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책임 다하는 공유가치창출

원더풀 라디오

1920년대 라디오가 미국 경제에 미친 영향은 컸다. 라디오를 비롯해 자동차, 비행기 등 신제품의 개발은 투자심리를 북돋웠고 주식시장에 돈이 몰려들도록 했다. 주식시장 거품은 1929년 대공황을 유발시켰다. 역설적이게도 라디오 시대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열린다.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실업으로 주머니가 텅빈 사람들은 영화관이나 술집으로 가지 못하고 라디오를 틀었다. 1930년대 라디오 드라마는 황금기를 이뤘다.

100년이 지난 2012년. 라디오는 여전히 미디어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경쟁자인 TV와 인터넷에 밀려 비주류로 전락했지만 늦은 밤 공부하는 수험생, 단순 반복작업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 라디오는 가장 친근한 매체다.

[영화 속 경제]사회적 책임 다하는 공유가치창출

청취율이 2%도 안 되는 비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다. 이름하여 ‘원더풀 라디오’다. DJ는 한때 아이돌 스타 신진아(이민정 분)다. 방송국에서는 새 PD 이재혁(이정진 분)을 투입해 청취율을 끌어올리려 한다. 이들은 ‘그대에게 부르는 노래’ 코너를 신설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방송에서 전하고 그에게 노래를 직접 들려주는 형태다. 청취자가 참여하는 새로운 포맷은 청취율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될까.

권칠인 감독의 <원더풀라디오>(2011)는 로맨틱 코미디다. 이민정의 밝은 얼굴만큼 화면은 내내 화사하다. 골치아픈 것 잊고 킬링타임용으로 딱 좋다.

새 코너는 대박을 터트린다. 여자친구에게 사랑 고백을 하는 군인, 죽은 아내에게 딸마저 데려가지 말라고 비는 아빠, 돌아가신 아빠에게 새아빠를 받아들이겠다며 용서를 구하는 딸…. 원더풀라디오는 단순한 라디오 프로그램이 아니라 시청자들의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는 화해의 공간이 된다.

통상 청취율을 끌어올리려면 주로 자극적인 아이템을 찾는다. 막말방송이나 선정적인 방송은 주목을 받게 마련이다. 하지만 요즘은 방송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도 청취율을 끌어올리는 ‘도덕적인’ 방법을 많이 찾는다. 그래야만 프로가 안정적으로 오래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요즘 기업들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무리한 판촉경쟁이나 생산경쟁을 벌이는 것을 피한다. 그보다는 폭넓은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y·CSR)을 다하면서 기업 경영을 개선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환경파괴와 인권유린 등을 피하는 생산, 국가와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 제품 결함에 대한 인정과 보상 등이 CSR에 포함된다. 이른바 정도(正道)경영이다.

제이슨 사울은 자신의 저서 에서 기업이 도덕적 의무를 넘어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은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새로운 경영전략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월마트의 4달러짜리 처방약 프로그램은 월마트의 매출액을 높이고 처방약에 대한 시장도 확대시켰다는 실례를 든다. CSR를 통해 기업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높이는 것을 공유가치창출(CSV·Creating Shared Valu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원더풀 라디오’가 손쉽게 청취율을 올리는 방법은 유명 뮤지션이나 개그맨을 초청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시청자의 응어리를 풀어주면서 청취율을 높이고 프로그램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택한다. 시청자에게는 유익하고, 청취율은 높아졌으니 공유가치창출이다.

이재혁 PD가 신진아에게 묻는다. “진아씨에게 라디오는 무엇이에요.”
진아가 답한다. “내 이야기를 하는 공간이었다가 지금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신해주고 토닥여주고 그러다가 내가 위로받는 느낌.”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 기업의 구성원들도 행복해진다.

<박병률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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