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부선씨는 왜 출연료보다 아파트 관리비에 더 관심을 가졌을까. 경기장 공사비 및 운영비로 총 2조3500억원이 들어갔다는 인천 아시안게임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까. 이런 관심은 오지랖인가, 아니면 건전한 관심일까. 최근 <재정은 어떻게 내 삶을 바꾸는가>란 책을 펴낸 김태일 교수(고려대 행정학과)는 “우리가 국가나 지방정부에 낸 돈이 어떻게 쓰이는가, 즉 재정을 제대로 아는 것이 기본 교양”이라고 강조한다. ‘돈’을 이야기하면 교양 없다고 여기는 것이 한국 정서인데 김 교수는 ‘돈(재정)을 제대로 알고 말하는 것이 진정한 교양이라고 말한다. 그를 만나 내 세금이 어떻게 쓰이며,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물었다.
지방재정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뭔지요.
“대학에서 공공경제학과 복지정책을 가르치면서 정부 예산을 감시하는 시민단체인 ‘좋은예산센터’ 소장도 맡고 있습니다. 이 센터에서 정부 사업 중에 대표적인 예산낭비 사업을 골라 ‘밑빠진 독 상’을 수여합니다. 한식 세계화, 자전거도로 인프라·네트워크 구축, 농어촌 뉴타운과 군 골프장 조성 등이 최근의 수상자(?)들입니다. 2000년부터 2011년까지 50건에 수여했는데 그 중 지방정부 사업이 중앙정부 사업보다 많았습니다.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보다 예산 낭비가 더 심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방정부의 예산 낭비가 중앙정부 낭비보다 더 눈에 잘 띄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국방예산은 시비를 가리기도 쉽지 않지만, 지방정부가 수행하는 사업, 예를 들면 보도블록 교체는 얼마나 필요한 사업인지, 비용은 적정한지 따지기가 용이하죠.”
지방재정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현재 1년에 200조원에 이르는 돈이 지방재정에 쓰입니다. 국세와 지방세의 비중은 8대 2인 데 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씀씀이는 4대 6입니다. 지방재정은 주로 복지서비스 분야가 많아 더더욱 그 사용이 중요합니다. 물건 하나를 구입하는 데도 여기저기 가격 비교를 하고, 작은 지출에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정작 내가 번 돈의 30%가 세금으로 나가는데, 그 세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가에 의외로 무심합니다. 그런 재정을 아는 것이 한국 사회의 필수 지식이고 시민의 기본 교양입니다. 무엇보다 지방정부의 역할이 주로 복지와 연관되어 있는데, 지방정부가 예산을 낭비하거나 무분별한 사업을 벌여 재정이 파탄나면 결국 우리 지역민의 삶이 피폐해진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왜 우리는 그동안 교양 없이 살았을까요.
“그건 우리나라 수학교육이 잘못되어서입니다.(웃음) 수학을 너무 어렵게 가르쳐서 숫자만 나오면 외면하고 싶게 만들었죠. 그런데 지방재정의 숫자, 즉 예산과 집행되는 돈은 정말 중요한 숫자입니다. 어디 재정뿐인가요. 특별시와 광역시는 어떻게 다른지, 같은 서초구에서도 서초동과 방배동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매일 뉴스로 정부 소식을 접하고 불평불만을 하면서도 대체 왜 그런지 알려고 하지는 않죠. 정부가 하는 일이 별로 재미도 없고 어차피 나 하나 따진다고 바뀔 게 없으니 애써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이런 무관심 현상에조차 ‘합리적 무지’라는 고상한 용어를 갖다 붙입니다만 합리적 무지 때문에 정치·행정에 무사안일과 부정부패가 일어납니다. 이를 뒤집으면 정치나 행정에 무슨 일이 있는지 관심 가지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좋은 정치와 행정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물론 모두 다 깨어 있는 시민이 될 수는 없겠지만 소수라도 관심을 갖고 감시를 해야 합니다.”
우리 지방재정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요.
“크게 두 가지를 꼽자면 하나는 건설사업 남발로 재정이 휘청대는 것, 또 하나는 대행 복지사업 분담금을 마련하느라 살림이 빠듯하다는 것입니다. 즉 개발사업은 방만해서, 복지사업은 돈이 부족해서 문제죠. 우선 지방정부 재정을 위기로 몬 주범인 대형 개발사업은 국고보조금 따내기와 민자사업, 공기업사업으로 이뤄집니다. 지방정부 민자사업 중 예산 낭비로 비난받는 대표적인 사례는 경전철 사업입니다. 1992년 부산~김해 경전철 이후 지난해까지 전국 12개 지역에서 18개 노선의 경전철 사업이 추진 또는 운영되고 있죠. 그 중 12개 사업이 민자사업이고 총사업비는 15조5000억원입니다. 36개 지자체가 경전철 84개 노선을 건설할 계획인데 총사업비는 51조5000억원으로 추산됩니다. 모두 우리가 낸 세금입니다. 또 복지사업은 지방재원 징발사업이라 부를 만하죠. 기초연금, 보육료 지원, 기초생활보장급여처럼 중앙정부 사업이지만 지방정부가 집행을 대행하는 사업에는 ‘매칭사업비’라는 돈도 대야 합니다. 중앙정부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한 사업을 집행할 재원을 마련하느라 지방정부 부담이 가중되면서 각종 복지정책을 둘러싸고 중앙과 지방 간 갈등이 끊이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지방마다 개발사업을 남발할까요. 그리고 지역민들은 뻔한 헛된 공약에 왜 매번 속을까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지역민들의 표심을 사는 무리한 공약을 남발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개발사업의 이면에는 지역 유지, 즉 토호와 지역 정치인이 결탁한 ‘풀뿌리 카르텔’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흔히 토호라고 불리는 지역유지들은 건설회사를 운영하거나 대규모 부동산 소유주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최근 황제노역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대표적인데, 지역 토호가 탈세·횡령을 하고도 향판이 변호해줘서 하루에 5억짜리 노역형을 선고받았죠. 이처럼 혈연·지연·학연으로 지방정치인, 공무원과 촘촘하게 연결되어 정치와 행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지역 언론을 장악한 경우도 많고 지방의원으로 대거 진출해 있습니다. 이들은 중앙정부를 압박하거나 지방정부 조례 등을 변경해 개발업자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내놓죠. 또 지방자치 특성상 눈에 보이는 치적으로 각종 개발사업만한 게 없다는 점도 작용합니다.”
국력을 높인다며 유치한 스포츠 행사도 결국 지방만이 아니라 국가재정에도 큰 폐해를 주던데요.
“전남 영암 포뮬러1(F1) 코리아 그랑프리의 경우 4년간 누적적자가 6761억원에 달했습니다. 대구세계육상선수권으로 인한 적자는 3000억원을 넘습니다. 강원도는 세 번의 도전 끝에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따냈지만 그 사이 사업비는 천문학적인 규모로 불어났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예산은 총 8조9491억원인데 6개의 경기장을 새로 짓는데 6694억원이 투입되고, 도로망 확충 등 간접투자비는 6조2892억원에 달합니다. 결과적으로 골칫거리가 되고 마는 국제 스포츠행사 유치는 대부분 지자체장이 업적 쌓기용으로 의견을 내서 시작됩니다. 전문기관이 면밀히 검토해 손익계산서를 뺀 뒤에 유치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고 막연히 중앙정부의 지원을 기대하며 저지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무리한 사업을 지자체가 다투어 치를까요. 지자체장들은 중앙정부에 달려와 예산을 많이 가져가는 것을 업적이자 능력으로 자랑하고요.
“국가 전체로는 손해지만, 지역에는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가령 A사업을 수행하는 데 드는 비용이 1000억원이라면 그 중 50%는 국고보조를 받습니다. 지방정부야 500억 투자해 100억 정도 이익을 남기지만 국가 전체로는 200억 가까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사업인데도 투자합니다. 현실에선 지자체가 합리적으로 비용과 편익을 계산해서 국고보조사업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보조금을 준다니까, 왠지 하지 않으면 우리 지방만 손해일 것 같아서 사업을 합니다. 많은 경우 지자체사업 국고보조금은 정치력에 따라 정해집니다. 어느 일본 학자는 ‘국고보조금은 정치인들이 표밭에 뿌리는 비료’라고 말하기도 했죠. 그러니 지난번 재·보궐선거에서도 자기 지역에 ‘예산 폭탄을 뿌리겠다’고 당당히 주장한 후보가 당선되지 않았습니까.”
개인파산처럼 지방정부가 파산할 수는 없나요.
“성남시도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바 있고 태백시, 인천시 등 재정위기 상태에 놓인 지자체는 몇몇 있습니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서 적어도 현재로는 지자체가 파산할 가능성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 재정을 통제하는 다양한 수단이 있어요. 제대로만 관리하면 지자체가 재정파탄 지경까지 도달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2012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재정위기 사전경보 시스템’인데 지자체의 재정위기 가능성을 진단해서 일정한 기준을 넘으면 재정위기 단체로 지정하고, 재정 건전화 계획을 수립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사전예방 시스템이 잘 작동해서 재정파탄에 이르기 전에 스스로 해결하면 가장 좋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력갱생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가 있어야 합니다. 파산에 이르게 한 무능하거나 부패한 정치인은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겠지만, 파산제는 누굴 징벌하기보다 그 지역민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파산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지방재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복지분야입니다. 무상보육, 무상급식 논쟁으로 서울시장이 사퇴하기도 하고, 출산장려금을 더 많이 주는 지역으로 이사하는 사례도 있죠. 복지에 따라 지도자도 지역민도 달라집니다.
“요즘의 복지는 보육, 요양, 교육훈련, 취업알선 등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서비스는 각각 상황에 따라 내용과 관리가 달라지므로 중앙집권의 획일적 제공보다는 지방분권의 신축적 제공이 더 적합하죠. 그런데 최근 중앙정부에서 보편적 복지를 강화하고 국민들의 복지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지방정부는 정해진 예산 안에서 늘어나는 대행 복지사업 분당금을 충당하느라 재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복지사업비가 늘어나면서 지방재정 지출에 구조조정을 강제해 낭비를 줄이는 효과를 일부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지방복지의 경우 복지사업과 대상자를 제대로 선정해야 복지 사각지대도 없어지고 수준 높은 서비스가 이뤄집니다. 오류를 줄이는 것이 복지의 기초입니다.”
지역민이 신뢰하도록 예산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중요한데 최근 안희정 충남지사가 국회에서 충남도의 예산 사용을 공개하는 시스템과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아주 의미있고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충남넷’에 들어가보면 업무출장비 항목에서 공무원이 어느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지까지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투명해지면 공무원은 매우 피곤해지지만 비리 방지에 큰 효과가 있을 겁니다. 지역민들은 내가 낸 돈이 어떻게 쓰이는가도 확인하고 관공서 입찰에 관한 자료는 물론 내가 받을 수 있는 서비스까지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도 긍정적 자극이 되길 바랍니다.”
지자체장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주민들의 참여도 중요한데, 주민참여 예산이 잘 되고 있는 사례도 소개해주시죠.
“서울 은평구에서는 전체 예산 중 일부를 주민이 제안하는 사업으로 편성할 뿐만 아니라 전체 예산안을 주민이 검토해 필요성을 점검하고 삭감합니다. 주민제안 사업 선정은 동별 회의와 개인별 제안을 받아서 100명으로 구성된 주민위원회의 검토를 거친 후 주민투표로 결정합니다. 1만명 이상의 주민이 투표에 참여하여 주민제안 사업을 선정합니다. 특히 은평구 주민위원회 위원들은 구청의 각 부서에서 요구한 예산사업을 검토하여 필요성이 적다고 판단되는 사업의 예산은 삭감합니다. 주민이 자치단체 전체 예산안 편성까지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하는 거죠. 주민참여 예산의 취지를 구현하고 발전방향을 앞서서 보여주는 셈입니다. 주민들은 이제 정부 활동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과 정부가 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관련 활동에 참여해야 합니다. 정부 활동의 투명한 공개와 시민들의 비판과 참여는 좋은 정부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 요소입니다. 좋은 정부는 좋은 시스템과 좋은 시민이 만듭니다.”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지 20여년이 되고, 지방정부의 작은 서비스가 내 삶을 바꾸는데도 왜 우리는 그동안 지방재정에 대해서는 그리 무관심하고 무지했을까. 김태일 교수는 “고장난 기계는 수리하면 바로 제 기능을 찾지만 국가 번영은 뚝딱 제도만 고친다고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라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권리를 찾아야겠다. 내 삶의 행복도, 내 돈도 소중하니까. “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