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의 승리!’
지난 12일 치러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선거에서 하창우 후보가 당선되었을 때 이런 반응이 나왔다.
대검 중수부장이나 대형로펌 출신의 다른 후보들과 달리 하 후보는 30여년간 변호사 한 우물만 판 순수 재야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2만여 회원을 거느린 대한변협의 수장이 된 그에게 쏠리는 법조계 안팎의 기대가 크다. 기대가 크다는 것은 그가 짊어진 무게가 그만큼 무겁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선거 때 전관예우 척결, 사법시험 존치,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 상고법원 설치 반대, 법관평가제에 이은 검사평가제 도입 등을 약속했다. 법조계 내부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찬반 논란이 거센 사안들이어서 그가 어떻게 공약을 실천해나갈지가 주목된다.
사시 기수도 제일 낮고 나이도 어린데 회장에 당선된 비장의 무기는 뭔가요.
“이 시대 변호사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제일 잘 알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1986년도에 변호사 개업을 한 이후 30년간 밑바닥에서 출발해 대한변협 공보이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지내며 우리 변호사들의 고충과 고민을 온몸으로 체험한 사람입니다. 요즘 판·검사 출신의 전관예우가 문제되는데 변협 회원의 80%는 저 같은 재야 변호사들입니다. 그들이 ‘하 후보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동질감을 느꼈고 제 공약들에 공감해서 뽑아준 것 같습니다.”
사시 존치, 검사평가제 등 공약이 화려한데 변협 회장이 그런 제도를 바꿀 권한이 있습니까.
“변호사협회장이 큰 권한이 있겠습니까. 다만 국민의 마음을 무기로 삼아 법을 만드는 국회를 설득하고, 검찰과 법원에 호소를 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서울변회 회장 시절에 제안해 실시한 ‘법관평가제’가 좋은 사례가 될 겁니다. 그동안 판사 한 사람이 여러 명의 변호사 위에 군림하며 변호사나 원고·피고 등에게 모욕을 주고 불공정한 재판을 해도 항의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변호사도 법조 삼륜의 한 축인데 왜 변호사의 위상만 낮을까’, ‘법치주의 국가에서 왜 이런 불평등이 일어날까’란 의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외국에 나가 자료와 사례를 수집해 2년간 준비한 끝에 우리 사법 사상 처음으로 법관 평가를 실시했죠. 서울변회의 변호사들이 각각 맡은 재판과 담당 판사들에 대한 평가기준을 만들어 자료화했습니다. 그걸 법원에 넘기니 태도가 달라지더군요. 2008년 12월 서울에서 처음 실시했는데, 지난해 12월 대구지방변호사회를 마지막으로 현재는 전국에서 법관평가제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제가 공약으로 내건 검사평가제도 법원과 검찰의 도움 없이 변호사들만으로 가능합니다. 변호사와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도 한 검사에 대해 그들의 능력, 품위. 친절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검찰에 전할 예정입니다. 그럼 오만하거나 일방에 치우친 검사들의 태도도 달라질 겁니다.”
그럼 변호사에 대한 평가는 누가 하나요.
“소비자인 의뢰인들이 하죠. 실력도 없고 평판도 나쁜 변호사들은 입소문이 나서 자연히 소비자가 외면합니다.”
전관예우 척결을 특히 강조했는데요.
“전관예우의 폐해는 정말 심각한 수준입니다. 대법관 등을 지내면서 평생 최고의 명예와 권력을 누린 이들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거나, 대형 로펌에 가서 엄청난 돈을 버는 것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관행입니다. 미국, 일본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법관들은 퇴임 후 봉사활동을 주로 하지 개업은 하지 않는 게 불문율처럼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일부 퇴임 대법관들이 명예를 돈과 바꿉니다. 대법원 상고 재판의 경우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서면 작성도 하지 않고 도장만 찍어주고도 3000만~5000만원을 받는 것이 관행처럼 돼 있습니다. 얼마 전 대법관 퇴임 후 아내의 편의점 일을 돕는다고 해서 청백리로 칭송받았던 분이 5개월 만에 대형 로펌 율촌으로 가지 않았습니까. 검사장 출신 변호사도 마찬가지죠. 사건 선임계도 안 내고 전화하는 등 온갖 탈법과 비리의 온상이 바로 전관예우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갑니다. 고액의 사건수임료를 내야 하거나, 상대편의 전관예우 변호사 때문에 패소하거나…. 그래서 제도를 고치고 처벌도 강력히 해야 합니다.”
뜻은 좋은데 현실화가 가능할까요. 그 똑똑한 분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할까요.
“그래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언론이 제발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 전관예우 폐지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켜 주어야 합니다. 국민들도 실상을 알면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청년 변호사들은 이런 현상에 수시로 울분을 터뜨립니다. 우리는 ‘전관예우’라고 하지 않고 ‘전관비리’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런 개혁은 전관 출신이 아닌 토종 변호사인 제가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평소 재야 변호사로 불이익을 많이 겪었나 봅니다.
“그럼요. 저는 사시 15기인데 연수원을 나와 5년간 고용변호사로 일했습니다. 당시 변호사들은 대부분 전관 출신 변호사들이었어요. 초보 변호사 시절 법정에서 ‘연수원에서 그렇게 배웠냐?’ 등의 모욕도 많이 받았습니다. 어느 동기 변호사는 ‘우리도 변호사입니다. 미운 오리새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품어 달라’는 울분에 찬 글을 쓰기도 했죠. 법정에 섰을 때 상대편 변호사가 전관, 특히 판·검사와 사시나 연수원 동기라거나 심지어 학연까지 있으면 가만히 서 있어도 온몸으로 차별을 느낍니다. 법조인은 오로지 법으로만 판단해야 하는데도요.”
사법시험 존치도 주장했습니다. 2017년에 완전히 사라질 예정이죠.
“사법시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서민이나 가난한 이들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희망의 사다리입니다. 갈수록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가난의 대물림, 부의 세습이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이런 격차가 극에 달하면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같은 근본적인 저항이 일어날 겁니다.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의 경제적 능력으로 평생 직업과 앞날이 결정되는 것이 말이 됩니까. 사법시험이 아니어도 계층 간 이동이 가능한 사다리들이 곳곳에 많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로스쿨만 해도 교육비가 너무 비싸요. 대학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한 학기에 4000만~5000만원 하는 곳도 많은데 3년을 다니면 그 학비가 몇 억인가요. 돈 없으면 로스쿨을 다니지도 못합니다. 곧 돈 없으면 변호사나 판·검사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게 옳은가요. 돈이 없어도 자신의 실력과 노력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는 물론 판·검사가 되는 길을 계속 열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침 국회에 이와 관련한 법안이 상정되어 있으니 시기도 적당하고요.”
변호사 수도 1000명으로 축소하자고 했는데, 이것 역시 선배들의 기득권 유지가 아닌가요.
“아닙니다. 국민들에게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변호사들의 생존을 위해서 변호사 수는 줄여야 합니다. 일본과 비교해보면 일본은 2014년에 1810명, 우리나라는 2500여명의 변호사가 탄생했어요. 그런데 일본은 우리보다 인구는 2.5배, GDP는 4배입니다. 과거엔 대부분 법대에서 4년간 공부하고 사법시험 공부하고 사법연수원 과정까지 짧아도 6년간 이론과 실무를 익혔습니다. 아무리 천재라 해도 6년의 과정은 이수해야 했죠. 요즘은 법대가 폐지되어 로스쿨 3년 동안에 모든 과정을 공부해야 하니 제대로 된 법률지식을 쌓거나 판례를 알기 어렵습니다. 로스쿨을 나와서도 대형 로펌에 취직하는 이들은 100여명에 불과하고 개인법률사무소에 취직하거나 회사의 법무팀에 들어가기만 해도 다행이죠.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는 순간 바로 적자생활을 면키 어렵고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도 실업상태인 이들도 많아요. 이래선 변호사도 고객들도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변호사 수를 줄여서 실력 있는 이들만 활동하게 하고, 그들이 최고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이번 대한변협 회장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이구동성으로 변호사들의 생존권을 강조했습니다. 변호사들이 그렇게 살기 어렵습니까.
“변호사 자격증만 있으면 부와 명예를 누리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더 이상 기득권층이 아닙니다. 서울변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변호사 1명이 한 달에 2건 정도의 사건을 수임합니다. 변호사들이 늘어나면서 과거에 비해 수임료나 상담료도 낮아졌습니다. 정말 사무실 유지는커녕 생계를 걱정할 형편입니다. 물론 변협 회장이 변호사들 밥그릇을 챙겨주고 이익만 대변하는 자리는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이익과 행복이죠. 사법개혁이 제대로 이뤄지면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고, 국민들이 믿고 찾을 때 변호사들의 행복도 따라올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동안 대한변협 공보이사, 대검찰청 검찰개혁자문위원회 위원, 대법원 법관임용심사위원회 위원, 서울변회 회장에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 위원 등 이력이 화려한데요.
“30년 노력의 결실입니다. 저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사시도 군복무를 마치고 6년 후에야 간신히 땄습니다. 고용변호사로 5년 일하다 개업한 후 서울변회에 참여해서 활동하며 11년 만에 서울변회 총무이사가 됐습니다. 소송업무와 서울변회 일을 하느라 주말도 안 쉬고 일을 해서 골프도 안 치고 다른 취미도 없어요. 덕분에 저의 노하우를 담아 변호사들의 업무 지침서인 <변호사 길라잡이>란 책을 써서 전국 변호사들에게 무료로 나눠줬습니다. 국내 최초로 이해충돌 문제를 이론화한 책입니다. 한국 변호사 역사가 100년인데 그 분야에 대한 책은 없었거든요. 변협 회장이며 그 책이며 모두 봉사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부와 명예를 다 가지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그런데 공짜가 없습니다. 제가 평범한 개업변호사에서 일생일대의 가장 큰 사건을 맡은 것이 안산의 모 쇼핑타운 분양사건이었어요. 1993년 일인데 건축주가 부도를 내고 도망가서 그 상가를 분양받은 360명이 계약금을 떼이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그 상가 점포권을 지키려면 가장 빨리 가처분신청을 해야 했어요. 그 많은 사람들의 서류를 일일이 손으로 작업하기는 시간이 절대 부족했죠. 마침 저는 당시 PC를 사용하고 있어서 3일 동안 잠도 못 자고 서류를 만들어 1순위로 가처분신청을 해서 그분들의 점포 소유권을 인정받게 했습니다. 대책위원들이 교대로 제 사무실을 지켜서 전 화장실 가는 시간 외에는 서류작성만 했습니다. 덕분에 그분들이 저를 신뢰하게 되었고 계속 고객들을 소개시켜 주었어요. 하지만 너무 긴장하고 잠도 전혀 못 자서 몸이 많이 망가졌습니다. 나중에 후회했죠.”
변호사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뭔가요. 아이들이 말을 잘하면 다들 ‘넌 이 다음에 변호사 되거라’라는 말을 하죠.
“신의입니다. 신의의 비결은 진정성이고요. 돈에 눈이 어두워 무조건 사건을 맡아도 안 되고, 게으름을 피워도 안 됩니다. 의뢰인의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필수 자질이죠. 얼마 전 식당에서 일하는 조선족 아주머니가 찾아왔어요. 애인에게 배신당한 아들이 그 여성에게 칼을 휘둘렀는데 1심에서는 집행유예, 2심에서는 살인미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답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고, 패소해도 좋으니 대법원에 상고하는 변호를 맡아달라고 하더군요. 그건 절대 이길 수 없는 사건입니다. 대법원은 양형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유무죄의 판단을 하는 기관인데 변호사가 수임해도 무죄로 판결을 받아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고 정 억울하면 돈이 들어가지 않는 국선변호사를 선임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의뢰인이 ‘져도 좋다’며 큰돈을 제시해도 양심을 팔아서는 안 됩니다. 의뢰인만이 아니라 동료 변호사들이나 다른 상대에게도 저는 그분의 입장을 먼저 고려해서 진심을 전합니다. 그러면 다 제 편이 되더군요. 그 덕분에 적이 없어요. 서초동을 다니며 평판을 확인해도 욕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화려한 이력으로 혹시 다음 총선에 출마하는 건 아닌지요.
“저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만약 정치에 뜻이 있었다면 대한변협 공보이사를 맡아 수시로 9시 뉴스에 나오던 10년 전에 금배지에 도전했겠죠. 저는 변호사만이 아니라 법조개혁의 선봉장이 되어 변호사들과 국민에게 봉사하고 싶을 뿐입니다. 정말 우리 변호사들도, 한국 법조도 엄청난 위기입니다. 이 심각성이라도 전하고 싶습니다.”
하창우 회장을 포함해 이번 대한변협 회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공통된 슬로건이 ‘밥은 먹고 삽시다’였다. 하 회장의 설명을 들어보니 부유한 전문가의 상징인 변호사들이 ‘생존’을 외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변호사 업계에도 부익부 빈익빈은 존재할 터. 더구나 대법관 출신은 도장 하나만 찍어도 5000만원을 받는 세계 유일의 전관비리 국가에 살고 있으니 그 그늘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변호사들이 있다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게 없을 듯하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