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적’ 불법정보만 규제해야

2011.01.25

<주간경향>·국회입법조사처 공동기획

‘인터넷 허위사실 유포’정책 방향

‘결과적 허위’로 드러난 의견도 막으면 표현의 자유 위축

허위사실의 표현도 언론·출판의 자유에 의하여 보호되는가? 그렇다. 지난 2010년 12월 28일, 헌재 재판관 5인의 판단이다. 헌재가 명확성의 원칙 위배를 근거로 허위사실유포죄를 위헌으로 결정하면서,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이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진보적으로 선언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반면 인터넷 상의 유언비어를 통제할 수단이 없어진 것을 우려하는 견해도 있다. 특히 법무부는 위헌결정 당일 국가적·사회적 위험성이 큰 전쟁·테러 등에 관한 허위사실 유포사범에 대해 처벌규정 신설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 위헌 결정이 나온 12월 28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미네르바’ 박대성씨(오른쪽)가 박찬종 변호사와 함께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 위헌 결정이 나온 12월 28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미네르바’ 박대성씨(오른쪽)가 박찬종 변호사와 함께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이렇듯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판단의 전제가 되는 허위사실의 성격과 인터넷의 자정능력에 대해 먼저 검토해야 한다.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악의적인 허위사실 유포를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악의 와 ‘결과적 허위’는 구분해야
먼저 허위사실이라 하면, 연평도 피격 때의 예비군 소집 문자처럼 악의적으로 민심을 동요시키는 경우를 생각하게 된다. 천안함 사태 당시 남한의 선제공격을 주장하는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악의가 있는 허위사실과 결과적으로 허위로 나타난 자유로운 의견이나 주장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2005년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가 거짓으로 드러난 것은 누리꾼들이 자유로운 의혹을 제기한 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또한 다양한 경제전망 가운데 적중하는 것은 5% 이내이지만, 그러한 전망이 경제 흐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고 경제위기에 대비하도록 하는 측면도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허위사실에 대한 규제 범위는 ‘악의적’ 허위사실 유포로 한정되어야 한다. 단순히 결과적으로 허위로 드러났다는 사실만으로 순수한 의견이나 주장도 규제한다면,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자유로운 표현을 위축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이 악의적인 허위사실을 스스로 정화해낼 수 있을까?
최근 들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고 다양한 참여자가 스스로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프로슈머(Prosumer)로 등장하면서, 인터넷의 자정능력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SNS로 연결된 감시의 눈이 증가하면서, 다양한 참여자의 집단 지성에 의하여 잘못된 정보를 제거하는 시스템이 가능해진 것이다. 실제 2009년 김대중 전(前) 대통령의 사망 보름 전에 사망설이 트위터를 통하여 전파됐으나, 해당 병원 관계자가 생존 정보를 알리면서 잘못된 정보가 정정되기도 했다.

[이슈와 논점]‘고의적’ 불법정보만 규제해야

하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심의한 인터넷 상의 불법정보는 ▲2008년 1만5004건 ▲2009년 1만7636건 ▲2010년 9월까지 2만4825건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현재까지는 인터넷의 자정기능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인터넷 자정능력도 발전시켜야
그렇다면 아직까지 인터넷의 자정기능이 충분히 확립되지 못한 가운데 ‘악의적인’ 허위사실 유포를 어떻게 규제해야 할 것인가?첫째, 사회적 공감대 안에서 특정 유형의 허위사실을 불법정보로 규제해 나가야 한다. 어떠한 허위사실을 불법정보로 규정할 것인지는 사회 전체적인 맥락에서 가치판단의 문제이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은 없었다’는 주장이 1992년 캐나다에서는 표현의 자유에 의하여 보호된 반면, 1997년 독일에서는 시민 선동죄 혐의로 수사를 받았던 것은 좋은 예다. 오늘날 한국이 처한 여건에서 어떠한 허위사실을 규제할 것인지에 대한 공론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둘째, 허위사실유포죄의 요건에 ‘고의’를 명시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진실을 의도했지만 허위로 드러난 경우에도 규제의 잣대를 적용한다면 예측하지 못한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의에 의한 허위사실 유포가 사회 전체적으로 공감하는 불법정보에 해당하고, ‘현존하고 명백한 위험’을 야기한다면 비로소 허위사실유포죄로 처벌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슈와 논점]‘고의적’ 불법정보만 규제해야

셋째, 민간의 자율규제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은 24시간 숨쉬며 변화하는 공간으로, 인터넷 상의 모든 정보를 정부가 감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민간의 자율규제가 부각되고 있는 추세이다. 또한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 4개국의 사례를 통하여 볼 때, 자율규제가 안정적으로 정착되었을 경우에는 공공규제보다 더 엄격하게 불법정보의 억제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기의 우려에 비하여 인터넷의 자정능력이 향상되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민간의 자율규제와 공공부문의 공공규제 간의 상호 보완적 체계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현재 국내의 인터넷 자율심의기구로는 2009년 발족한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가 대표적인데, 향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공공규제 기관과의 관계 정립이 필요하다.

2010년 미네르바 사건은 종결되었지만 인터넷 상의 허위사실 유포, 나아가 인터넷 상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의는 이제 다시 시작된 셈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공론의 장을 통하여, 어떠한 허위사실을 불법정보로 규정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또한 장기적으로 인터넷을 자정능력을 갖춘 신뢰의 공간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이는 비단 정부만의 과제가 아니다. 인터넷이 불법정보가 난무하는 공간이 될 것인지, 유익한 정보와 자유로운 의견이 공유되는 공간이 될 것인지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정보의 생산자와 이용자가 따로 없는 소셜 네트워크 시대의 인터넷 공간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하나의 정보주체이기 때문이다.

권순영<문화방송통신팀 입법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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