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일간의 장기 단식투쟁한 방종운 전국금속노조 콜트악기 지회장 “김무성 대표는 거짓말 사과해야”

2015.12.29

방종운 금속노조 콜트악기 지회장이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 천막 농성장에 앉아 있다. / 전병역 기자

방종운 금속노조 콜트악기 지회장이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 천막 농성장에 앉아 있다. / 전병역 기자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 비닐천막 안. 방종운 전국금속노조 콜트악기 지회장(58)이 앉아 있었다. 취재차 그를 만난 건 5년여 만이다. 잔뜩 늘어난 주름살과 샌 머리카락, 텁수룩한 수염….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그는 예상보다 더 많이 변해 있었다.

2010년 여름 <경향신문>의 ‘고용난민 시대-일자리 없나요?’라는 기획 시리즈 취재차 처음 방 지회장을 봤다. 그때 ‘노동운동’ ‘투쟁’ 같은 건 그에게는 아직 낯선 단어처럼 보였다. 그의 변한 모습은 단지 외모만이 아니다. 질기고 독해졌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그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발언에 느닷없이 뒤통수를 맞았다. 김 대표가 지난 9월 3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테트라팩, 발레오공조코리아, 콜트악기, 콜텍은 모두 이익을 많이 내던 회사인데 강경노조 때문에 문을 아예 닫아버렸다”고 노조를 겨냥했다. 밥그릇을 챙기려면 노조가 쇠파이프를 들지 말고 정신차려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에 멍석을 깔기 위해 콜트악기 등의 사례를 악용한 것이라는 게 방 지회장의 판단이다.

방 지회장은 이 말에 분개해 김 대표의 사과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단식 45일째인 11월 18일 쓰러진 그는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어떤 사과도 듣지 못했다. 사과를 요구하는 이유는 “우선 김 대표가 거짓말을 했고, 그건 박영호 사장에게 명예회복을 해주기 때문”이라고 방 지회장은 강조했다.

방 지회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콜트악기가 2007년 갑자기 인천 부평공장을 문 닫아 버리자 해고를 당했다. 인도네시아, 중국으로 공장을 옮긴 데 따른 결과다. 방 지회장은 “단순히 인건비 차원을 넘어 박영호 사장은 노조 자체를 인정하기 싫어서 공장 이전을 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콜트악기는 김 대표 말마따나 당시 국내 공장으로 연간 100억원 안팎의 이익을 내던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인건비 절약이나 반노조를 이유로 하루 아침에 국내 직원의 밥줄을 끊은 꼴이 됐다. 직원들은 해고 무효소송 끝에 2012년 2월 대법원에서 ‘부당해고’ 판결로 승소했다. 그러나 사측은 한국에 사업장이 없다며 ‘구제에 실익이 없다’고 재해고를 해버렸다. 방 지회장 일행은 다시 법정 다툼에 나섰다. 이번에는 김 대표를 향해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도 11월 12일 따로 냈다.

방 지회장은 14개 공정 중에 몸통을 깎는 공작반에서만 17년 넘게 일하며 총 25년을 기타 만드는 데 바쳐 왔다. 그는 콜트나 콜텍이 국내에서 다시 공장을 돌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자체 브랜드를 키우려면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말이 지닌 가치가 더 높기 때문이다. 같은 재료로 만든 기타라도 인도네시아산이 3000~4000원급이라면, 한국산은 4000~6000원, 미국산은 7000~1만원으로 볼 수 있다고 방 지회장은 설명했다.

그들의 거리싸움은 언제까지 이어져야 할까. 방 지회장은 “가능하면 먹고 힘내서 싸우자는 쪽이지, 나도 단식은 안 좋아한다”면서도 “이렇게라도 해야 한 사람이라도 더 사측이나 김 대표의 잘못을 알아주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의 눈은 분노와 서글픔에 충혈돼 갔다. 방 지회장은 “여기서 물러나면 쉬운 해고와 비정규직 양산을 초래할 명분만 준다”며 “나야 이제 복직하더라도 정년퇴직이나 할 나이지만, 앞으로 후배 세대를 봐서라도 버틸 것”이라고 말했다. 겉모습은 지쳤지만 속은 더 단단해져가는 것 같았다. 좋은 기타 만들기밖에 모르던 ‘근로자’는 거리에서 ‘노동운동가’로 변해 있었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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