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건축은 행복을 향한 인간 열망의 결정체다

2008.08.19

<font color="#cc6600"><b>건축예찬</b></font><br>지오 폰티, 김원 옮김, 열화당, 2000

건축예찬
지오 폰티, 김원 옮김, 열화당, 2000

월셋방에서 전셋집으로, 단칸방에서 두 칸짜리 집으로, 한옥 문간방에서 단독주택으로, 연립주택에서 아파트로 사는 곳을 자주 옮겨 다녔다. 서울에서 몇 번이나 이사했는지 다 기억할 수조차 없다. 그 번잡하고 끔찍스러운 이사를 스무 번, 아니 서른 번쯤 치러냈다.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끌어안고 사는 그 많은 책을 이사할 때마다 묶었다 풀었다 반복하고, 가난한 세간을 쌌다 풀었다 하기를 또 그만큼 했다. 그 속에서 현무암처럼 깊어지는 불행을 묵묵히 견뎌내며 불혹(不惑)을 넘어섰다. 소음으로 넘친 세계에서 돌아와 쉴 수 있는 침묵의 정수(精髓)가 깃든 작은 방들, 숙면을 부르는 침실,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복도와 부엌, 눈발이 휘몰아치는 겨울의 어둡고 얼어붙은 밤에 머물 수 있는 밝고 따뜻한 거실. 나는 좋은 삶은 좋은 집에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했다. 그래서 유난히 공간에 대한 욕망이 내 안에 끈질기게 잠복해 있는지도 모른다.

말할 것도 없이 집은 실존의 중요한 한 요소다. 집이 없다면 삶은 남루해진다. 집은 사람과 사회라는 실존 기반에 착근하게 만드는 중요 요소다. 반면 집 없는 사람들은 뿌리가 없이 떠돈다. 사회와 매개 없이 정처 없이 떠돎, 그리고 실존 기반의 불안 때문에 집 없는 사람은 범죄의 유혹에 노출된다. 왜 범죄자에게 ‘주거 불명’이 그토록 많은지 납득할 수 있다. 르코르뷔지에는 집의 기능을 이렇게 간략하게 정리한다. “첫째, 더위, 추위, 비, 도둑, 호기심 많은 사람들에게서 지켜주는 피난처. 둘째, 빛과 태양을 받아들이는 그릇. 셋째, 조리, 일, 개인 생활에 적합한 몇 개의 작은 방.” 집은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궁극적으로 존재를 규정하는 요소다. 집은 여러 기능의 종합이다. 이를테면 사람의 운명을 살려내는 인큐베이터고, 꿈을 부화시키고 양육하는 둥지며, 노동으로 지친 몸을 쉬고 충전하는 요양소고, 곤경에 빠진 영혼을 다독이는 ‘심리적인 성소’(알랭 드 보통)이다. 좋은 집의 조건은 비와 바람과 추위를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람의 꿈과 욕망과 동경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길러낼 수 있어야 한다. 고요, 힘, 우아함이 깃들어야 하고, 숙면과 내면생활의 풍요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 조건이 갖춰질 때 집은 불완전한 삶이 때때로 불러오는 불행을 견디고 치유할 수 있는 힘을 북돋워준다. ‘어떤 집에서 살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격과 정체성, 운명은 달라진다.

<열화당 제공>

<열화당 제공>

카라카스 컨트리 클럽에 있는 아레아차 별장의 배치도와 사진. <열화당 제공>

카라카스 컨트리 클럽에 있는 아레아차 별장의 배치도와 사진. <열화당 제공>

‘임제록’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일심도 없으면 곳곳마다 해탈한다(一心旣無隨所解脫)” 일심이란 말을 바꾸면 집착하는 마음이 아닌가. 집착을 버려야 해탈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집착을 버린 그 순간이 곧 해탈이다. 해탈해야만 융통무애(融通無碍)한 삶이 가능할 터. 그렇다 할지라도 나는 좋은 집을 향한 욕망을 멈추지 못한다. 소유 망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행복 때문에 나는 아직도 집과 공간에 대한 욕망을 멈출 수 없다. 그랬으니 지오 폰티의 ‘건축예찬’을 처음 만났을 때, 단번에 매혹당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스물 몇 해 전 이 책을 처음 읽고 한 줄기 벼락이 대뇌를 가로질러 간 듯 멍한 느낌에 빠졌다. 제 내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진지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놀라운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삶과 문명, 우주에 대한 놀라운 영감으로 가득 찬 책, 수정의 메아리를 가진 책들이 불러내는 계시적 기쁨과 경이! 가스통 바슐라르의 ‘초의 불꽃’을 처음 읽었을 때,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를 읽었을 때,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를 읽었을 때, 김우창의 ‘궁핍한 시대의 시인’을 읽었을 때, 그랬다.

이 책은 건축에 관한 책이 아니다. 건축의 본질과 기능과 미래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그것을 말했다면 우리가 건축을 사랑해야 할 까닭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지오 폰티는 건축이 우리를 불행에서 어떻게 건져내는지, 의기소침하고 비탄에 빠진 사람들에게 어떻게 위로가 되는지, 조화로운 삶에 그것이 어떻게 헌신하는지 차근차근 말한다. 왜 우리는 건축을 사랑해야 하는가?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건축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열거한다. 건축은 광기와 야만을 잠재우고 기쁨과 행복에 대해 눈뜨게 하는 문명생활의 기초적 토대다. 지오 폰티는 건축이 시나 그림이나 음악과 마찬가지로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완성을 향해 헌신한다고 말한다.

훌륭한 건축가는 공간에 필요한 빛과 그늘의 양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측하고 그것을 조절한다. 어떤 공간에 대한 강렬한 인상은 그 외관의 웅장함보다도 거기 깃든 빛과 그늘의 조화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빛은 활력을 북돋우고 외면적 삶을 풍요하게 이끄는 데 필요하고, 그늘은 내면적 삶과 휴식의 필요에 응답한다. 빛과 그늘은 수직적 위계질서에 속해 있지 않다. 그것들은 동일한 위계에 있으며, 각각의 기능으로 공간에 질서와 규율의 윤리적 양감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 훌륭한 건축가는 빛이 필요한 곳에 빛이 들어오는 통로를 열어주고, 그늘이 필요한 곳에 그늘이 깃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다. 빛과 그늘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좋은 집은 흠 많은 삶이 일으키는 불행과 혼란을 종식시키고 고요한 휴식과 꿈으로 초대한다. 그러니 상상력이 풍부한 건축가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그 상상력 때문에 공학의 실천자라기보다 차라리 우주를 직관하는 시인이나 음악가의 부류에 더 가깝다. 건축가는 돌과 나무와 유리라는 질료들을 상상력으로 버무리고 숙성시켜 건축이라는 교향곡을 만드는 예술가다. 건축은 재료들의 관현악적 편성인 것이다.

건축가는 집과 학교, 극장과 스타디움, 음악당과 도서관, 공항과 정거장, 교도소와 교회, 병원과 양로원 들을 짓는다. 모든 건축은 어떤 형태로든지 우리의 필요와 행복을 향한 열망에 대한 응답이다. 건축가는 의사나 동화작가나 빵 굽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어느 사회나 꼭 필요한 직업이며,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하는 숭고한 사람들이다. 좋은 집은 건강을 지키고 인격을 고양시킬 뿐 아니라, “인간의 정신과 생활, 인간의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숙명의 영속성”을 노래한다. 지오 폰티가 “건축은 수정이다”라고 할 때 나는 그 말의 울림이 불러오는 사유에 오래 머문다. 건축은 단순히 소재에 대해 질서를 부여하고 배열하며 공간을 창조하는 것 이상이다. 건축은 꿈과 행복과 정화를 위한 그 자체로 완벽한 구조를 가진 수정과 같이 완전하고 통일된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 수정에는 불가피하게 인간의 꿈과 욕망, 환상과 생활의 불일치, 혹은 부조화가 하나의 무늬로 새겨진다. 사실을 말하자면 건축은 제약에 의해 규정되는 그 무엇이다. 건축가의 진정한 상상력은 재료의 제약, 비용의 제약, 물리적인 법칙의 제약 속에서 꽃피어난다. 좋은 건축가는 그 제약들에 대한 솔직한 숙고를 드러낸다. 그들은 안다. 건축을 완성하는 것은 신이라는 사실을. 이 세상의 모든 건축물 내부에 드리운 침묵과 빛은 그 건축에 대한 신의 최종적 인증의 표현이다.

지오 폰티에 따르면 “분수는 하나의 목소리”고, “계단은 소용돌이”며, “발코니는 한 척의 범선”이고, “문은 한 장의 초대장”이다. 좋은 건축은 사람의 필요와 욕망에 대한 응답이며, 그것을 넘어서서 미적 이상향을 향한 오랜 꿈의 실현이다. 그때 건축은 취향과 실용적인 기능의 영역이 아니라 숭고의 관점에서 다루어야 할 철학적 대상으로 바뀐다. 지오 폰티는 건축 그 자체, 좋은 건축에서 흘러나오는 시와 웅장하게 울려퍼지는 교향곡에 귀 기울인다. 그것들이 들려주는 그 모든 것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되돌려준다. 이 책은 건축이 행복을 향한 인간의 오래된 열망의 결정체, 미적 탐닉의 역사, 잔혹한 결핍임을 증언한다.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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