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두메산천 작은 시골역

2013.08.06

첩첩산중의 시골역에 사람이 다시 찾아들고 그리워하던 이들이 다시 저 작은 역을 통해 마을로 몰려든다.

낡고 오래되어 사라져가거나 잊혀져가는 세태는 슬픈 일이다. 찾아드는 이가 줄거나 먹고 살기가 팍팍해 마을에 주민들이 하나 둘 줄어드는 것 또한 애처로운 일이다. 이 땅 두메산천 작은 시골역이 쓸모가 줄어들어 하나둘 사라지고 잊혀지는 것 역시 영영 서운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오래된 철로를 따라 작은 시골마을을 돌고, 깊은 산맥의 굽이를 넘던 작은 기차들은 그 철길을 따라 조촐한 삶의 풍경과 옛 시절의 흔적을 남겨두었다.

폐역이나 마찬가지였던 작은 간이역을 옛 시절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롭게 단장하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폐역이나 마찬가지였던 작은 간이역을 옛 시절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롭게 단장하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라져가는 시골역에 대한 애상
애상(愛想)은 사랑이며 그리움이고 추억이다. 살아 있는 존재에 대한 애상은 그 대상의 존재가 미약해지거나 떠나간 이후에는 지극한 슬픔이 되고 만다. 자꾸 생각이 나고 마음이 아파지는 것은 떠나간 이에 대한 애상(哀傷)의 심정이다. 풍경이나 삶에 대한 애상은 오래도록 가슴에 각인되고, 더욱 더 뜨거운 사랑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서울에서 출발한 열차는 충북 제천을 돌아 경북 영주와 봉화를 지나 강원 태백의 철암역까지 굽이굽이 넘는다. 중부내륙의 작은 간이역에 멈춰서기도 하고, 깊고 높은 태백의 산맥에 머무르며 숨을 고르기도 한다. 강을 따라 속도를 내며 달리던 열차는 제천까지 아름다운 강과 산을 내쳐 달리다 경북 봉화군 분천역에 멈추어 숨을 고른다. 내가 갈라져 낙동강으로 흐르는 곳으로, 이제는 열차를 갈아타는 환승역 역할을 하고 있다.

봉화는 예부터 우리 땅에서 오지를 대표하던 곳이다. 오지라는 오명의 이름은 그만큼 교통의 연결이 수월치 않았음에 기인한다. 그 중 소천면(小川面)은 봉화군의 북동부에 있는 작은 면으로 동쪽으로 울진, 서쪽으로 춘양면, 남쪽으로 영양군, 북쪽으로 강원 영월군·삼척시와 접해 있는 경계의 마을이다. 북쪽에 흐르는 소백, 동에서 뻗어 굽이치는 태백의 능선을 따라 해발고도 1000m 이상의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다. 태백산에서 발원한 낙동강, 태백산과 연화봉에서 발원한 송정리천(松亭里川) 등이 굽이굽이 마을로 흘러든다.

인적 드문 분천역이 백두대간 열차의 환승역으로 거듭나면서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인적 드문 분천역이 백두대간 열차의 환승역으로 거듭나면서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소천면 분천(汾川)마을은 하루에 두어 번 열차가 오가던 깊은 산골 중 산골이다. 마을의 중심이자 가장 높은 자리에 분천역이 자리하고 있고, 태백에서 발원해 여우천에서 흘러내려오는 냇물이 갈라져 낙동강으로 흐른다. 때문에 마을 이름을 부내라고도 하고, 한자로 분천이라고 했다. 또 하천 옆으로 토사가 쌓여 평평해진 넓은 들을 이루었다 하여 평지라고도 불렀다. 한때 강원 태백지역의 탄광이 호시절을 누리던 때만 해도 그럭저럭 분천마을은 춘양목의 산지로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이웃에 나무를 베어 춘양역을 통해 품질 좋은 나무를 실어 날랐다. 그 시절까지만 해도 산목꾼들이 쏠쏠찮게 마을을 드나들었고, 기생집도 몇 군데가 마을에 살림을 꾸리고 있었다 한다.

분천마을에 작은 역사가 지어진 지는 반백의 세월이다. 일제가 춘양역과 함께 이곳에 철로를 놓으려고 했지만, 지형이 험난해 끝내 역사까지는 짓지 못했다. 그러다가 해방 이후 오랜 시간을 걸쳐 작은 역사가 자연스레 지어지고, 1956년 1월 1일부터 첫 열차가 다니기 시작했다.

이부균 분천역장은 급격하게 늘어난 관광객으로 하루하루를 바쁘게 지내고 있다.

이부균 분천역장은 급격하게 늘어난 관광객으로 하루하루를 바쁘게 지내고 있다.

이부균 분천역장(코레일 경북본부)은 요사이 급격하게 늘어난 관광객들로 인해 하루하루가 바쁘고 정신이 없다. “50년대 영주에서 강원도 철암까지 영암선(87㎞·현 영동선)이 뚫리면서 하루에 서너 차례 열차가 지나던 역입니다. 무궁화호가 운행되며 여객, 화물, 승차권 발매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요즘 저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습니다. 오지마을에 외지인이 조금씩 늘고 있기 때문이죠. 하루에 많게는 1500여명의 관광객들이 찾아듭니다.”

분천역은 영동선 기차가 지나는 간이역으로 현동역과 양원역 사이에 자리한 발길이 뜸한 작은 역이었다. 폐역이나 마찬가지였던 이 작은 간이역들을 옛 시절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롭게 단장해 놓자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분천역이 중부내륙순환열차와 백두대간 열차의 환승역으로 거듭난 것이다. 열차를 갈아타기 위해서는 분천역에 내려야만 한다. 열차에서 내린 여행객들은 새 단장을 한 말끔한 시골역과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본다. 젊은이들은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과 시골마을에 들뜬 애상으로 감탄하고,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여행객들은 지난 시절에 대한 지극한 애상으로 옛 친구를 마주하듯 시골역을 돌아보며 기뻐한다.

마을 들머리에 있는 향수슈퍼를 돌아드니 옛 시절 장으로 행상을 다니던 늙은 노모들이 할 일 없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한동안 사람의 발걸음이 뜸했던 마을이 외지 사람들로 시끌벅적하고, 골목 구석구석에도 사람의 온기가 다시 흘러드니 사람 구경하는 재미도 오랜만이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마을 어르신의 얼굴에 햇살이 깃든다. “우리 마을이 봉화에서 제일 웃짝이라. 우리 마을 터는 뒤로 돌아앉은 형국이여. 강을 바라보는 남향으로 집을 앉힌 것이 아니고, 저 산을 보고 뒤로 돌아앉은 셈이지. 그게 다 저 역으로 나무도 내고, 사람들이 드나들던 까닭이제.”

마을 바로 앞에는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과 깎아지른 절벽이 버티고 서 있는 품이다. 옆마을 석포 승부리와 분천마을에 걸쳐 있는 해발 1129m의 비룡산. 용이 비상하는 날개의 형국이어서 승천하는 기운을 지닌 좋은 터로 ‘비룡대’라 불린다.

한동안 사람의 발걸음이 뜸했던 분천마을이 외지 사람들로 시끌벅적하고 골목 구석구석에도 사람의 온기가 다시 흐르고 있다.

한동안 사람의 발걸음이 뜸했던 분천마을이 외지 사람들로 시끌벅적하고 골목 구석구석에도 사람의 온기가 다시 흐르고 있다.

그리워하던 그 작은 옛이야기들을 꾸려
“감자나 옥수수를 밭에 심구어 먹고 살고, 산에 약초가 지천이니 캐어 팔고, 고랭지 채소를 내다 팔지. 옛날에는 광산도 있었고, 여기 산에서 나무를 잘라서 충양에서 실어내었제. 그때는 사람들이 많이 마을에 드나들었제. 그때 철로를 닦아놓은 셈이라. 산이 높았어도 봉화 근방에서는 교통이 참 수월한 편이었어라. 장이 서기도 했으니까.”

용이 승천하는 기운을 이제사 받는 셈인가. 첩첩산중의 시골역에 사람이 다시 찾아들고 그리워하던 이들이 다시 저 작은 역을 통해 마을로 몰려든다. 마을 주민들은 도시사람들의 번잡함이 영 마음에 차는 것은 아니지만, 와글와글 사람이 찾아든 마을 풍경이 예전만 같아 기분 좋은 속내를 숨기지 못한다.

이제 분천역은 옛 시절의 이야기들을 꾸려 다시 그리운 이들을 불러들이며 활기가 넘치고 있다. 중부내륙순환열차(O-train)가 멈추어 서고 백두대간협곡열차(V-트레인)의 기착지가 되자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수백 명씩 이곳을 찾는다. 낡은 역사도 스위스 체르마트역과 자매결연을 맺고 외관도 스위스 샬레 분위기로 단장했다. 중부내륙순환열차(O-train)는 서울·제천역에서 출발해 경북 북부와 강원도 남서부 지역을 순환한다. 백두대간협곡열차(V-train)는 이곳 분천역에서 태백시 철암역을 하루 세 차례 왕복한다. 바깥 풍경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시속 30㎞로 천천히 달린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자 역사인 양원역도 V-train의 기착지 중 하나다. 사라져가고 잊혀져가는 것들이 그리워질 때, 조금 천천히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싣고 옛 철길을 달려보자. 주민들은 예전에 장에 내어 팔던 콩, 팥, 고사리 등 건강한 산지 먹거리와 투박하지만 거짓 없는 인심과 이야기를 소쿠리에 하나둘씩 꺼내어놓는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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