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관객 돌풍 윤제균 영화감독 “‘국제시장’은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
2015.01.27

윤제균 영화감독에게 ‘쌍천 감독’이라는 새로운 애칭이 붙었다. 그의 전작인 <해운대>에 이어 <국제시장>이 지난 13일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17일 개봉 후 28일 만에 ‘1000만 클럽’에 가입했으니 그야말로 파죽지세나 다름없다.

아버지 세대의 삶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시각 충돌이 영화 흥행에 일조한 것은 틀림없다. “힘든 시대를 굳세게 버틴 어르신들이 존경스럽다”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이들과 “아버지 세대의 삶을 그저 무한긍정과 찬양 일색으로 그렸다”고 지적하는 극과 극의 반응이 관객들의 발길을 잡아 끌었다.
이런 평가에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윤제균 감독이 아닐까.

[유인경이 만난 사람]천만 관객 돌풍 윤제균 영화감독 “‘국제시장’은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

<국제시장>의 돌풍을 예감했나요.
“아닙니다. <해운대>는 철저히 상업적으로 기획한 영화여서 많은 관객이 볼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 영화는 아닙니다. 제가 대학 2학년 때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로서의 작품이라, 그저 손익분기점인 600만 관객만 봐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쳐서는 안 되니까요. 두 편의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것이 행복하다기보다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영화는 유독 관객이나 평론가의 평가와 해석이 다양하더군요. 보수와 진보, 청년층과 노년층 등이 각각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윤 감독도 관객의 반응을 피부로 느낍니까.
“무대 인사를 가서도 현장의 소리를 확인하고, 혼자 몰래 극장에 앉아서 관객의 반응을 살폈습니다. 몇 번을 봐도 울컥합니다. 어린애도 있고, 제 또래 중년층도 있고, 머리 하얀 부모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정말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영화를 보고 있더군요. 영화를 10년 넘게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봅니다. 정말 보람된,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흥행도 감사한데, 3대가 한 영화관에서 웃고 우는 걸 봤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울고 어린아이도 울고…. 그런 게 잊지 못할 기억입니다. 부모님 세대를 비롯해 대다수는 제 의도를 순수하게 받아들인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물론 일부에서는 정치적이라거나 심지어 제가 보수나 우파의 아이콘처럼 평가되어 당혹스럽습니다.”

왜 지금 아버지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습니까.
“처음으로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던 것은 2004년 제가 첫아들을 낳고 아버지가 된 때였습니다. ‘덕수’란 제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한 주인공 황정민씨의 성정에 아버지의 모습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는 수시로 욱하는 성격에 유난히 잔소리가 심해서 살아 계실 때는 이해도 안 되고 짜증도 많이 부렸어요. 아버지가 퇴직 후 주식투자 실패로 가세가 기울었는데 돌아가실 때 유언이 ‘미안하다’였습니다. 임종 때는 그 의미를 잘 몰랐는데 돌이켜볼수록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그때 ‘아버지, 그래도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못한 게 응어리가 됐습니다. 가난해서 신혼살림도 10평짜리 반지하에서 시작해 3년간 살았죠. 그런데 제가 아버지가 되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연민의 정도 느껴졌습니다. 언젠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해운대> 이전의 저는 흥행감독이 아니어서 투자를 받기가 힘들었어요. 더구나 우리 아버지 이야기는 시대극이라 고증 등을 담으려면 100억원이 넘는 큰 돈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낭만자객>이 완전히 실패하면서 아무도 투자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복고풍이란 시대의 흐름보다 영화를 제작할 투자금을 받은 시기가 지금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겁니다.”

그 ‘아버지’가 너무 무한 긍정으로 그려져서 오히려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는 지적도 있더군요. 아버지 세대들이 한국전쟁, 독일 파견 광부, 월남전 참전, 이산가족 상봉 등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이겨낸 것은 다 압니다. 그런데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란 대사에 펑펑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지만 ‘우리는 정말 성실히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강요하는 느낌을 받았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좀 더 극단적인 이들은 “아버지 세대를 무한 찬양해 박정희 시대를 미화했다”는 평가도 하더군요.
“문제의 그 마지막 대사는 제가 쓴 겁니다. 저는 ‘정치적인 의도’를 없애기 위해 당대의 어두운 이야기들을 뺐는데 그렇게 정치적인 부분을 빼버린 것이 오히려 논란을 만들어 당황스러웠습니다. 우선 이 영화는 정치의식이나 사회비판을 위한 게 아니에요. 일부에선 왜 정치가 빠졌냐, 왜 사회비판적인 시각이 없냐고도 하시는데, 이 영화는 평범했던 제 아버지 얘기를 하려고 만든 작품입니다. 돈이 없어서 대학도 못가고, 정치가 뭔지도 모르고, 자식 안 굶기게 하려고 노력했던 분들에 대한 헌사일 뿐입니다. 전 ‘상업영화 감독’일 뿐, 영화로 세상을 바꾸거나 하는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변호인>을 만든 양우석 감독과 친한데, 그 친구도 노무현 대통령을 미화했다는 이유로 좌파 감독으로 분류되더군요. 개봉 전부터 일부 네티즌들로부터 평점 테러까지 당했으니 저보다 더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얼마 전에 같이 만나 ‘우리가 왜 이렇게 됐지?’라고 넋두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영화일 뿐 정치적 텍스트가 아닙니다.”

윤 감독의 정치적 성향은 어느 쪽인가요.
“전 중도예요. 이번에 보수의 기수, 우파의 아이콘으로 되었는데 그게 나쁜 것이 아니라 저를 너무 잘못 해석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제가 감독으로 유명세를 탄 <두사부일체>도 학교 내 깡패를 다룬 영화이고, <1번가의 기적>은 철거민의 애환을 다루었고, <나의 깡패같은 애인>은 취업난을 겪는 미취업생이 주인공입니다. 그밖에도 성소수자를 다루거나 <해운대> <7광구> 등은 재난영화인데 작품 성향으로 보면 상당히 진보적이 아닙니까.”(웃음)

[유인경이 만난 사람]천만 관객 돌풍 윤제균 영화감독 “‘국제시장’은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

좌와 우보다도 세대 갈등을 자극한 것이 더 화제가 됐습니다. 덕수(황정민 분)가 베트남 전쟁에 가서 고생을 하면서 집으로 부친 편지에서 ‘힘든 세월에 태어나서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는 문장이 특히 도화선이 됐더군요. 일각에서는 ‘우리 고생에 비하면 너희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다’가 되는 거냐는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고 ‘부패나 무능한 어른들도 많은데 자기 반성이 없다’며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반응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건 각본을 맡은 박수진 작가가 쓴 대사였는데 시나리오를 읽을 때도 전혀 문제를 못 느꼈거든요. 그 대사는 특정 세대의 상징이 아니라 그저 부모의 마음을 대변하는 겁니다. 저만 해도 두 아들이 없다면 이렇게 열심히 일 안 할 거예요. 부모라면 자식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고, 자식이 아프면 차라리 자신이 아프고 싶다는 부모 마음은 이념이나 세대를 초월해 똑같지 않을까요. 그리고 아버지에게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리려면 그 고생담을 전할 수밖에 없는데 그걸 미화했다고 하니…. 저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매개로 세대간 소통과 화합, 공감대를 키우고 싶어서 만든 작품인데 정말 당혹스럽습니다. 처음엔 화도 나고 슬프기도 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갑니다. 모든 것의 의도와 해석은 다를 수 있기에 그들의 의견도 존중합니다. 하지만 ‘어른’은 또 대체 누구일까요. 65세가 넘으면 어른일까요. 초등학생이 보기엔 대학생 형도 까마득한 어른이 아닐까요. 거듭 강조하지만 이 영화는 ‘따뜻한 가족영화, 전 세대가 같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는 순수한 마음에서 출발했음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윤 감독의 아들도 이 영화를 봤나요.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초등학교 4학년인 큰아들은 ‘쓰나미는 언제 오냐?’면서 ‘해운대가 100배나 재미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계속해서 ‘저건 뭐냐’, ‘왜 저랬냐’ 등 각 시대별 사건과 인물을 물어봐서 짜증이 났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것 역시 소통이더군요. 서로 잘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알아듣게 이야기해주는 것.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물론 각 계층별로 그럴 일이 없어서 소통이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 영화를 보고 ‘애국심’을 강조하고 문재인·김무성 의원 등 거물 정치인들이 이 영화를 봐서 더욱 더 정치적으로 해석된 것 같습니다. 이게 득인가요, 실인가요.
“그분들 덕분에 연일 매스컴을 장식했으니 관객 동원에는 분명히 득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바람에 세대간 소통, 지역간 소통 등을 다루고 싶다는 의도가 손상되었으니 작품적으로는 실인 면도 있습니다. 극중에서 경상도 사람을 구해준 이가 전라도 사람이고, 파독 광부나 간호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도 한때는 이주노동자였다’는 것을 전하는 등 영화 곳곳에 계층간의 갈등을 해소하려는 장치를 해두었는데 그런 노력이 다 묻힌 것 같아 2주 정도는 패닉 상태였습니다.”

이 영화는 <포레스트검프>란 미국 영화처럼 개인사인데 역사의 실존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 인물을 선정하는 데 특별한 이유나 기준이 있었나요.
“무엇보다 정치인은 배제했고, 경제·사회·문화·스포츠 등 각 분야에서 시대적 아이콘을 선정하느라 조사도 많이 하고 회의도 많이 했습니다. 네 가지 시퀀스에 주연배우들의 감정의 진폭이 클 때마다 쉬어가는 포인트로 제3의 인물을 등장시켰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낸 분, 또 3대 중 2대는 아는 대중적인 인물을 골랐어요. 기업인의 경우 정주영 회장과 이병철 회장을 놓고 고민했는데 젊은이들은 이병철 회장이 일찍 돌아가서인지 잘 모르는 이들도 많고 무엇보다 정 회장이 스토리가 풍부해서 뽑았습니다. 남진과 나훈아도 라이벌이었는데 남진씨는 전라도 출신에 해병대로 베트남 참전도 해서 지역과 군복무가 감안되었고요. 스포츠 분야의 차범근 감독도 청년층에서는 축구선수가 아니라 축구해설가, 심지어 스포츠아나운서로 아는 이들도 있더군요. 정말 세대차이가 크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근현대사를 영화로 만들면서 더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요.
“시대극은 감독으로서의 목표치가 높아야 합니다. <해운대>는 상상력으로 가미하는 부분이 많았죠. 무엇보다 아버지에 대한 ‘헌사’이니만큼 작품성에서도 잘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죠. 그리고 제 부모님 세대가 대부분 살아계신 분들이 많아 6·25나 월남전 등을 다룰 때도 고증을 철저히 해야 엉터리라는 비난을 안 받습니다. 무엇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청소년들이 볼 때 제대로 된 고증을 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1945년부터 1987년까지를 다룬 KBS TV <영상실록>은 5번 이상 꼼꼼하게 봤습니다. 파독 간호사와 광부, 월남전 참전 군인들도 인터뷰를 했고 각종 책과 자료사진을 모았습니다.”

고려대 상대 출신에 광고회사에서 근무했는데 영화감독이 된 이유는 뭔가요.
“제게 영화감독이란 직업은 마치 어린이들이 ‘난 이담에 대통령이 될 거야’란 말만큼이나 비현실적인 말이었습니다. 란 영화를 보고 너무 매력적이어서 영화감독이 되면 저런 멋진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했죠. 그런데 1998년 IMF 무렵, 회사에서 한 달간 무급휴직을 주더군요. 돈이 없어 여행도 못 가고 영원히 오지 않을 긴 휴가에 무얼 할까 궁리하다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그게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당선이 되었고, <두사부일체>의 시나리오를 신생회사와 계약했는데 유명 감독을 못 구해 제가 감독까지 맡았습니다. 그게 흥행대박이 났죠. 서른세 살에 시나리오를 쓰면서 처음으로 제게 글재주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가끔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내가 뭘 잘하는지 우리 자신도 모를 수 있다. 그러니 이것저것 도전해봐라’란 이야기를 합니다.”

윤 감독에게 영화는 무엇인가요.
“대중들에게 제 생각을 필름으로 소통하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감독이란 직업이 대단한 명예나 벼슬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영화를 통해 관객을 가르치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도 관객이 행복해하는 작품입니다. 제 영화를 보고 행복해하는 관객을 보면 저도 행복해집니다. 국제적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고, 언론이나 평론가들의 찬사에 가득한 평도 중요하지만, 관객의 기쁨과 행복이 제게는 더 의미가 큽니다. 저는 상업영화 감독이고 그것이 상업영화 감독으로서의 보람이자 사명감입니다.”

‘상업영화’라는데도,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라는데도 보수·진보가 충돌하고 세대간에 갈등을 빚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진다. 감독의 역량 탓일까, 너무 예민한 관객 탓일까. 아니면 지역과 세대별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권에 너무 익숙한 탓일까. 아무튼 우리 아버지들이 아무리 고생하셨다고 해도 ‘따뜻한 가족영화’ 한 편 편안하게 볼 수 없는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음은 분명한 것 같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매체별 인기뉴스]

      • 경향신문
      • 스포츠경향
      • 주간경향
      • 레이디경향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