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물의 죽음을 두고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과장없이 말할 수 있을까. 8월18일 서거한 한 전직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라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8월18일 86세를 일기로 영면에 든 정치인 김대중이 그간 쌓아올린 업적의 성채는 한 시대의 종언이라는 표현을 너끈히 감당할 만큼 우뚝하다.
61년 5월 보선에서 당선하면서 정치적 이력을 시작했던 그가 군사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 세력의 정치적 구심점으로서 걸어온 길은 우리 사회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궤적과 겹치면서, 정치라는 거푸집이 현실의 모습을 거의 압도적으로 규정해온 한국 사회에 깊고 너른 영향을 끼쳤다.
반공이라는 명분으로 독재와 억압의 정치를 정당화했던 한국 정치의 기득권 세력에게 민주주의와 남북화해를 주장하는 정치인 김대중의 존재는 그 자체로 위협적이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집권기와 신군부 집권기에 각기 한 번씩, 모두 두 차례 정치적 타살의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97년 대선 때 그의 당선으로 수평적 정권 교체를 달성한 후 한국 민주주의의 지평은 인권과 복지 차원으로까지 그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남한 민주주의의 진보가 분단의 얼음장을 깨는 일과 무관치 않다는 그의 신념이 거둔 감동적인 결실이었다.
그러나 업적이 높았던 만큼 그늘도 길었다. 대통령 선서를 하기도 전에 불어닥친 외환위기의 강풍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양극화의 씨앗이 뿌려졌다. 오랜 세월 계파 정치의 수장으로 쌓아놓은 정치적 입지는 한국 최고 권력의 고질적 병폐인 측근과 가족 비리에 그를 단단하게 묶어놓았다.
병마와 세월은 그의 육체적 활력을 빼앗아갔지만, 한평생 담금질한 투사의 정신마저 앗아가지는 못했다. 그가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진 심정”이라고 안타까워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현 정권을 향해 뿜어낸 사자후는 전직 대통령 자살이라는 미증유의 충격에 빠져 있던 사람들의 정신을 흔들어 깨웠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그가 보인 눈물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걱정하는 이들의 눈에서도 기어이 눈물을 뽑아냈다.
이제 그마저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마지막 불꽃을 기억하며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는 이들은 지금 국회 빈소와 전국 곳곳의 분향소로 모여들고 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