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한솥밥 문화’를 강조하고 IMF사태 등 위기가 생기면 더욱 똘똘 뭉쳐 국민 통합의 힘을 보여주는 대한민국. 하지만 단군 이래 요즘처럼 곳곳에서 갈등과 양극화가 심화된 적도 없는 것 같다. 진보와 보수, 젊은층과 어르신, 사측과 노조들이 각각 반목한다. 심지어 세월호 유가족들마저 단원고 유가족과 일반인 유가족으로 나뉠 정도다. ‘새정치’를 강조하면서도 정당들은 더 분열되고 정치는 실종된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100% 국민통합’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한 것일까.
마침 10월 11일부터 대전을 시작으로 국민대통합위원회가 ‘대한민국, 국민에게 길을 묻다-대한민국 미래비전’이란 국민 대토론회를 연다.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국민에게 길을 묻는 법을 들어봤다.
국민 대토론회를 열게 된 배경은 뭔지요.
“우리나라가 세계인들이 놀랄 만큼 고속 경제성장을 하고 한류문화 등 문화적 파워도 강해졌지만 그만큼 갈등과 양극화도 극심합니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 소득에 따른 계층간 갈등 등 구조적 장애요인에 직면해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확실합니다. 핀란드와 싱가포르 등 주요 국가들을 보면 미래 환경 예측과 국민 의견 수렴을 통해 자국 고유의 미래 비전을 마련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 시민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고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인식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 국민의 광범위한 참여를 통해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미래 비전을 마련하고, 이를 사회 통합의 촉매로 활용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동안 소수 전문가와 관료 중심으로 진행된 미래 비전은 일반 국민들의 생각을 반영하는 데는 소홀했죠. 그래서 국민 대토론회를 5차에 걸쳐 시행할 예정입니다.”
일반 국민, 그 문제의 당사자들 목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하죠. 저출산 문제 해결 토론회만 해도 절대 출산이 불가능한 중년 남성학자나 관료들이 모여 논의하니 해결책이 나오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토론회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요.
“프로젝트는 3단계로 진행됩니다. 핵심 의제 선정, 국민 의견 수렴, 결과 분석 정리인데 더 풀어 설명하면 여론조사 및 의제 선정, 권역별 대토론회, 백서 발간 순으로 끝납니다. 온라인 설문(2022명)과 국민 대면조사(1206명), 전문가 조사(101명)로 이뤄지는 여론조사는 이미 끝났고요. 조사를 통해 추려진 6개 미래상(표 참조)의 선호도를 분석해 핵심 토론 의제 4~5개를 선정 중입니다. 이후 네 차례의 권역별 토론회(1000명 참여 예상)와 한 차례 마무리 토론회가 열리게 됩니다. 이 정도 규모와 깊이로 국민 미래상을 파악해본 적은 역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프로젝트가 아직 진행 중이긴 하지만 온라인 설문 등 조사 결과 국민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20~30년 후 미래에 대해 일반 국민이 논의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응답자의 78%가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 중 35.5%는 ‘매우 필요하다’고 응답했습니다. 희망하는 미래상에 대해서는 복지국가(39.8%), 정치선진국(22.0%), 경제대국(11.6%), 문화강국(8.1%) 순이었습니다. 젊은층과 학생, 여성층은 경제대국보다 문화대국을 선호했습니다. 시급히 대응하거나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계층·세대 간 갈등 해소와 통합’이 첫 번째로 꼽혔습니다.”
사회 분열이 극에 달하고 경제가 가라앉은 상황인데 ‘토론’으로 어떤 해결책이 나올지 우려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더구나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집행기구가 아니라 대통령 소속 자문기구일 뿐인데 어떤 역할을 할지도 미지수고요.
“물론 ‘한가하게 토론이나 할 때냐’란 지적이 나올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정부 주도만으로는 지금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국정 방향을 국민에게 직접 묻는 유럽 스타일의 공론화 작업은 생소한 실험이지만 성장의 한계에 직면한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국을 누비며 토론회와 강연회를 직접 진행하는 등 위원장이 바쁜 것은 알겠는데,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출범한 지 벌써 1년 3개월이 흘렀습니다. 존재감이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국민통합이란 단어 자체가 너무 막연하고 올림픽 메달처럼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결과가 없으니 그런 말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동안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위한 토대를 세우는 기간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선 ‘기획정책’ ‘대한민국통합가치’ ‘갈등예방조정’ ‘국민소통’ 등 4개 분과위원회별로 무엇을 할지 조정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국민대통합 추진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중앙부처와 시·도, 외부 전문가, 시민단체, 종교계, 연구기관 등과의 네트워크도 구축해야 했고요. 무엇보다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시민단체, 종교단체와의 소통 채널 마련에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그 결과 중앙부처와 시·도에 국민통합정책책임관을 지정하고, 국민통합정책협의회를 구성했으며, 민·관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정책연구협의회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갈등관리포럼도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사회 변화의 인프라를 까는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통합을 피부로 느끼려면 시간이 걸릴 겁니다. 저는 ‘구들장 효과’라고 말하는데요, 지금 부지런히 불을 때니 곧 따끈따끈해질 겁니다.”
IMF사태 때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금모으기 운동에 참여했고, 서해안에 기름이 유출되었을 때는 전국에서 자원봉사자의 물결이 넘쳐흘렀습니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은 오히려 갈등과 분열상이 더 강조된 것 같습니다.
“역지사지, 즉 상대방을 서로 이해하는 마음이 부족해진 것 같습니다. 자기 생각과 다를 뿐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서로가 상대방이 틀리다, 잘못됐다고 우기고 싸웁니다. 과거에도 서해 페리호 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건, 삼풍아파트 붕괴 등 대형사고가 많이 일어났는데 그동안의 적폐가 쌓여서 세월호 같은 대형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지금 정신차려야 하고, 깨닫고, 개혁하고, 실천해야 다시는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월호 특별법이 빨리 통과되어야 하고, 이제야말로 국민통합이 절실합니다.”
한 위원장의 이력서를 보면 15대 대선에서 범야권 대통령후보 단일화 협상 추진위원장을 담당해 ‘DJP 공동정권’을 창출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 후 제1기 노사정위 위원장으로서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냈습니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초대 대표상임의장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통합의 달인’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비결이 뭔지요.
“진정성입니다. 왜 통합해야 하는지 의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이해당사자에게 위기의식을 느끼게 하고, 자신을 버리면 나라를 구한다는 애국심을 호소해야 하는데, 그게 모두 진심이어야 합니다. 노사정위원회의 경우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자의 신분이었습니다. IMF에서 노·사·정 타협이 안 되면 돈을 못 꿔주겠다고 하는 긴박한 상황이었어요. 노동연구원 근처에 포장마차가 두 곳 있었는데 그때 마신 소주가 몇 박스는 될 겁니다. 백번 대화를 해도 진정성이 없으면 안 됩니다. 또 인내심을 갖고 경청하면 핵심이 파악됩니다. 예컨대 돈도 갖고 싶고, 집도 사고 싶고, 자가용도 큰 것으로 바꾸고 싶은 경우 핵심은 돈입니다. 그럼 돈을 어떻게 벌거나 모을까에 집중해야 하지요. 민화협의 경우도 130여개 단체가 모인 곳이고, DJP연합은 1년 동안 극비로 진행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정당에 국민경선제를 최초로 도입한 것도 제 아이디어입니다. 당을 개혁하고 국민에게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믿었죠. 처음엔 반대가 엄청났고 별의별 험한 말이 다 나왔지만 그걸 다 참아내며 두 달 동안 설득했죠. 그걸 보며 강운태 의원이 ‘생불’(生佛)이란 별명을 붙여주더군요. 덕분에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켰죠. 국민을 동원해 의제를 장악한 셈입니다. 국민대통합 위원장을 맡을 때도 팔자소관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지난 이야기이지만 여전히 궁금해서 묻습니다. 대표적인 DJ맨으로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지냈고 새천년민주당 대표도 했는데 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고 국민대통합위원장까지 맡았습니까.
“정확히 2012년 10월 5일 지지 선언을 했어요. 저에겐 1982년 국회에서 DJ 석방 등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정부 질의를 하기로 결단한 후 30년 만의 중요한 선택이었죠. 그땐 집을 일주일간 비우고 ‘광주사태 진상조사하라’, ‘DJ 석방하라’, ‘대통령 직선제 하라’, ‘언론자유를 주라’, ‘지방자치제 실시하라’ 등 국민의 바람을 담은 질의와 요구를 했는데, 언론에는 ‘한광옥 의원, 정국 현안에 대한 발언’으로만 나왔어요. 그래도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는 마음으로 용기를 낸 선택이었습니다. 이번 대선 때도 평생 나라를 위해 일해온 정치인으로서 국가를 위해 뭔가 결단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후보로 나온 세 분 중에선 그래도 박 후보를 지지하는 게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길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대선 무렵에 통일문제연구원이란 작은 사무실을 운영했는데, 새누리당 당사까지 거리가 불과 10m 정도였어요. 그런데 박 후보를 지원하려고 당사까지 가는 게 참 힘들더군요. 열흘을 고민하다 결심했습니다.”
박 대통령과 친분이 있었습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 후 동교동으로 돌아왔을 때 천막당사를 이끌던 박근혜 대표가 찾아와 ‘아버지 때 상처입은 것을 딸이 대신 사과드린다’고 했습니다. 김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이 사과하는 느낌이다’라고 감동하셨지요. 그리고 ‘동서화합이 중요한데 가장 적임자가 박근혜 대표다, 결자해지이니 동서갈등을 부추긴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 그걸 풀어라’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도 그 의견에 공감하고, 정치라는 게 나보다는 당, 당보다는 국가와 국민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박 후보가 나라를 위해 일할 준비가 가장 잘돼 있었고, 나라를 위해서도 그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100% 대한민국’ 달성이란 대선 공약을 내세운 박 대통령이 최근엔 국민통합을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대통합위원회를 너무 믿어서 그런 건가요, 아니면 박 대통령의 생각에 변화가 있나요.
“전혀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 부분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합니다. 오히려 통일 준비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대통합의 분위기를 한층 띄우는 상황이라고 보면 됩니다. 다만 국내외 환경이 변화무쌍해 아직 좋은 여건이 성숙되지 못한 것은 아쉽게 생각합니다. 통합은 공기와 같아서 손에 잘 잡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금방 큰 성과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작은 것부터 실천해 나갈 계획입니다.”
국민통합은 물론 국민의 요구와 의지, 실천이 가장 중요하지만 대통령의 태도도 그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대통령이 세월호 유가족도 만나고, 각 분야의 사람들도 많이 만나야 하는데 주로 외국에 가거나 시장 방문하는 모습만 보이니 안타깝습니다.
“보는 시각의 차이일 것입니다. 과거 저의 대통령 비서실장 경험에 비춰보면 대통령은 어차피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자리인데 그 방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언론에 비치는 것, 오픈되는 것만 보고 소통이 된다, 안 된다 판단해서는 곤란합니다. 박 대통령은 과거 대통령들과 달리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어떤 누구와도 쉽게 대화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정치가 실종됐다고까지 합니다. 선배 정치인으로서 여야 의원, 특히 대표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저는 정치인이 아니라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습니다만 지도층일수록 나라와 국민에게 충성하고 현 상황에 위기의식과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왜 나라나 국민보다 계파나 진영논리가 우선입니까. 통합, 통합 하지만, 나보다 집단, 집단보다 국가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자처럼 각자 연주하면서도 전체 음악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다는 어떤 물도 거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다는 냇물, 개천물을 다 받아들여야 하지만 짠물이란 정체성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치를 떠나 있으니 정치가 보입니다. 저도 정치권에 있다면 진영논리에 함몰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갈등 해소에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치권이 더 갈등을 부추기는 것 같아요.”
전북 전주 출신으로 경남 진주 출신인 부인과 결혼, 동서 통합을 실천한 한광옥 위원장은 국민대통합위원장에 적임자이긴 하다. “위원장이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전국을 다녀 젊은 우리가 지칠 정도”라고 직원들이 불평(?)을 할 만큼 열정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민대통합은 위원장의 열정과 애국심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불통을 탓하기 전에 우선 나부터 마음의 문을 열어봐야겠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