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댄스(dance)인 춤은 ‘생명의 욕구’를 뜻하는 산스크리트 Tanha(탄하)가 어원이다. 기쁨, 슬픔, 행복함과 고통 등 생활의 경험이나 환희 속에서의 운동, 활동의 요구 등이 바로 춤으로 표현된다. 모든 인간의 본능과 욕구이면서도 춤과 무용은 아름답고 건강한 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국내만이 아니라 세계에서도 유일한 지적장애인 무용단인 ‘필로스 무용단’을 이끄는 임인선 대림대 교수는 무용지도만이 아니라 이들과 함께 대학병원 암병동, 소록도 등 소외지역을 찾아가 공연도 한다. 11월 음성 꽃동네 공연을 앞두고 한창 연습 중인 필로스 장애인무용단을 찾아 임 교수를 만났다.
장애인 무용단을 만든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어릴 때부터 무용을 했고, 이젠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수로서 무용가로서 무용의 장점과 매력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가장 대표적인 무용의 장점은 심리적 안정이거든요. 우울하면 몸이 움츠러들지만 기분이 좋으면 온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고 흥이 나면 덩실덩실 손이 올라가잖아요. 춤의 본성과 기쁨을 알면서 그런 무용이 예쁜 얼굴과 몸의 전유물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고, 그걸 폭넓게 다른 이들에게 공유하고 싶어서 석사학위 논문을 ‘정신분열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무용요법’으로 정했습니다. 그런 환자를 만나기도 힘든 상황에서 6개월간 정신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그들에게 무용 지도를 했죠. 그런데 분명히 치유에 도움이 되고 효과도 나타나는데, 그것이 약과 주사 등 의료치료의 효과인지 혹은 무용의 효과인지 잘 규명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지적장애인으로 대상자를 바꾼 것입니다. 1998년 서울대 장애아동 체육교실에서 무용교사로 10여년간 봉사활동하면서 눈으로 두드러진 효과를 확인했습니다. 그땐 대학교수가 된다면 장애인무용단을 정식으로 만들자고 다짐했는데, 2004년 대림대학 교수로 오면서 정식으로 필로스 무용단까지 만들었으니 꿈을 이룬 셈입니다. 무용단은 설립된 지 올해로 9년째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대림대학에서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무용단을 만들었고, 2012년에는 필로스 무용단을 포함한 3개 단체로 구성된 필로스 하모니도 출범했습니다.”
작은 동아리 모임을 하나 만드는 것도 힘든데, 장애인무용단 설립에는 어려움이 없었나요.
“왜 없겠습니까. 그런데 어려움보다 보람이 너무 큽니다. 제가 2004년 대림대 교수로 부임해 그 다음해 바로 장애아동 무용체육교실을 열었습니다. 개설 첫해 학교 체육관에 장애아동 27명이 모였어요. 장애아동 무용교실이 운영된다는 소식은 바람처럼 장애아동 부모들에게 퍼져나갔죠. 40주 과정으로 프로그램을 짰는데, 혼자 하기는 벅차서 학교와 자원봉사 학생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2006년 12월 첫해 교육을 받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열린 수료식장은 울음바다가 됐답니다. 수료 기념품으로 ‘사랑상’이라는 이름으로 상장을 전하는데, 받는 아이마다 울기 시작했어요. 아마 수료식을 마치면 더 이상 무용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 친구들이 교실을 떠나면 더 이상 어디서 무용을 할 수 있겠나 생각하니 저도 눈물이 나더군요. 그날 무용을 이토록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계속 무용할 기회를 줘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학교 측에 ‘대학이 지역에 봉사하는 방법 중 하나’라며 무용단 설립을 제안했고, 흔쾌히 받아들여져 현재의 필로스 장애인무용단이 탄생했습니다. 설립된 첫해 단원 20명을 뽑는 데 경쟁률이 3대 1에 달했답니다.”
사회로부터 이탈한 노숙자들에게 발레를 지도해서 사회에 복귀시키는 프로그램도 있더군요. 그들은 신체적으로는 건강한 이들이지만 마음의 상처가 깊은 이들인데, 추운 겨울에도 노숙을 해서인지 온몸이 굳어 있답니다. 그런데 발레 교육을 통해 허리와 등, 다리를 꼿꼿하게 펴는 동작을 지도하는 것만으로도 딱딱하게 굳어 있던 마음이 펴지더랍니다. 이들과는 다른 상황이지만 지적장애인들에게 구체적인 무용의 효과는 무엇이가요.
“우리 무용단원의 경우 평균 IQ가 70 정도입니다. 발달장애, 지적장애, 다운증후군 등으로 나뉘지만 지적장애 1~3급 판정을 받은 이들이에요. 이들은 공통적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지적장애아라도 신체적 기량이 현저히 낮아요. 항상 웅크리고 다니고 각 근육들이 수축돼 있습니다. 둘째는 자기 마음속의 감정이나 생각들을 표현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집니다. 언어는 물론 손짓 등 동작으로 하는 일도 서툴러요. 셋째는 대부분 혼자 고립돼 지내는 경우가 많아 친구들과 어울려 생기는 사회성 발달도 약하죠. 이런 지적장애인들에게 굳은 어깨 등 몸을 바로 펴는 훈련을 하고, 무용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옆사람과 손도 잡고 감정 표현도 하다 보니 소통능력도 생기더군요. 이제 서로 언니 오빠 동생이 돼 잘 보살펴주는 모습을 보면 너무 흐뭇합니다. 이 외에도 무용이 주는 장점은 무궁무진합니다.”
비지적장애인들도 무용 동작을 익히는 것이 힘들고 음악 박자를 맞추기도 어려운데, 발레나 한국무용 등의 동작을 이들이 잘 기억합니까.
“당연히 힘들죠. 신체장애인들의 경우 휠체어를 타고 댄스를 하기도 하고, 농구 등 운동도 합니다. 지적장애인들만이 아니라 평범한 아이들도 모든 무용 순서들을 암기해서 무대에서 공연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저희 필로스 장애인무용단에서는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 이렇게 무용의 세 가지 전문적인 영역을 전문 선생님들을 모셔다가 교육하고 있는데요. 10분 정도의 한국무용 작품을 하려면 연습하는 데 2년여 정도 걸립니다. 사실 이 무용단의 목적은 훌륭한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나 지적장애아들의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소통이 우선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무용은 손이나 발의 움직임을 외워서 하는 동작이 아닙니다. 그들은 몸을 통해서, 음악을 통해서 자신의 동작들을 익히는데, 자신의 몸의 교육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순서를 몸으로 익히게 됩니다. 머리가 아닌 몸을 통해서 스스로의 교육적 효과, 운동의 효과로서 몸을 익혀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교육기간이 오래되면 그 결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커다란 결실이 되는 거죠. 어눌하고 서툴기는 하지만 자신의 마음과 정서, 감정과 상황을 몸으로 표현하는 그 자체가 아름답습니다. 제가 9년을 버틴 힘도 그런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적장애아들에게 무용을 지도하면서 배운 것은 ‘지도자의 덕목은 기다려주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게 교육철학이기도 할 겁니다. 조급하게 다가가서 결과물을 찾으려 하면 서로 실망하죠. 2~3년을 기다려 무대에서 10분의 공연을 할 뿐이지만 그 오랜 기다림 속에서 정말 아름다운 꽃이 피니까요.”
단원들은 무용을 배운 후 무엇이 가장 달라졌나요.
“아, 공연을 마친 후의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대부분 혼자만의 세계에서 생활하던 아이들은 예쁜 옷을 입고 아름다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또래의 친구들과도 사귀고, 자원봉사 지도단원들과 손을 맞잡고 마음을 전하는 기쁨도 누립니다. 그 아이들이 언제 발레 슈즈를 신고 알록달록 드레스를 입어보겠어요. 또 무대에 서면 박수갈채도 받으니 자존감도 커지는 것 같아요. 어머니들이 ‘우리 애가 무용연습 가는 날만 기다려요’라고 아이들의 마음을 전해줍니다. 가장 보람을 느낀 장면은 분당 서울대병원 암병동 공연장에서였습니다. 말기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전인치유의 밤이 열렸는데, 공연장은 암 환우들과 의료진들, 환우 가족들이 모두 울면서 울음바다가 됐어요. 공연을 마치고 단원 아이들이 그분들의 손을 꼭 잡고 ‘울지마세요’라고 위로를 해주었답니다. 지난 6월 소록도 한센병 환우들을 위한 공연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한센병 환우들이 저와 단원 부모들에게 ‘얼마나 힘드시냐’고 오히려 위로해주더군요. 늘 자기의 아픔과 어려움을 호소하던 이들이 화려한 조명 아래 서서 공연도 하고, 누군가에게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자존감과 자부심도 커지는 것 같습니다.”
보람도 크지만 고통과 어려움은 더 클 것 같은데요.
“그렇죠. 대림대의 적극적 협조와 부모님들의 격려 등 지원군도 많지만 일단 재정적으로도 어렵고 심신이 지칠 때가 많습니다. 제가 가톨릭 신자여서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는 성당에 가서 ‘왜 제가 이 일을 합니까’라고 묻고 눈물의 항의(?) 기도를 한 적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가 하게 돼 정말 감사합니다. 힘들긴 해도 이런 여건을 만들어주셔서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를 드립니다.
이 무용단이 교수님께 준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단원들보다 제가 더 많이 배우고 더 크게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내가 가르친다’ ‘내가 다 이끈다’는 오만함이나 건방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통해 저를 돌아다보는 기회가 생겼어요. 제가 가진 능력으로 이들에게 씨앗을 뿌려서 열매를 맺는 과정을 지켜보는 기쁨과 보람을 어떤 곳에서 얻겠어요. 우리 단원들이 저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덕분에 교수, 필로스 하모니 이사장 등의 직함이나 직업이 아니라 제 천직과 소명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우리 필로스 하모니와 무용단의 공연과 홍보를 더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9월 20일 경기 안성 하나원에서 탈북자를 대상으로 공연을 합니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아직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하고 싶어서입니다. 어머니들이 제게 ‘지적장애인들도 비지적장애인들과 똑같은 사람이고 그들도 꿈과 희망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을 널리 알려달라고 당부하십니다. 어쩌면 장애아들보다 더 가슴앓이를 하고 더 많은 눈물을 흘리시는 부모님을 대변해서라도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일을 더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그런데 진짜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나요. 또 다른 희망고문이 되지 않을까요.
“물론 쉽지 않습니다. 일단 우리 무용단원들은 직업 무용가로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단원 중 남자 수석무용수인 조동빈은 정말 기량도 뛰어나고 후배들도 잘 보살피는데, 매일 6시간 대형 할인마트에서 옷 접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가장 성공한 사례랍니다. 본인이 강하게 원하니깐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무용단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매번 연습 후 녹초가 돼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현재 우리 무용단의 레퍼토리는 발레와 한국무용뿐인데, 초기 단원 중에 현대무용을 하던 10여명이 생활을 위해 무용단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정말 무용을 사랑하는데도요. 다시 현대무용을 무대에 올리려면 2~3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장애인 무용의 저변 확대’랍니다. 그래서 당장 준비하고 있는 것이 국내 최초의‘장애인 문화예술 지도자 양성과정’입니다. 필로스 하모니는 오는 10월부터 장애인 무용 예비지도자를 가르치는 4주차 과정을 운영할 예정이에요. 장애인 무용을 확산하기 위해서는 결국 전문 지도자가 많이 나와야 해요. 이번에 좋은 성과를 얻는다면 공인 자격증까지 도입해 체계적인 지도시스템을 세우고 싶습니다. 장애아동의 몸짓에 숨은 아름다움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지적장애인들의 꿈과 희망을 실현해주기 위해 매일 더 큰 꿈을 꾸는 임인선 교수는 “자신 있습니다. 지켜봐주세요”라고 강조했다. ‘손을 위로 올려요’라는 말에도 우왕좌왕하는 지적장애 무용단원들 속에서도 임 교수는 희망에 가득찬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에게는 ‘기다려줄 수 있는 힘’이라는 가장 큰 무기가 장착돼 있기 때문이다. 이 조급증의 시대에 그의 그 뚝심이 마냥 감사했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