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에서 세금하고 원가가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유통 마진, 제조 원가가 38%이고 나머지 62%가 담배소비세, 교육세, 부가가치세, 국민건강증진기금 부담금 등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렇게 세금을 바치는 흡연자들을 위해서는 정부가 해준 것이 없습니다.”
“만약 천국에서 담배를 못 피우게 하면 나는 그곳에 가지 않을 테다”라고 말한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 같은 애연가들도 수시로 금연을 시도한다. 또 연초에는 ‘금연’을 다짐하는 이들이 많은데 올해는 그 결심이 유독 비장하다. 담뱃값이 2000원이나 오른 데다가 식당, 커피숍 등에서도 담배를 피울 공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국민 건강과 청소년의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서라고 담뱃값 인상 및 금연구역 확대 취지를 강조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담배소비자협회를 비롯, 흡연자들은 이번 담뱃값 인상에 대해 조세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헌법소원 제기까지 검토하고 있다. 수십년간 한국의 흡연자들을 대신해 흡연 권리를 강조한 정경수 담배소비자협회 고문(전 문화방송 아나운서실장)을 만나 담뱃값 인상과 그 후유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담뱃값 인상 후 색다른 풍속도가 많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흡연인구가 1000만입니다. 대부분 젊은 청장년층이고 월평균 수입도 200만원대인 이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한 갑당 2000원 인상은 엄청난 충격일 겁니다. 하지만 금연이 어디 말처럼 쉽습니까. 그래서 개비 담배, 전자담배, 짝퉁 담배 등이 등장했는데 마치 1960년대, 혹은 유신시대로 회귀한 듯한 현상들입니다. 그리고 담뱃값을 인상한 것이 국민 건강을 위해서라고 강조하는데 이런 유사 담배들은 건강을 엄청나게 해치는 주범들이에요. 갑자기 2000원씩이나 올려놓으니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왜 똑같은 담배인데 개비 담배가 더 나쁜가요.
“담배는 포장된 갑에서 노출되면 20~30분 사이에 속성이 달라집니다. 담배맛도 달라지고 니코틴 성분이 더 독해져 그렇게 강력한 박스 형태로 포장을 하는 겁니다. 담배는 원료인 연초를 20~30회 정도 찌고 말리는 과정에서 독소 같은 걸 제거합니다. 비싼 담배일수록 그 과정이 더욱 복잡합니다. 예전에 담배 꽁초를 수거해 알맹이만 까서 가마솥에 다시 찌고 말리는 과정을 거쳐 ‘88담배’를 만들었는데 독성도 약해지고 오묘한 맛이 나서 진짜 애연가들에게 사랑받았습니다. 1500원에 팔았는데 이윤이 안 남았는지 사라졌어요.”
보건복지부에서는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전자담배에는 포름알데히드, 아세트알데이드 등과 중독물질인 니코틴 등 일반 담배와 동일한 발암 성분이 들어 있다’며 전자담배의 유독성을 강조했습니다. 전자담배에는 타르 성분이 없어 더 안전하다는 일부 전자담배 사용자들의 ‘믿음’과는 상반된 내용이라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많더군요.
“담뱃값 인상으로 전자담배에 대한 수요가 예상 밖으로 늘자 세수 부족을 염려한 정부가 대대적인 언론 플레이에 나선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많죠. 전자담배만이 아니라 베트남 등에서 들여오는 유사 담배의 경우 성분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또 연초를 구해 필터나 종이로 말아 피우는 담배도 등장했던데, 가격은 쌀지 모르지만 필터도 제대로 안 되고 독합니다. 가뜩이나 양극화가 심한데 돈 있으면 그냥 피우고, 돈 없는 이들은 건강에 나쁜 담배를 피우게 되는 또 다른 양극화를 만드는 셈입니다.”
그래도 담뱃값 인상 발표 후에 금연자들이 늘었다고 발표가 나옵니다. 담뱃값 인상으로 금연효과가 나타났다는 방증이 아닐까요.
“6월 말까지는 흡연율이 요동치고 뚝 떨어지는 것으로 나올 겁니다. 그런데 담뱃값이 오르면 어느 나라나 처음에는 금연자들이 늘어납니다. 설문조사의 함정도 있어요. 담배를 끊을 예정이냐는 말에 ‘죽어도 안 끊겠다’고 답하기보다 ‘끊고 싶다’고 답하는 이들이 더 많죠. 또 담배를 두 갑 피우던 이들이 한 갑으로 줄이기도 하고요. 자신은 금연을 하고 있다고 믿고 싶을 겁니다. 참고 참다가 필터까지 다 피워서 금단현상을 해소하려는 이들이 많은데, 그럼 니코틴의 독성을 더 많이 인체에 보내는 겁니다. 국민건강 증진이 아니라 국민건강 악화를 만드는 셈이죠.”
담뱃값 인상에 대한 논의는 여러 정부에 걸쳐 이뤄졌는데 왜 정부가 이때 가격을 올렸을까요.
“국민을 걱정하기는커녕 두려워하지 않는 안하무인격의 정부여서입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1000원을 올리려고 노력했지만 좌절하고 500원만 올렸습니다. 그래서 1조8000억원의 돈을 거둬 건강증진기금으로 국립암센터도 만들었죠. 그 후 다른 정부에서도 담뱃값 인상을 검토했지만 손을 못 댄 것은 흡연자가 무서워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담배가격은 물가 상승요인의 12번째 자리를 차지합니다. 쌀은 24위예요. 국민 식량인 쌀보다 물가상승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게 담뱃값입니다. 작년엔가 KBS <일요진단>이란 프로그램에서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과 담뱃값 인상에 관한 대담을 했는데 녹화 후에 ‘1000원만 올리면 안 될까요’라고 묻더군요. 2000원은 청와대의 의지인데 새로 취임한 보건복지부 장관이 강력하게 동의하고 여당 역시 엄청난 복지재원의 부족을 절감하니 밀어붙인 겁니다. 박근혜 정부가 약속한 복지정책들을 지금 예산으로는 도저히 수행이 불가능하니까요. 수치를 제대로 따져보면 이번 인상으로 거둘 돈이 7조원 정도입니다. 담배의 세금은 준조세이니 정부는 보너스를 받은 셈이고, 그 부담은 모두 담배 피우는 ‘쪼다들’이 내는 것이고요. 돈이 많고 행복한 이들은 담배를 왜 피웁니까. 일상에 찌들고 고민이 많거나 불안한 서민들이 피우지….”
그래도 그 돈이 국민 복지나 건강증진에 쓰인다면 좋은 일 아닌가요.
“담뱃값 인상의 핵심은 국민건강증진법에 의거해서 담배가격에다가 포함시킨 부담금을 담배를 피우는 1000만명이 간접세로서 납부를 하는 겁니다. 담뱃값에서 세금하고 원가가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유통마진, 제조원가가 38%이고 나머지 62%인 1550원이 담배소비세, 교육세, 부가가치세, 국민건강증진기금 부담금 등입니다. 62% 정도가 세금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렇게 세금을 바치는 흡연자들을 위해서는 정부가 해준 것이 없습니다.”
건강보험 외에 무얼 해주어야 할까요.
“정부나 금연만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흡연자에 대한 일체의 배려 없이 담뱃값 인상, 금연구역 확대, 거리 금연, 경고문과 경고그림 등 초지일관 흡연자들을 옥죄어 오고 있습니다. 1000만 담배 소비자가 있는 현실에서 그저 마녀사냥감이 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금연자도 흡연자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배려했으면 좋겠어요. 금연빌딩이 대부분이고 식당이나 카페에서도 담배를 못 피우니 무엇보다 곳곳에 흡연공간을 만들어주기 바랍니다. 강력한 흡인기를 갖춘 흡연공간은 10평에 5000만원 정도가 듭니다. 제가 담배소비자협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14년간 전국에 20개의 흡연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중앙대, 동대구역 등 역과 강남고속버스 터미널, 고속도로 휴게소 등등에 설치했죠. 흡연자들도 악마나 범죄인이 아니라 성실한 생활인이고 무엇보다 우리가 낸 돈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공간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왜 정부가 무시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인체에 해로운 것은 담배만이 아닌데 유독 담배가 건강의 적으로 느껴집니다.
“음모론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죠. 미국의 3대 메이저 달러박스이자 경제를 이끌어가는 것이 오일·무기·담배인데 2대 메이저인 무기상과 오일 부자들이 정부와 결탁하고 언론 플레이를 해서 담배 죽이기를 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들이 세계보건기구를 창설하는 데 큰 기금을 내놓았죠. 그리고 담배는 어느 나라에서나 조세저항이 가장 작은 품목입니다. 소비자는 절대다수이지만 개개인이지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집단 파워가 없거든요. 또 <흡연, 과연 옳은가>란 책이 있어요. 의학·물리학자들이 연구를 한 것인데 담배가 꼭 암의 주범은 아니라는 기술을 했는데 곧 책이 절판되었습니다. 다국적 제약회사에서도 금연패치 등을 만들어 거액을 벌어들이고 있죠. 또 기대 잔여수명 등을 조사하는 항목을 보면 ‘담배를 피운다’고 하다가 ‘담배를 끊겠다’고 하면 기대수명이 5년 늘어나는 것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골초들은 대부분 평균수명 이상을 살았거든요.”
금연 홍보대사인 코미디언 이주일씨와 친했지요? 그분도 돌아가시기 직전에 ‘담배 피우지 말라’고 했던데요.
“담배가 건강에 좋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분명히 나쁩니다. 간접흡연의 폐해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이주일씨의 경우엔 평소 골초도 아니고 워낙 술을 많이 마셨어요. 무엇보다 외동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후엔 그 스트레스와 고통을 매일 술로 풀었답니다. 저는 담배보다 나쁜 것이 스트레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담배를 피워야 정신적으로 안정도 되고 창작의욕도 높아져서 평화를 얻는다고도 합니다.”
14년 동안 한국담배소비자협회를 이끌면서 우리 사회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요.
“소통과 공감의 시대라고 하는데 흡연자를 너무 죄인 취급하지 말고 사회·문화적으로 공존하게 하는 균형감각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서로 갈등이 없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 아닙니까. 그런데 이 정부는 담뱃값은 잔뜩 올려놓고, 흡연자는 설 공간도 없이 만들어 마치 ‘담배 피우려면 돈 내놔’라고 하는, 거의 양아치 같은 행태를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흡연공간 설치를 10여년간 요구해도 들어주지도 않아 정부를 믿기 어렵습니다. 정말 많이 배신당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협회에서라도 기업광고 매체로 활용하는 흡연공간을 만들고 흡연자들의 건강과 권익을 위한 콘텐츠를 개발하려고 합니다. 외국 사례도 연구 중입니다. 일본에는 흡연버스도 있다고 합니다. 완벽한 흡입 시스템을 갖춘 버스에서 마음껏 담배도 피우고 거리 구경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금연을 강조하는 이유는 아마도 청소년 흡연이 너무 급증하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 협회의 가장 큰 사업과 활동이 각 학교마다 다니며 청소년 흡연예방 캠페인을 벌이는 겁니다. 흡연자의 행복추구권도 중요하지만 성장기에는 흡연이 신체적·정신적으로 좋지 않다는 것을 홍보하고 교육도 합니다. 저도 10여년간 전국을 돌며 자원봉사로 흡연예방 강의를 해왔습니다.”
성대를 중요시하는 아나운서 출신이 왜 담배를 피우고, 담배소비자협회 회장까지 했습니까.
“전 담배를 안 피웁니다. 하지만 흡연자들의 애환을 가장 잘 알고, 너무나 차별을 받는 것 같아 그나마 지명도가 있는 제가 나선 것입니다. 흡연자들이 사회로부터 너무 소외되거나 매도당하고 정부로부터도 기만당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서요. 그래서 더 중립적 시각에서 활동했습니다. 사실 담배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흡연자들 아닌가요.”
담배를 안 피우는 분이 골초들과 있으면 괴롭지 않습니까.
“아유, 그 연기 때문에 미치겠어요. 그런데 오죽하면 그렇게 피울까 하고 이해를 합니다. 담배와 상관없고 아무 이익도 없는 저도 이렇게 공감을 하는데 왜 우리 정부는 국민의 5분의 1이란 큰 숫자, 무엇보다 엄청난 세금을 내는 흡연자들의 행복이나 권리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지 모르겠습니다.”
흡연자들의 대부로 가장 맹렬하게 흡연자들의 권리를 주장했던 정경수씨가 담배를 안 피운다는 사실에 신선한 배반감을 느꼈다. 사실 건강을 해치는 것이 어디 담배뿐이랴. 담배보다 훨씬 무서운 스트레스를 피하고 해소하기 위해 담배를 피우는 것이라고 흡연자들은 흔히 말한다. 제발 이 정부가 담배 좀 덜 피우게 스트레스를 덜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