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정기가 서린 고구려의 옛 수도

2014.09.30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은 유리왕이 기원후 3년에 이곳 집안 지역으로 수도를 옮겨 압록강을 앞에 두고 축성하였다. 이후 고구려는 427년(장수왕 15) 평양으로 세 번째 천도를 하기까지 이곳 국내성을 기반으로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다.

역사를 과거의 회귀적 관점이거나 퇴행적 접근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올바른 역사인식의 과정으로 마땅치 않다. 역사의 이해와 인식은 오직 진실의 가치를 찾아 진일보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지향성을 지닐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 잃어버린 고구려 유적지 순례를 통해 민족정기가 서린 옛 땅에서 한반도의 새 길을 묻는다.

환도산성 아래 고구려 귀족의 고분군으로 추측되는 산성하 무덤군.

환도산성 아래 고구려 귀족의 고분군으로 추측되는 산성하 무덤군.

국운대통의 큰 혈자리, 국동대혈
중국 집안시는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이 자리한 지역으로 고구려의 옛 유적이 산재해 있는 지역이다. 고구려인들이 천제를 올리던 국동대혈, 고구려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과 환본산성, 그리고 무리를 이룬 고분군들을 찾아가는 일정이다.

새벽 어둠이 걷히지 않은 압록의 강변을 따른다. 아직 햇귀가 채 오르지 않은 어스름 새벽, 압록강 너머 북녘에는 자그마한 불빛조차 보이지 않는다. 첫걸음은 고구려인이 해마다 10월이면 제를 올렸다는 국동대혈(國東大穴)이다. 국동대혈은 국내성에서 동쪽의 높은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중국의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에는 “10월에 하늘에 제사지내며 크게 모이니 이름을 동맹(東盟)이라 한다. 동쪽에 큰 동굴이 있어 수혈(隧穴)이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수(隧)는 굴·구멍·터널을 뜻하는 것으로 동맹은 일종의 추수감사제였으며, 굴은 생명의 모태인 여성의 자궁을 상징하여 신성시 여겼다. 하늘신과 유화 부인, 시조인 주몽왕을 모시고 나라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햇귀가 차오를 즈음, 신성의 혈을 찾아 오른다. 찬 서리 머금은 야생화가 지천인 산길을 30여분 오르니 관음굴이 나타나고, 다시 계단을 오르니 장상애(長相愛)라고 쓰인 큰 바위벽이 앞을 막아선다. 유리왕의 황조가 전설이 서린 곳이다. 다시 바위길을 오르니 산정의 뒤편에 앞뒤가 맞뚫린 큰 바위동굴, 국동대혈이 나타난다. 높이 10m, 너비는 25m, 깊이 20m로 성인 수십명이 들어설 만큼 그 규모가 크다. 하늘과 맞닿은 기운으로 민족의 정기를 깨우던 큰 혈자리다. ‘하늘로 통하는 곳’이라 하여 ‘통천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큰 혈자리를 통과한 하늘의 기운이 대지에 맞닿아 국운대통의 역사를 열었을 것이다. 민족정기가 기어이 솟구치기를 기원하고 전망대에 오른다. 새벽 산정에서 멀리 북녘의 땅을 바라본다. 안개에 가려진 강 너머는 철조망으로 꽉 막힌 경계의 강으로 아득하여 멀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집안시 중심부의 국내성.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집안시 중심부의 국내성.

고구려 제2의 수도, 국내성을 돌아
이곳 국동대혈에서 17㎞ 떨어진 곳에 국내성이 자리하고 있다. 다시 압록강변을 따라 달려 집안시 중심부에 위치한 국내성으로 향한다. 강 건너 맞은편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스친다. 자전거 타고 가는 사람, 강변에서 빨래하고 있는 아낙과 아이의 모습도 그저 지나칠 뿐이다. 국내성의 기점은 가장 훼손이 심한 북쪽과 동쪽 성벽의 모서리부터 통구하로 연결되는 남서쪽으로 한 바퀴 돌아볼 작정이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국내성 성벽은 건재했으나, 현재는 성벽 일부가 훼손되어 온전한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일반 주거지역이 자리를 잡은 동쪽 성벽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민가와 아파트, 도로, 시장 등이 조성되었다. 성벽은 단절되고, 성을 쌓은 돌무더기는 주택용 석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특히 동쪽 소형 아파트의 사잇길을 따라 이어진 국내성의 모습은 상실감을 갖게 한다. 허물어지고 단절된 성터를 마주하는 것은 비참한 일이나 우리의 역사에 대한 인식 부재인 터, 안타까운 일이다. 그나마 유네스코 등재 이후 중국 정부가 성벽을 다시 복원하고 있는 것에 위안을 삼을 따름이다.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은 유리왕이 기원후 3년에 이곳 집안 지역으로 수도를 옮겨 압록강을 앞에 두고 축성하였다. 이후 고구려는 427년(장수왕 15) 평양으로 세 번째 천도를 하기까지 이곳 국내성을 기반으로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다.

국내성은 도로와 장터, 주거지역 등으로 단절되고 무너져 있다.

국내성은 도로와 장터, 주거지역 등으로 단절되고 무너져 있다.

국내성을 살피며 알아두어야 할 것이 고구려성의 조성 원리이다. 국내성은 환도산성과 짝을 이루는 평지성이다. 이는 고구려성의 본질적 조성 원리로, 우리 성곽 고유의 유전자를 확인할 수 있는 축성 방식이다. 또 성벽을 잘 살펴보면 고구려인들의 축성 방식이 나타나는데,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옹성, 곧 공(工)자성을 쌓았다. 모서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치성(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을 쌓고 각지지 않게 둥글게 굴려 쌓는 축성 양식을 택했다. 국내성의 치(성벽을 장방형이나 반원형으로 돌출시켜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게 한 시설) 역시 이러한 독특한 형태라 할 수 있다. 특히 서쪽 성벽의 치는 적의 공격뿐 아니라 홍수에 대비한 것으로, 성내의 물이 빠져나가고 인접한 통구하의 물이 범람하거나 역류하지 않도록 하였다. 남쪽 성벽 앞으로 흐르는 통구하는 압록강과 합류하는데 이 역시 배산임수의 풍수를 감안한 축성의 입지다. 성을 한 바퀴 돌아보며 425년 동안 강성했던 잃어버린 고구려의 역사를 마주한다. 무너진 성벽처럼 우리의 역사의식 역시 무너지고 단절된 채 현재를 맞이하고 있다.

압록강을 경계로 북녘땅의 모습이 스친다.

압록강을 경계로 북녘땅의 모습이 스친다.

환도산성과 산성하고분군을 찾아
이제 국내성과 짝을 이룬 환도산성으로 향한다. 환도산성(丸都山城·일명 산성자산성)은 집안시 북쪽으로 2.5㎞ 떨어진 환도산(해발 676m)에 자리하고 있다. 고구려는 평시에는 평지성에 거주하다가 비상시에 인근의 산성으로 피난하는 평지성과 산성의 2중 방어체계를 구축하였는데, 환도산성은 비상시에 거처하는 곳으로 판단된다.

입구에 다다르니 역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표지문이 있고, 좌우 편으로 보수공사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환도산성의 북면은 단애절벽이고 남면은 지세가 완만한 삼태기 모양이다. 이는 홀본 지역의 오녀산성과 비슷한 모습이다. 산성은 사방이 둥글게 산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지형으로 동·서·북 3면이 모두 높은 절벽에 막혀 있으며 남쪽만이 트여 있다. 서쪽은 험준한 봉우리들이 천연방어물을 형성하고, 북쪽은 깊은 계곡을 두고 솟아 있으며, 동쪽은 통구하를 따라 넓은 산골짜기가 펼쳐진다. 성은 험준한 지형과 암반 등 자연지세를 이용하고 군데군데 석축 성벽을 구축하였기 때문에 불규칙한 형태이다. 성의 높이는 어림잡아 5m가량, 총연장 길이는 6951m이다.

고구려인이 말에게 물을 먹이던 환도산성 음마지.

고구려인이 말에게 물을 먹이던 환도산성 음마지.

입구 가까이 남쪽 성문으로 약 200m 떨어진 곳에 점장대가 위치한다. 남쪽을 환히 내다볼 수 있는 전망대로 국내성 전경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어 전투를 지휘하던 장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환도산성은 평양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왕성(王城)으로 기능했다고 전해진다. 고구려 병사들이 말에게 물을 먹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음마지를 지나 정상부에 오른다. 멀리 국내성이 자리한 집안 시내가 바라다 보이고, 아래쪽으로 산성하고분군이라 불리는 무덤의 무리가 보인다. 이 고분군은 환도산성과 통구하 사이의 넓은 들판에 조성된 무덤들로 현재 남아 있는 무덤만 1582기로 세계 최대의 무덤군이다. 이 역시 고구려 귀족들의 무덤으로 중국에는 없는 고구려만의 독특한 양식으로 추측된다.

잃어버린 땅에서 잊혀진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는 여정이다.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현재를 비춰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지나간 역사의 고찰과 인식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만이 역사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역사인식의 진일보가 필요한 때이다.

<글·사진 이강 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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