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일 땐 안 되던 일이 국회의원 되니 해결되더군요”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사진·권호욱 경향신문 선임기자
2015.10.27

스타 의사로 이름 날리던 신의진 새누리당 대변인

얼마 전 방영된 정치드라마 <어셈블리>는 국회를 배경으로 야망과 암투를 그리긴 했지만 하나의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얼마나 복잡하고 긴 과정이 필요한지도 보여줬다. 새누리당의 대변인이자 초선인 신의진 의원은 그동안 49개의 법안을 발의(본회의에 가결된 법안 11건, 상임위 계류 중인 법안 38건)하고 지난 13일에는 ‘혼인신고제도 개선 및 혼인신고 시 의무교육 입법화’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가장 입법활동을 열심히 하는 의원 중 하나로 주목 받고 있다. 조두순 사건 때 피해아동의 주치의를 맡아 스타 의사로 이름을 날리다가 여당의 대변인으로 활약하는 신 의원을 만나 의술과 정치술의 차이와 공통점을 물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의사일 땐 안 되던 일이 국회의원 되니 해결되더군요”

19대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원내대변인을 맡았는데, 지난 7월부터 새누리당 대변인이 되었습니다. 대변을 하다 대신 뭇매를 맞기도 할 텐데요.
“부지런히 공부하는 중입니다. 우리 당에 우호적인 여론을 만드는 메커니즘은 물론 애매한 상황에서 명확한 맥락을 짚어내 추측성 기사가 안 나오도록 하는 것도 배워갑니다. 주요 회의 때마다 참석해서 당대표의 의중과 청와대의 의중을 모두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특히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이 아니라 내면의 의도를 알아채는 감각도 필요하죠. 그래서 대표 차에 수시로 올라타서 질문도 하고, 청와대 수석들에게도 문의전화를 합니다. 얼굴만 보이는 맹탕 대변인이 아니라 팩트와 이면에 담긴 의미를 기자나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유능한 대변인이 되고 싶습니다. 나경원, 조윤선 등 전직 대변인들이 워낙 외모가 화려해서 저도 옷차림이나 화장 등에 신경을 씁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대변인으로서의 본질, 즉 기능적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정치부 기자들과 만나면서 족집게 과외를 받듯 공부를 하고 매일 성장하고 있습니다.”

2015년 10월 현재 법안도 49건이나 발의했더군요.
“국회가 입법기관이기는 하지만 법안을 무조건 많이 만드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법안을 하나 더 만들 때마다 얼마나 규제가 많이 생기는지 아세요? 그 법안의 가치와 중요성, 시대정신을 심도 깊게 연구하지 않고 만든 수많은 법 때문에 우리나라가 ‘규제공화국’이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백성들을 다스릴 때는 물 흐르듯 순리대로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올바른 쪽으로 이익이 되게, 그래도 안 되면 교육이 되게, 그래도 안 되면 규제와 법으로, 정 안 되면 국민과 싸우는 것이 그 과정인데, 우리나라는 거의 마지막 수준이죠.”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냈고, 2008년 아동 성폭행 사건인 ‘조두순 사건’ 피해자 나영이(가명)의 주치의를 맡으면서 스타 의사로 대중적 지지도도 높았는데, 왜 정치인으로 변신했습니까.
“비례대표 마감 일주일 전에 갑작스럽게 권영세 당시 새누리당 사무총장의 연락을 받았어요.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 하루 정도 고민하고 정치를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동 성폭력과 관련한 활동을 하면서 정책적 부문에서 한계를 느꼈던 터라 직접 개선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지요. 사실 현실정치에 참여해 보니 정치의 영역이 너무 넓더군요. 첫째는 권력의 영역, 둘째는 법안 제정과 정부 감시 등 국회의원 고유의 영역, 그리고 사회 갈등 조절 등이 정치의 장일 겁니다. 제 경우에는 두 번째 영역에 집중하고 주력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로서 비례대표가 되었으니까요. 아동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정신적 치료는 물론 신체적 치료, 심지어 몇 년에 걸쳐 수차례 수술을 받기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진료비 상한제가 있어 정부나 사회의 안전망이 부족해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대부분의 비용을 피해자 본인과 그 가족이 부담해야 합니다. 학자일 때는 그렇게 소리쳐도 안 들어주고 해결도 안 되더니 국회의원이 되어 진료 시 상한제를 없애는 법안을 만들어 해결했습니다. 저는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이 주관심사입니다. 국회의원으로서 아동학대, 세월호 피해자, 군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 문제 해결에 주력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습니까.
“세월호와 군폭력 특별위원회에 들어가서 치유 모델을 접목하는 일을 했죠. 세월호 사고 당시 팽목항 현장을 찾아갔더니 피해자 가족의 심리보호에 대한 지원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현장의 의료진도 신체적인 불편함만 살피는 ‘피지컬 케어’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정신과학회에 의사 지원을 요청하고, 보건복지부 관료들을 설득해 피해지역인 안산에 정신건강서비스를 위한 시스템을 준비시켰습니다. 예산까지 하나하나 챙기다 보니 ‘국회의원인지 아르바이트생인지 모르겠다’는 애정 섞인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신이 이런 일을 시키려고 나를 정치권으로 보내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안산시에서 정신과학회, 소아정신화학회 의사들이 한 달간 자원봉사를 하면서 유가족 가운데 문제 있어 보이는 분들을 다 찾아가 상담을 했습니다. 단원고등학교도 문제였어요. 2학년 학생 대부분이 사망했으니 생존 학생들도 교사들도 다 넋이 나간 상태이고, 자책감과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카탈리나 태풍 사건 등 재난이나 재앙 사건 때 사람들은 이성마비 상태가 돼 자살 시도를 하거나 폭력성이나 트라우마와 우울증세를 보입니다. 제가 교육청에 의뢰해서 의사와 임상심리사가 한 팀이 되는 ‘스쿨닥터’ 제도를 만들어 상담도 하고 진정제 등을 처방해주는 등의 치료도 돕도록 했습니다. 덕분에 조금이라도 피해가족들이나 학생들의 후유증이 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것을 모델 삼아 메르스 사건 때도 응급심리지원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했죠. 당시 보건복지부에서 응급 예산을 투자 받았는데, 과거엔 정부 따로 전문가 따로여서 예산 낭비가 심했지만 이들을 연계시키니 더욱 효과적이고 예산 절감도 되더군요. 만약 제가 국회의원이 아니었다면 너무너무 속만 끓이는 답답한 상황이었을 겁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의사일 땐 안 되던 일이 국회의원 되니 해결되더군요”

하지만 오히려 정치인이 되어 느끼는 한계나 답답함도 있지 않나요.
“그럼요. 왜 우리 정부는 각 행정부처에 전문가들을 많이 고용하지 않을까, 왜 전문가에게 관료들이 ‘갑질’을 할까, 왜 학자들은 상아탑에만 머물러 있나 등 답답함을 많이 느낍니다. 또 아직 초선에 비례대표여서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2013년 술, 마약, 도박, 게임 등 4대 중독에 대해 국가가 치료와 예방을 해준다는 내용의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을 대표발의했다가 ‘게임중독법’으로 오해를 사면서 거센 역풍을 맞았던 게 대표적인데요, 그때 호되게 정치를 제대로 배웠습니다. 아무리 좋은 취지라 하더라도 타이밍과 상황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기다리면서 적절한 타이밍을 찾는 내공이 필요하더군요. 여전히 가장 어려운 점은 ‘모호함’입니다. 병원을 떠나 정치권으로 들어오니 모호한 순간이 너무 많았어요. 정답이 있을 때보다 없을 때가 더 많았고요. 이쪽도 맞고 저쪽도 맞는 이야기를 하는데,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현실정치더군요. 그러면서도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다 책임을 져야 하지요. 지금도 정치가 많이 어렵습니다.”

정치에서 배운 점,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요.
“인간관계의 신뢰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예전에 제 별명이 ‘칼’이었어요. 매사에 선긋기가 분명해 ‘칼 같다’고 붙여진 별명입니다. 하지만 정치에 입문하고 나서 ‘칼 같다’는 게 좋지만은 않다는 걸 느꼈습니다. 다른 의원과 소통을 통해 집단지성을 발휘해야 하는 게 국회의원이더군요. 의사는 혼자서 환자를 치료하고 혼자 연구하고 논문을 발표하면 그만이지만, 정치는 절대 혼자 할 수가 없습니다. 협업의 과정이고, 서로 믿을 수 있어야 법안도 만들어지고 문제도 해결됩니다. 그나마 지난 4년 동안 나름 열심히, 성실히 일해서 신뢰를 얻은 것 같아요. 제가 만든 법은 아니지만 아동학대법에서 부모가 아이를 때리고 학대해도 억지로 떼어놓을 수가 없었지만 올 9월부터 가능합니다. 과거엔 한 달만 떼어놓을 수 있었지만 이젠 쉼터를 만들어 학대받은 아이들을 장기간 수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야당 의원들에게까지 호소해서 170억원의 예산을 받은 결과입니다. 아마도 동료의원들이 제가 불쌍한 아이들, 학대 받은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진정성을 믿어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좀 주목을 받는다고 칼춤을 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정치생활을 통해 매일매일 깨우칩니다.”

지난번 국회 회의 기간에 책을 읽는 장면이 찍혀 지적을 받기도 했죠. 국회의원이 된 후 주로 어떤 책을 읽습니까.
“다양한 책을 읽지만 사마천의 <사기> 등 정치와 전략을 다룬 고전서를 많이 읽습니다. 요즘 제 화두가 ‘공수진퇴’입니다. 공격과 수비의 묘수는 무엇이며,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는 언제인가…. 정치인은 대부분 국민이나 유권자의 뜻을 헤아려 앞으로 나가 행하는 것이 일이지만 때론 ‘진’보다 물러서는 ‘퇴’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는 것을 배웁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사퇴할 때 왜 침묵했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절차의 민주성과 여당 내의 불협화음의 가치 사이에서 고민이 참 많았어요. 그런데 정치인으로서는 한마디 말을 먹히게 하려면 백 마디 말을 참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침묵의 중요성을 독서를 통해서 많이 생각하고 배웁니다.”

과거 의사로서 인터뷰를 했을 때 일 중독자라는 것은 알았지만 정치적 성향은 전혀 드러내 보이지 않았는데요. 이념 성향, 그리고 새누리당의 정책과 다 잘 맞습니까.
“저보고 누구 편이냐고 하면 항상 ‘국민 편’이라고 합니다. 2012년에 야당에서 무상의료, 무상급식, 무상보육 등 무상 시리즈를 강조했고 우리 여당에서는 무상보육만 받았는데, 저는 이것도 정말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상보육은 간단히 말하자면 ‘정부가 돈 줄 테니 아이 맡기고 다른 일하라’는 뜻입니다. 이건 보육비의 문제가 아니에요. 소아정신과 전문의로서 강조하자면 아이들에게는 깨끗하고 정확한 시스템보다 양육자와의 애착이 가장 중요합니다. 6세까지 아이의 뇌는 두부처럼 물렁물렁해서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기억력, 공감력, 집중력이 약해져 아이큐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인성도 영향을 미쳐요. 영유아에게 가장 나쁜 것이 분리불안입니다. 선진복지국가의 대표격인 스웨덴의 경우에도 노동 상황을 유연하게 해서 부모가 각각 1년간의 유급 육야휴직을 갖게 하지, 무조건 돈을 주지는 않습니다. 전업주부나 취업주부의 문제도 아니고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어린아이들의 행복과 인성의 문제인데, 그걸 무조건 ‘무상’만 강조하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복지가 잘못 시행되면 재앙이 됩니다.”

앞으로도 정치를 계속할 건가요.
“가능하면 하고 싶습니다. 정치인은 자신의 꿈을 이루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꿈을 대신 이루게 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제가 의사로서 만나서 너무 가슴 아팠던, 아프고 학대받고 상처받은 이들의 꿈을 대신 이뤄주진 못해도 적어도 그 꿈이 이뤄지게 도와주고 싶습니다. 또 전문성을 살려 어린이를 살리는 심리재단을 만들어 부모교육부터 제대로 이뤄지게 하고 싶어요. 얼마 전 모유 수유를 하는 산모를 보니 아이가 젖을 더디게 무니까 무료한지 한 손으로 휴대폰을 보더군요. 아이들을 귀하게 키워야 그 아이들이 국가의 힘이 된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제 정치적 소원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변해서 세상을 바꿔야 합니다. 세상을 바꾸려면 그 사람의 정신이 건강해야죠.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 안의 혁명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멀쩡하던(?) 사람도 국회의원 배지를 달면 눈빛과 목소리가 교만하거나 능글맞게 변하는 경우가 많다. 신기하게도 의사 시절, 열정에 넘쳐 까칠해 보이던 신의진씨는 국회의원이 된 후 더 부드러워지고 더 깊어진 모습을 보였다. 그것 역시 정치적 전략일지 모르지만 ‘자신의 꿈보다 다른 이의 꿈’을 강조하는 그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이미 그는 많은 것을 이룬 사람이기에.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권호욱 경향신문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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