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활동’에 대해 주목하게 된 계기는 이 코너(1135호)에 신촌대학에서 섹스학과를 개설한 이대제씨를 인터뷰하면서다. 이씨는 신촌대학에 강의를 개설한 홍승희씨(26)에 대해 “세월호 관련 퍼포먼스를 했고, 그 때문에 벌금형을 받았지만 소셜 펀딩을 통해 벌금의 부당성을 호소하고 같이 해결해나가려는 예술가”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말, 그의 또 다른 ‘퍼포먼스’ 사진이 화제를 모았다.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 1인 시위다. 피켓 문구는 ‘청와대는 너희 집이 아니고 역사도 너희 집 가정사가 아니다’였다. 돌직구다. “…그 문구를 생각해낸 친구는 소설을 쓰는 정현석씨였습니다. 작곡하는 최휘영씨 등과 함께 ‘청년예술인행동’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는데, 원래는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불심검문을 심하게 하는 거예요. 같이 간 분들 피켓도 못 들게 하고….” 홍씨가 전하는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하게 된 계기다.
찾아보면 이 사진만 있는 게 아니다. 홍씨와 홍씨 동료들은 ‘건물 전체를 보면 친일 기운이 보인다’는 내용의 피켓도 만들어 1인 시위를 했다.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였다. 여야 회동에서 “기존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어떤 부분이 좌편향이라고 보느냐”는 야당 측의 질문에 “전체적으로 보면 그런 기운이 느껴진다”고 답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패러디한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반응은 아주 좋았습니다.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하는데, 지키는 경찰들이 와서 ‘민간인도 출입하는 건물이라서 더 옆에 가서 하면 안 되겠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대답했습니다. ‘아니 우리는 민간인이 아닙니까’.”
홍씨의 말은 똑 부러지고, 거침이 없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원래는 일산에 살았는데 아버지를 따라 여기저기 이사를 다녔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정신교육을 받으면서 자랐어요. 노무현은 빨갱이고, 우리나라에는 간첩이 득실득실하다고.”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교 진학을 하지 않고 검정고시로 18살 때 대학에 들어갔다. 19살이던 2008년에는 촛불소녀가 되었다. 친언니와 같이 나갔다. “예전엔 아버지가 ‘시위 그렇게 나가면 너 인생 망친다’는 식으로 말씀하셨어요. 그래도 지금은 시를 쓰면서 많이 달라지셨어요. 요즘엔 ‘네가 올바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고 말씀을 하세요. 역사에서 잘못된 권력이 추한 행동을 할 때 문학예술은 아름다움을 되찾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움이 본질인 것 같아요. 자신의 삶의 생기를 되찾게 될 때 사회문제도 본질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는 ‘예술가’라고 지칭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도 자기 신화로 역사를 해석하려 하는 것처럼, 운동권이나 정치가·예술가 모두 의미를 독점하려고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자꾸 고립되고, 자기 껍질에 갇히는 겁니다. 거리를 캔버스 삼아 활동을 하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일상과 예술의 경계, 정치와 삶의 경계가 무너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게 문제라고 하는데, 정치가 삶을 소외시킨 것은 아닐까요. 지금 하는 활동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혼자 누리기에는 아름답고 행복하고 좋은 것이니까요.” 개인적인 꿈이 뭐냐고 물어보니 곰곰이 생각하다 ‘세계평화’라고 답한 홍씨는 매주 주말에 하는 퍼포먼스 준비회의를 하러 떠났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