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감독이 만드는 퀴어영화라고 보니까 손해보는 느낌 많아”

글·지승호 인터뷰 전문작가 | 사진·김석구 선임기자
2012.11.20

이송희일 영화감독

2006년 <후회하지 않아>(이하 <후회>)로 이른바 ‘후회 폐인’들을 양산했던 이송희일 감독이 <백야> <지난 여름, 갑자기>(이하 <지난 여름>) <남쪽으로 간다>(이하 <남쪽>)라는 세 편의 퀴어 연작을 들고 돌아왔다. 1996년 시작된 국내 유일의 비경쟁 독립영화제인 인디포럼을 2007년부터 이끌고 있는 이송희일 감독에게 11월 15일에 개봉되는 영화와 스크린 독과점 문제, 독립영화의 활성화 방안, 동성애자 인권운동 등에 대해 물어보았다. 인터뷰는 11월 7일, 기자 시사가 있었던 인디스페이스 근처에서 이루어졌다.

[지승호가 만난 사람]“게이감독이 만드는 퀴어영화라고 보니까 손해보는 느낌 많아”

지승호(이하 지) 당분간 퀴어 영화 안 만든다고 했다가 이번에 세 편이나 만들어서 개봉하게 됐는데.

이송 세 편 중에 78분짜리 <백야>는 단독으로 극장에서 상영한다. 나머지 두 편을 묶어서 다른 극장에서 상영을 하고, 세 개를 다 받는 극장이 있다면 거기서 상영을 하고, 다채널로 배급을 하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아무도 해본 적이 없는 방식이다. 약간 실험 같은 느낌이어서 결과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긴 하다. 부산영화제를 경유하면서 저예산 영화들이 풀어지고, <26년>이나 <남영동>처럼 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있는 대형 영화들이 개봉하고 해서 극장 잡기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다.

올해 1000만 관객 영화가 두 편이나 나왔다.

이송 매번 1000만 관객 영화가 나올 때마다 마치 이제야 심각해진 것처럼 언론들은 쓰는데, 올해는 두 편이어서 그게 도드라졌을 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형 배급사들이 독과점을 하는 상황이다. 정말로 영화적인 완성도 때문에 입소문으로 순수하게 극장을 늘려가면서 상영한 것은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가 아직까지는 유일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한 영화를 1000만명이 보는 나라에서 독립영화 전용관이 서울에 두 개밖에 없다는 것이 창피한 일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인디포럼 영화제에 대한 지원이 중단된다든지 하는 갈등을 겪었다.

이송 상처가 아물고 있어서 그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대선이 다가오니까 어떤 정권이 들어설지 생각을 해보면 그때 악몽들이 떠오르는 거다. 기본적으로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말도 안 되는 ‘좌빨’ 논리를 내세웠다. 영화판 전체가 그 부분에 관련되어서 많이 싸웠고 항의를 했는데, 한창 싸울 때 속으로는 ‘그래 여기가 너희들의 무덤이 되어라’ 하는 생각을 했다.(웃음) 더 심했던 정권에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서 이만큼 만들어낸 건데, 하는 생각도 있었고. 기본적인 틀이라는 게 있다. 10년 이상 잔뼈 굵어가면서 영화 만들고, 배급을 해왔는데, 자기네들이 정권을 잡아서 공간 장악을 하고 배급을 해보니 뭐가 안 된다, 그건 실력의 문제인 거지,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영화제가 자생력을 확보하려면 기본이 20~30년 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권 바뀔 때마다 춤을 추고 있으니 뭐가 되겠나.

<후회>의 흥행 성공 이후에 <종로의 기적> <두 번의 결혼식 한 번의 장례식>(이하 두결한장) 같은 성소수자의 사랑에 대한 영화가 많이 나왔다.

이송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외로운 싸움을 혼자 하고 있었다.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는 내가 유일했고, 요즘 보면서 아쉽고 그런 것은 레즈비언 영화들이 많이 나와야 되는데, 나도 레즈비언 영화에 도전하고 싶은 아이템들이 있어서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있다.

그런 영화가 잘 안 나오는 이유가 뭔가?

이송 동성애자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레즈비언들이 게이들에 비해서 커밍아웃하기가 어려운 지점들이 분명히 있다, 물론 커밍아웃할 때의 불이익이나 가족과의 문제, 자기 주변 집단과의 문제들이 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는 남성 중심의 사회이고, 게이도 남성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용기가 없다? 안 그렇다. 관객으로서나 커뮤니티에 운동으로서 참여하는 폭만 봐도 훨씬 더 적극적이다. 이성애자 남성들이 여성들이 나오는 포르노그라피는 많이 소비를 하나, 그런 남성의 시각에 의해 지배된 영화가 아니라 레즈비언 시각으로 자기들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영화들은 잘 안 보는 거다.

<두결한장> 같은 경우 김조광수 감독이 ‘그동안 퀴어 영화는 어두웠는데, 발랄할 수 없나, 이런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송 어둡기 때문에 이제는 밝아야만 한다는 것은 다른 방식의 도착일 수도 있다. 퀴어 영화 안에서도 여러 장르들이 시도될 때가 된 것이고,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여러 장르들을 시도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앞으로 상업영화로서 도전하고 싶은 퀴어 영화는 액션사극이다. 만약 또 퀴어 영화를 찍는다면 훨씬 장르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게이를 둘러싼 현실이 슬픈데 영화가 슬플 수밖에 더 있나’, 이런 얘기도 했던 것 같은데.

이송 종로나 이태원 가면 애들이 많이 밝다. 하지만 종로에서 웃다가 집에 돌아와서 싹 얼굴이 바뀌어 슬퍼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다. 나는 종로에서 웃고 지내는 것에 대한 관심보다 여전히 현실과의 접점에서 이 친구들이 하는 고민이나 표정이 더 궁금한 거다. <남쪽> 같은 경우는 내가 전환을 꾀하는 거다. 지금까지는 동성애와 이성애 사회의 접점에서 고통을 받거나 힘들어하거나, 이성애 사회가 주는 역학 때문에 이들이 당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다뤘다면 <남쪽>은 거꾸로 왜 자칭 이성애자들은 이렇게 답답할까, 이성애의 성 정체성을 흔드는 쪽으로 전환을 선언하는 영화다.

[지승호가 만난 사람]“게이감독이 만드는 퀴어영화라고 보니까 손해보는 느낌 많아”

처음에 영화를 만들 때보다 수월해진 면은 있는 거 아닌가.

이송 별로 없다. 모 잡지에 ‘한국 배우들에게 고함’이라는 글을 기고할 예정이다. 연작 찍으면서 캐스팅하려고 인터넷으로 뒤진 것만 치면 5000명이 넘고, 오디션을 본 사람만 600명이 넘고, 내가 직접 만나본 것도 100여명 가까이 된다. 내가 이 와중에 깨달은 것은 한국 배우들이, 특히 남성들이 마마보이화했구나, 하는 점이다. 부모와 친구 등등 해서 자기의 배우로서의 결정권을 다른 사람들에게 위탁하는 행태를 보고 깜짝 놀란 거다. 캐스팅 다 하고, 대본 리딩하고 이러다가도 어머니가 한 손에 성경 들고 울고 불고 하면 못하겠다고 얘기하는 애들이 즐비하다. 그래서 요즘은 캐스팅을 할 때 ‘부모님 설득할 자신 있어?’를 제일 먼저 물어본다.(웃음) 피터팬 신드롬이라고 하는 필터를 가지고 다시 이 젊은 친구들이 왜 의존적이고, 미성년 상태로 멈춰 있는 건가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그건 비단 배우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캐스팅이 되면 배우들을 데리고 배드민턴을 치러 간다고 하던데.

이송 원래 내 꿈이 테니스 선수였다. 배우들의 성격을 보기 위한 측면도 있다. 몸치들을 보면 ‘얘는 어렸을 때 운동하고 전혀 담을 쌓고 히키코모리처럼 살았구나’ 하고 간파된다. 어떤 친구는 펄펄 난다, 그러면 사교성이 있겠구나, 친구들하고 많이 놀았구나,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런 식으로 내가 나중에 영화를 찍을 때 얘를 어떻게 변용가능하겠구나 하고 간을 보는 거다.

배우를 택할 때 어떤 부분을 먼저 보나.

이송 아이라인.(웃음)

<광해>를 보고 ‘이병헌의 아이라인이 좋았다’고 했다.

이송 이병헌씨랑 작업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고 ‘저 배우는 정말 좋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장르마다 다른 것 같다. 멜로는 아이라인이 좋은 배우들이 확실히 산다. 저 눈빛을 내가 어떻게 살릴 수 있는지가 배우를 만날 때 먼저 생각하게 되는 거다. 지금까지는 멜로를 많이 찍었기 때문에 처음 봤을 때 눈에 감정이 있는지 없는지 보는 거다.

한국에서 게이 감독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송 아무도 없을 때 개척을 해서 상징적인 자본을 가지게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데, 상징적 자본 때문에 받게 됐던 오해와 편견의 시각들이 있다. 일단 퀴어 영화라는 전제로 보니까 손해보는 느낌이 굉장히 많았다. 그래도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후회는 없어, 일찍 커밍아웃을 잘 했고,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조금 가난하긴 하지만.

‘이것이 퀴어 영화다. 내가 만들면 다르다’ 이런 선언 같은 느낌이 영화 보고 나서 들었다.(웃음)

이송 전혀 그런 생각은 없었고, 원래 준비하던 장편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가 본격적인 거다. 계획하고 있는 영화는 학교폭력의 문제와 성 정체성의 문제를 섞어서 훨씬 더 센 영화가 될 거다.

영화를 보면 커플이 되더라도 계급적 차이가 어느 정도 있거나, 아니면 나이 차이를 둔다.

이송 평균적인 계급, 평균적인 감수성, 평균적인 문화적 조건을 갖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관심이 없다. <지난 여름>은 희한하게도 아직까지 가장 진보적인 유럽이라고 하더라도 교사의 문제만큼은 심각하다는 걸 짚었다. 예전에는 여선생님과 남제자의 관계를 영화로도 드라마로도 만들었는데, 지금은 청소년보호 이런 걸로 더 닫아버렸다. 그런 것을 질문하고 싶은 거다. 오히려 소년이 꼬이고, 성인이 저항을 하다가 빠져들게 된다. <백야> 같은 경우는 동성애자 커뮤니티와 이성애 커뮤니티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다. 항상 그 경계에서 폭력이 발생한다.

여섯 시간 정도의 시간 동안 두 사람에게 벌어지는 일에 집중해서 세 편을 만들었다.

이송 되게 짧으면 짧은 순간인데, 그 짧은 순간에 굉장히 많은 것들이 발생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거기 집중을 한 거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지킬 것이 있는 쪽은 굉장히 소극적이고, 반대쪽은 적극적이다. 본인의 자의식이 반영된 건가.

이송 그게 암묵적으로 있다. 선생과 제자의 이야기든 군대의 이야기든 내 사적인 감정, 내 사적인 스토리들이 조금은 들어가 있는 거다. 그 얘기가 다 까발려지면 내가 만신창이가 되어버리는 건데.(웃음) 내가 살아오면서 영화감독이기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 동성애적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이성애자 사회에서 살아오면서 느꼈던 갑갑함, 이건 왜 이럴까, 하는 의아함 이런 부분들이 아무래도 반영이 되어 있다. 암묵적인 항의도 있겠고.

<백야> 디렉터 노트에서 “아직도 한국은 어떤 망명자들에겐 떠날 수밖에 없는 곳이고, 또 어떤 이에겐 질기게 버텨서 희망을 길어올릴 수밖에 없는 양가적 공간이다”라고 했다.

이송 한국에서 못견디겠다고 해서 유럽이나 이런 데서 외국인들을 만나서 그 쪽에서 결혼한 사람도 많다. <백야> 찍을 때 다음 포털을 달궜던 사건이 게이 망명사건이다. 캐나다로 망명을 신청해서. 그때 모 인권단체에서 조사를 해보니까 대기상태에 있는 이가 몇십 명이었다. 나는 그게 충격적이었다. 내가 인권운동을 하기 시작했던 90년대 초반과 비교를 해보면 사회가 좋아졌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런 공간이다.

아무래도 게이들이 주인공이다 보니까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들이 소외되었다는 얘기들이 있다.

이송 단편 찍을 때는 여자가 다 주인공이었다. 게이 영화인데.(웃음) 게이들이 가해자로 나오는 영화, 그래서 초창기에는 게이들이 불편해했다.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가지는 한계나 함정이 많기 때문에 계속 내부적으로 우리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고 하는 내부고발자가 되어야 되는 측면이 있다.

‘친구사이’ 활동도 했었고, 동성애자 인권운동에 대해서도 일정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송 동성애자 인권 이렇게 해버리면 계속 끊임없는 소수의 입지로 전락할 수 있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건데, 그게 어느 정도 인정이 되면 행정 단위로 넘어가는 거다. 인권단체 때도 마찬가지고. 행정업무 처리하는 단계로 넘어가버려서 사실은 보수화되는 거다.

<백야>가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모방위험 등을 이유로.

이송 ‘당신의 영화는 너무 폭력적이어서 사람들이 모방하지 않겠냐?’고 하니까, 기타노 다케시가 ‘아니 너희들이 권장하는 수많은 아름답고 착한 영화들이 있는데, 그러면 지금 세상은 아름다워졌어야 하는 거 아냐?’라고 답했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 있다면.

이송 웬만해서 정치적인 발언들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있다. 영화감독은 영화로 얘기하는 것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두 번째는 386세대 욕하고, 기존의 좌파 운동권 욕하는 것으로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요즘 젊은 좌파들이 조금 한심해 보인다. 자기들을 잉여로 대상화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자기 비하도 포함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기존 세력들에게 책임감을 묻고 있는 거다. 이건 자기 존재를 외부의 시선에 의탁하고 있는 거라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나도 조용히 입닥치고, 투덜거리지 말고, 내가 하는 독립영화 쪽 일에 충실하게 매진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글·지승호 인터뷰 전문작가 sibidori@paran.com>
<사진·김석구 선임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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