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 클리셰를 비트는 호러

2012.07.03

[터치스크린]공포영화 클리셰를 비트는 호러

제목 캐빈 인 더 우즈 

영어제목 The Cabin in the Woods 

감독 드류 고다드 

출연 크리스턴 코놀리, 크리스 헴스워스, 앤나 허치슨, 프랜 크란츠, 제시 윌리암즈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등급 18세 관람가 

상영시간 105분 

개봉일 2012년 6월 28일

개인적으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1988년, 친구들이 서울올림픽에 열중하고 있을 때 어느 동시상영 극장에서 ‘그 영화’를 접했다. 당시는 <나이트메어>나 <13일의 금요일> 류의 이른바 ‘살을 찢고 발기는’ 슬래셔 영화들이 한창 장르 안에서 유행하고 있을 때였다. 서양 공포영화에 대한 일종의 선입견 같은 게 없지 않았다. 그런데 귀신 들려 공중부양한 주인공 애쉬의 여동생이 “네놈들은 모두 새벽이 되기 전에 뒈질 거야(death by dawn)”라고 외칠 때 ‘어 이거 봐라?’ 하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 영화가 바로 <이블데드>(1981)였다. 오늘날엔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더 잘 알려진 샘 레이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이블데드>와 동시 상영작은 기억이 정확하다면 서극 감독의 <천녀유혼>이었다.

미국보다 약 두 달 늦게 개봉하는 <캐빈 인 더 우즈>는 명백히 <이블데드>를 참고하고 있다. 다섯 명의 남녀 대학생은 어느날 GPS도 잡히지 않은 외딴 산골로 여행을 떠난다. 오두막집에서 짐을 풀고 놀던 저녁, 지하실로 들어간 이들은 온갖 종류의 잡동사니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발견한 일기책. 라틴어로 된 주문을 읽자 저주는 시작된다. 숲속으로 나갔던 연인, 학생이 가장 먼저 희생된다. 여기까지는 판박이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다. 영화는 초반부터 무료한 일상의 오후를 보내는 두 명의 과학자를 보여준다. 남녀 학생들이 낡은 캠핑카를 타고 떠날 때부터 이들은 주도면밀하게 감시되었다. 외딴 산골의 오두막에 이르기 전 <이블데드>의 주인공들이 차로 건넜던 낡은 다리는 이 영화에선 단단한 절벽을 에둘러 파낸 굴로 대체되었다. 멋모르고 쫓아가던 독수리는 레이저 망에 걸려 깃털도 못추린다.

나중에 비디오로 출시된 <이블데드>에선 미처 알아채지 못한 장면이 LD로 출시된 일본판 <이블데드>나 크라이테리온 판으로 나온 DVD를 통해서 드러난다. <이블데드>의 오두막집에 오버랩 되어 껌벅거리는 정체 불명의 괴물 눈이다.
 
그것은 그 집 자체가 ‘괴물’이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블데드>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그 집이 있던 장소는 시공간이 뒤틀린, 일종의 타임터널이었다는 재해석도 일어난다.) 그렇다면 <케빈 인 더 우드>의 오두막은? 최첨단 과학으로 정교하게 제작된 집, 일종의 세트다. 최초의 희생자가 되는 여학생의 죄목은 ‘음탕함’인데, 그건 그들을 꼼꼼히 모니터링하고 있는 과학자들이 화학물질 스프레이로 정교하게 조작한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장르적 클리셰(관습)에 대한 패러디다. 공포영화에서 관철되는 법칙은 단순하다. 금단(禁斷)의 열매를 따먹은 사람은 1순위로 제거된다. 아주 비참하거나 스펙터클한 방식으로. 그리고 이 최초의 희생자는 여성이거나 ‘얼간이’다. 금단의 열매란 섹스나 마약이다. 그런데 도치되어 있다. 법칙에 따르면 처음부터 대마초를 피면서 등장한 마티(프란 크라즈 분) 역시 남은 생은 길지 않아야 한다.

<이블데드>를 이 영화가 주로 인용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실은 영화에선 그동안 공포영화에 나타났던 주요 ‘몬스터’가 떼로 등장한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샤이닝>(1980)에서 피분수가 터지던 호텔 복도에 무표정하게 서 있던 쌍둥이 자매 귀신이 기억나는가. 그들 역시 다섯 학생들이 집어들었을지 모를 선택지 중 하나였다. 살인마 어릿광대라든가 오리지널 미이라-리메이크된 말라깽이 CG 미이라가 아닌 1930년대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붕대로 칭칭 감은 미이라-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한동안 잊혀진 공포영화의 또다른 전통을 상기시킨다. 피칠갑한 주인공들과 괴물이 벌이는 사투, 피의 사육제다.
  
허셀 고든 루이스가 만들어낸 초기 고어영화들이나 역시 이제는 비교적 점잖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감독으로만 기억되는 피터 잭슨의 <고무인간의 최후(Bad Taste)>(1987)나 <데드얼라이브>(1992)가 보여줬던 흥겨운 향연 말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매체별 인기뉴스]

    • 경향신문
    • 스포츠경향
    • 주간경향
    • 레이디경향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