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의 저주

2012.07.03

전자책이 종이책을 바꿀까? IT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가져봤을 만한 호기심이다. 지난 수십 년간 음악 시장에서 카세트테이프, CD를 자연스럽게 MP3가 대체한 전례를 생각하면, 책 역시 비슷한 전망을 갖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달은 편리로 무장한 강력한 유혹이란 걸 감안할 때, 전자책이 미래란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사고의 전부는 아니다. 그렇다면,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부정적인 측면들을 미리 파악하고 예방하는 능력은 감퇴하게 된다. 원자력은 의학용으로 사용될 수도 있지만, 살상용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따라서 여기 한 가지 질문이 더 남아 있다. 여러 측면을 고려했을 때 전자책의 시대는 과연 종이책의 시대보다 나은 것일까?

국내에 출시되어 있는 각종 전자책 기기들. | 김영민 기자

국내에 출시되어 있는 각종 전자책 기기들. | 김영민 기자

물론 압도적으로 나은 부분이 있다. 전자책이 편리한 것은 사실이다. 필자는 킨들로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란 외교 전문지를 정기 구독해 보고 있다. 한 달에 적어도 다섯 권은 킨들로 책을 구매해서 본다. PC나 모바일로 웹 서핑을 하다가 다소 긴 신문 기사나 블로그 포스트가 있으면 ‘킨들로 보내기’(send to kindle)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킨들로 보내놓고, 나중에 와이파이(Wifi)를 이용해 다운로드 받아서 본다. 킨들을 이용하는 덕분에 문서 자료를 사고, 보관하고, 읽는 경험이 모두 편리해졌다.

그러나 킨들이 무서울 때도 있다. 킨들을 쓰면서 편리의 대가는 자유의 상실이란 것을 더 뼈저리게 느낀다. 그렇게 내가 정기구독하는 잡지, 구매한 도서, 스크랩한 문서들은 내가 킨들에서 다른 전자책 사업자가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순간 무용지물이 된다. 물론 애플의 모바일, 태블릿 운영체제인 iOS에서도 킨들 애플리케이션을 지원하므로, 아마존이 아닌 다른 회사에서 제공하는 기기로도 킨들의 콘텐츠를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권리 상실을 통해 얻은 편리의 획득이다. 내가 교보문고에서 종이책을 샀다고, 교보문고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내 책의 보관, 이용, 공유에 제한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킨들은 아니다. 전자책은 다르다. 분명 내가 내 신용카드를 통해 결제해서 구매한 도서도 사실상 내가 소유권을 가지고 그 사용 목적을 내가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아마존이 ‘허락한’ 사용 목적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내가 구매한 내 킨들 콘텐츠에 대한 내 권리는 제한돼 있다.

그렇다면 이 전자책의 저주는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일단, 공급자 측에서 보면 전자책의 저주, 혹은 좀더 구체적으로 ‘폐쇄적 플랫폼’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인센티브는 약할 수 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말한 것처럼 기업가들이 꿈꾸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회사 제품을 쓰게 만드는 것이다. 굳이, 꼭, 아마존을, 킨들을 써야만 하는(lock-in) 이유를 만들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마존만의 희망 사항은 아니다. 따라서 기업 측에서 전자책의 저주를 풀어주길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해결책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이용자들이다. 이유는 첫째 그들이 다른 인센티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누구나 처음에는 아이폰의 디자인이 좋아서 아이폰을 구매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안드로이드폰의 사용성이 궁금해져서 삼성 갤럭시 시리즈 중 하나를 구입할 수도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렇게 플랫폼을 대체했을 때도 내가 샀던 애플리케이션은 그대로 옮겨가고 싶은 게 일반적인 이용자들의 기대치다. 나아가, 이 기대치가 성장하면 실제 수요로서 시장을 주도한다. 따라서 이용자들이 플랫폼을 넘어 이용성이 보장되는 상호호환성(interoperability)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그에 적절한 대비책을 공급 업체들이 시장의 경쟁을 통해 제공할 때, 더 나은 전자책의 미래가 등장할 수 있다.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한다면 소비자의 편리와 이용자의 권리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김재연 <‘소셜 웹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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