들어줬다. 1981년에는 정전으로 냉동보존된 고객들 중 일부가 해동되는 바람에 소송으로 비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사(不死)의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 냉동된 고객은 최소 수십에서 100년은 그 상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냉동인간 전문기업 측에서 일체의 비용을 신청자에게 일시불로 청구하는 것이 보통이다. 냉동보존 부위가 머리나 뇌에 국한될지 아니면 전신일지에 따라 단가가 크게 다르다. 한시라도 죽음이 임박하면 긴급출동하는 의료팀 경비는 별도다. 얼핏 수익률이 높은 사업 같지만 비상대기 의료팀의 인건비 부담을 제외하면 미국에서는 주요 신체기관의 이식수술비 수준이라 한다. 일시불이 부담되면 해당 생명보험에 가입하면 된다.

냉동수면을 통한 우주여행, Galaxy Magazine cover, 1961년 2월호

냉동수면을 통한 우주여행, Galaxy Magazine cover, 1961년 2월호

뇌 혹은 전신이냐에 따라 비용 크게 차이
향후 인체냉동보존술이 완벽해지면 어떻게 될까? 깨어난 환자의 불치병을 고쳐 죽음을 다시 미룰 수 있다면 무조건 좋은 일일까? 냉동인간은 일종의 시간여행자다.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 자신이 알고 지낸 이들은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낯선 세계에 있게 된다. 에드가 라이스 버로즈(Edgar Rice Burroughs)의 <짐바 조의 부활>(The Resurrection of Jimber Jaw·1937년)에서는 빙하에 갇힌 5만년 전 구석기 시대 남자가, 리처드 벤 새피어(Richard Ben Sapir)의 <먼 경기장>(The Far Arena·1978년)에서는 로마시대 검투사가 현대에 깨어나 혼란을 겪는다. 과연 이들은 현대 산업사회의 정상적인 구성원이 될 수 있을까? 아무리 하찮은 직업이라도 그 직능을 배울 수 있을까? 농사꾼으로 쓰려 해도 너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현대인이 냉동인간이 되어 수십, 수백 년 후 다시 깨어나도 마찬가지다. 천둥벌거숭이 신세인 이 시간여행자는 과연 미래사회에서 자생할 수 있을까? 외로운 데다 원시인 취급까지 받으면서 굳이 냉동시술을 받을 만큼 삶에 연연해야 할까? 이러한 질문에 가장 신랄한 답을 내놓은 예가 박민규의 단편소설 <굿모닝, 존웨인>(2008년)이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류의 99%가 말살된 미래에 냉동인간 보관소의 직원 몇 명만 살아남는다. 다행히 이들에게는 식량이 넘치고도 넘친다. 거의 천 년을 지탱해온 보관소에는 적어도 한 가지만은 풍부하니까. 김대일의 만화 (2015년)도 같은 설정 아래 식인문화를 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동인간 사업이 자판기마냥 익숙해질 정도로 대중화되면 사회는 그것을 어찌 받아들일까? SF 이야기들은 이에 대해 갖가지 흥미로운 통찰을 해학적으로 보여준다. 가령 냉동인간 시술 비용이 과도하게 비쌀 경우에는 그 자체가 빈부격차의 상징이 될 수 있다. 로저 젤라즈니의 중편 <마음은 차가운 무덤>(이 중편은 국내에는 행복한책읽기에서 2010년 펴낸 로저 젤라즈니 작가선집 <드림마스터>에 수록되어 있다)은 인체냉동보존술이 신흥 귀족사회의 상징이 되는 근미래를 그린다. 여기서 부자들은 평소 냉동상태로 지내다가 1년에 며칠만 깨어나 삶을 즐김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가난뱅이들이 보기에 불사에 가까운 삶을 산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 협소한 커뮤니티에 들어가 신분상승을 하려 안달이 난다.

노먼 스핀래드(Norman Spinrad)의 <벌레 잭 배론>(Bug Jack Barron·1969년)은 인체냉동보존술을 백인이 독점하려는 불공정한 사회를 그린다. 미국 내 흑백 인종분규가 심하던 1960년대 말 발표된 이 소설에서 냉동인간기술을 독점한 기업 총수는 흑인고객을 받지 않으려 한다. 클리포드 D. 시맥(Clifford D. Simak)의 <왜 그들을 천국에서 소환하는가?> (Why Call Them Back from Heaven?·1967년)는 앨코어 같은 냉동인간 전문기업이 지구상 최강기업으로 번창하는 근미래의 이야기다. 이 기업은 다음 번 깨어나는 생에서의 행복과 안녕을 보장한다는 감언이설로 사람들의 돈을 죄다 긁어모은다. 사망 직후 시신의 냉동을 방해하면 큰 처벌을 받는 이 시대에 냉동인간 전문기업은 냉동된 고객들의 보유 부동산까지 위탁 관리함으로써 부패와 범죄의 온상이 된다.

<헤일로4>에 등장하는 냉동인간 저장소

<헤일로4>에 등장하는 냉동인간 저장소

만약 냉동과정에서 부작용이 일어나면
장수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라 너도 나도 냉동인간을 지원하는 통에 이들을 보관할 장소가 부족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찰스 세필드(Charles Sheffield)의 <내일 그리고 내일>(Tomorrow and Tomorrow·1997년)에서는 넘쳐나는 냉동인간 수요를 감당할 공간이 문제가 되자 명왕성이 후보지로 떠오른다. 냉동인간은 나중에 가서 보호자가 없다 보니 자칫 부실한 관리·감독 탓에 인권유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래리 니븐(Larry Niven)의 <조각보 소녀>(The Patchwork Girl·1980년)에서는 만성부족에 시달리는 장기(臟器) 공급 수요를 맞추고자 냉동보존되어 있는 자의 신체 일부를 해체하는 일이 툭하면 일어난다. 니븐의 또 다른 작품 <무방비 상태의 사망자>(The Defenseless Dead·1973년)에서는 한층 더 노골적이어서 산 자들이 모든 의결권을 갖고 냉동인간들을 멋대로 착취한다.

흔히 일어나는 의료사고처럼 냉동처리과정에도 부작용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예컨대 냉동과정이 매끄럽지 못해 피시술자의 의식이 반쯤 깨게 되면 어찌 할까? 발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비좁은 냉동고에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십 년, 수백 년을 누워 지내야 한다고 상상해보라. 아마 제정신이 아니게 될 것이다. 필립 K. 딕(Philip K. Dick)의 <냉동여행>(Frozen Journey·1980년)에서는 외계 식민지로 떠난 우주선의 냉동캡슐들 중 하나가 오작동하는 바람에 해당 승객의 의식이 반쯤 돌아온다. 도착하려면 10년이나 남았지만 수송효율상 캡슐 밖 선내에는 공기와 식량이 없다. 궁여지책으로 선내 컴퓨터는 그의 기억을 재조합해서 몰입할 수 있는 가상의 상황을 만들어낸 다음 그가 참여하게 한다. 그것이 꿈인 줄 알고 깨어나는 순간 컴퓨터는 새로운 시뮬레이션을 끊임없이 제공하여 지루해 할 틈을 주지 않는다. 문제는 진짜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도 이 승객은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무한 루프에 빠져든다는 점이다.

이제까지 소개한 SF들의 상당수는 설사 냉동인간이 되어 죽음을 비켜나간들 기대만큼 행복해지지는 못한다고 주장한다. 미래에 깨어나 병을 고쳐봤자 늙어빠진 몸으로 외로움에 찌든 삶이 부러울까? 하지만 속단은 금물! 주드 리버맨(Jude Liebermann)의 <한때는 브랜드윈이었던 여인>(Formerly Brandewyne·2009년)에서는 교통사고를 당한 한 중년여인이 냉동처리되어 80년 후 깨어난다. 미래 의료기술은 그녀에게 단지 망가진 몸을 고쳐주는 데 그치지 않고 흠잡을 데 없는 십대의 몸을 복제해서 제공한다. 아리따운 소녀로 재탄생한 중년여인은 자신을 깨운 의사와 사랑에 빠진다. 실제로 냉동인간시술에 자원한 사람들은 불치병에 걸린 노인들이 대부분이라 미래에 깨어나 병을 고친들 주름살투성이에 약한 근력으로 여생을 마쳐야 한다. 그러나 이 여인처럼 복제된 젊은 몸에 자신의 기억과 인성을 그대로 이식할 수 있다면 냉동인간이 되고 싶은 욕망이 꿈틀댈지도 모른다. 냉동인간이 선사할 두 번째 삶, 당신은 원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고장원 SF평론가>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매체별 인기뉴스]

      • 경향신문
      • 스포츠경향
      • 주간경향
      • 레이디경향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