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레프트리뷰

2010.02.02

‘마르크시즘의 눈으로 도시재개발을 다시 본다’

프레드릭 제임슨 외 지음 | 김철효 외 옮김 | 도서출판 길 | 2만5000원

[이주의 책]뉴레프트리뷰

“실제로 부르주아지에게는 주택문제를 자기 식대로 해결한다는 단 하나의 방법, 즉 해결책이라는 것이 늘 똑같은 문제를 끊임없이 새롭게 재생산하는 식의 해결방법만이 있을 뿐이다.… 수치스러운 뒷골목과 샛길들이 사라질 때 부르주아지는 이 엄청난 성공을 두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제 칭찬을 하며 장단을 맞추지만 사라진 것들은 어느 틈에 어디 다른 곳에서 곧바로 다시 나타난다.”

1872년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제2 제정기 프랑스 파리의 도시재개발을 두고 한 말이다. 1853년 나폴레옹 3세는 오스만 남작에게 파리를 개조하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책임지게 했다. 오스만은 파리의 도시 기반시설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쳐 파리를 소비·관광·쾌락이 지배하는 ‘모더니티 수도’로 탈바꿈시켰다.

이 시기의 전면적 파리 개조에는 정치·경제적 배경이 강하게 작용했다. 1851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848년 혁명을 통해 불거진 혁명의 기운을 해소하기 위해 거대한 토목 공사에 매진했다. 왜 토목공사였나. 1848년 혁명은 유휴 상태의 잉여자본과 잉여노동력이 불러온 위기였기 때문이다. 파리 재건은 “엄청난 양의 노동력과 자본을 흡수하는 한편 파리 노동계급의 열망을 잠재우면서 사회를 안정시키는 주요 수단이 될 수 있었다”.

영국의 마르크시스트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에 따르면 도시화는 “자본가들이 이윤을 추구하며 지속적으로 쏟아내는 잉여생산품을 흡수하는 데 군비지출 같은 현상과 더불어 특히 적극적인 역할”을 해 왔다. 하비가 보기에 19세기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도시화는 이처럼 자본주의가 체제 위기를 돌파하는 수단이다. 도시 재개발은 “언제나 계급적인 차원을 지닌다”. 재개발의 이익은 소수에게 돌아가는 대신 고통은 모두 정치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가난한 자들에게 지워진 몫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는 반드시 폭력이 동원된다. 오스만은 파리의 슬럼가들을 “개량과 혁신의 이름으로 공권력을 동원하여 강제로 몰수했다”. 한 세기 뒤의 한국도 마찬가지다. 하비는 1990년대의 서울을 폭력적 강제 철거의 사례로 제시한다. “그들(철거깡패단)은 커다란 해머로 그곳(서울의 달동네 지역들)들의 집뿐만 아니라 소유물까지 모조리 다 때려부쉈다.” 이런 일들은 인도의 뭄바이나 델리, 급속한 도시화를 겪고 있는 중국에서도 수시로 벌어진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이나 영국도 예외는 아니다. 강제 철거는 지속적인 자본 축적을 목적으로 진행되는 도시화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해법은 무엇인가. 하비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광범위한 사회운동을 조직해 도시화 과정을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첫선을 보인 <뉴레프트리뷰> 한국어판 제2권에는 이 같은 논지를 담은 하비의 ‘도시에 대한 권리’를 포함해 세계 경제와 신자유주의,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권에 대한 분석 등을 담은 11편의 글이 실렸다.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세계 체제 이론의 대가 조반니 아리기와 데비이드 하비의 대담이다. 아리기는 지난해 6월 사망했다. 이로써 이 대담은 아리기가 세상에 활자로 남긴 마지막 발언이 됐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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