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목 더 박스
원제 The Box
감독 리처드 켈리
출연 카메론 디아즈, 제임스 마스덴
제작국가 미국
등급 15세 관람가
상영시간 115분
개봉일 2010년 4월 19일
<버튼, 버튼>은 리처드 매드슨이 1970년 <플레이보이>에 연재했던 단편이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어느날 가난하고 젊은 부부에게 상자 하나가 배달된다. 상자에는 버튼이 붙어 있다. 부부를 방문한 남자는 “이 상자의 버튼을 누르면 5만 달러를 주겠다. 다만 그 버튼을 누르는 순간 누군가 죽는다. 그리고 죽는 건 당신이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설명한다. 부부는 며칠 동안 고민한다. 결국 아내가 버튼을 누른다. 죽은 것은 엉뚱하게도 남편이었다. 5만 달러를 전달하러 온 남자에게 아내가 항의한다. “왜 남편이 죽지요?” 남자가 대답한다. “당신은 남편에 대해 정말 알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리처드 매드슨의 단편들이 대개 그렇듯 이건 드라마 <환상특급(Twilight Zone)> 시리즈에 매우 어울리는 이야기였다. 역시나 <버튼, 버튼>은 1985년판 <환상특급>의 첫 번째 시즌에서 다루어졌다. <환상특급> 버전에서 남자가 제시하는 돈은 원작의 5만 달러가 아닌 20만 달러다. 아내가 상자에 집착하는 과정이 좀 더 길게 묘사된다. 그리고 결말이 바뀌었다. 아내가 버튼을 누르자 남자가 찾아와 상자를 수거하며 20만 달러를 준다. 당신이 모르는 누군가가 죽었다고 말한다. 더불어 이렇게 덧붙인다. 이 상자는 재설정되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갑니다, 다음에 이 상자를 받게 될 자들도 당신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리처드 매드슨은 이 결말을 매우 싫어했다. 결국 그는 <환상특급>의 해당 에피소드에서 원작자의 이름을 ‘로건 스완슨’으로 바꿔줄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버튼, 버튼>을 떠올려보자. 원작 자체가 너무 간단한 이야기다. 텔레비전용 50분짜리 단막극으로 만들려면 축약이 아니라 뻥튀기가 필요하다. 원작으로부터 무얼 버리고 선택하고 집중할 만한 재료가 애초 부족했다는 말이다. 그런 걸 감안해볼 때 나는 <환상특급> 버전의 방식도 크게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더 박스>는 같은 원작을 소재로 한 장편영화다. <도니 다코>의 리처드 켈리가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그는 이 두 시간에 가까운 영화에서 같은 난제를 어떻게 풀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원작의 이야기에 <엑스파일>이나 <신체강탈자의 침입>식의 음모론 서사를 가져오는 해법을 택하고 있다. 그리고, 아쉽게도 이 해법의 결과물은 성공적이지 않다.
영화에서 아내(카메론 디아즈 분)는 교사이고, 남편(제임스 마스덴 분)은 NASA의 연구원이다. 최근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했다. 스튜어트(프랭크 란젤라 분)가 방문해 부부에게 100만 달러를 제시하고 고민 끝에 아내가 버튼을 누른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초반부다. 이후 부부 주변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을 감시한다. 남편은 스튜어트의 정체를 추적하다가 NASA와 관련된 음모가 있음을 깨닫는다.
<도니 다코>에서 그랬듯이, 리처드 켈리에게는 평범한 일상에 묘한 틈이 벌어지는 순간을 근사하게 포착해내는 재능이 있다. <도니 다코>는 내게 데니스 호퍼 대신 토끼 가면이 나오는 <블루벨벳>이었다. 중산층 가정의 일상이 어떤 사건으로 인해 기묘하게 비틀리고, 이전까지 평범했던 모든 것들이 더 이상 평범하지 않게 변모하며, 결국 초월적인 형태로 사건이 마무리된다는 점에서,
<더 박스>는 <도니 다코>와 일면 유사한 영화다. <도니 다코>를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그와 같은 공기를 발견하고 좋아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박스>의 이야기 전개는 뒤로 갈수록 지나치게 분절되어 망상이 되고, 특히 괴팍하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결말 때문에 마지막까지 이어진 관객의 기대를 저버린다. 아쉬운 노릇이다. <더 박스>의 한국 공식포스터에는 “<나는 전설이다> <시간여행자의 아내>의 리처드 매드슨 원작”이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는데 <시간여행자의 아내>가 아니라 <시간여행자의 사랑>이다. 오드리 니페네거의 소설을 언급한 모양인데 실수인지 의도인지 모르겠다.
<허지웅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