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력 풍요 속에 전문인력 빈곤

2008.04.08

인도

대졸자 숙련도 떨어지고 우수인재는 해외 진출… 기술·관리직 이직 잦아 임금상승 가속화

<경향신문>

<경향신문>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놀랍게도 농촌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걸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농촌에서 젊은 사람을 보기가 힘들지만, 인도에서는 어딜 가나 사람이 북적인다. 농업에 종사하는 농촌 지역 사람들의 소득이 그리 많지 않을 텐데 어떻게 자녀를 교육시키고, 문화생활을 영위하며, 노후를 대비할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이렇게 많은 인구를 거느린 인도가 인력난을 겪는다니 아이러니하다.

인도 의회에 보고된 공식 실업률은 2004회계연도 기준으로 8.35%다. 1993년에는 7.3%였다고 하는데 경제가 발전했음에도 실업률은 더 늘어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2002년 이후 상황만 보아도 인도 경제는 연평균 8% 이상 고도성장을 해왔지만 고용은 연평균 1.67%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경제 성장의 혜택이 고용 증대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산업별 고용 현황을 보아도 이런 불일치가 있다. 조사 기관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농업 인구가 전체의 60%, 제조건설업이 16%, 서비스업이 10%, 기타(주로 잡일 종사자)가 12%를 차지한다. 고용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60%인 데 비해 GDP(국내 총생산)에서 농림어업 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17.5%에 불과하다.

제도권 밖 비공식 부문 근로자 소외
고성장을 하고 있는데도 왜 고용이 늘지 않는 것일까? 그 원인을 두고 전문가마다 다소 견해가 다르지만 노동집약적 제조업, 특히 경공업의 성장이 더디기 때문이라는 데는 견해를 같이한다.

경공업의 성장이 더딘 가장 큰 이유는 노동유연성이 낮은 고용제도 때문이다. 인도에서 일정 규모 이상인 기업은 공식 부문이라고 분류되는데, 공식 부문에서 직원을 해고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사람을 많이 고용하는 경공업 분야는 시황에 따라 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없으므로 가격 경쟁에서 매우 불리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중국의 3분의 1에 불과한 인도가 중국산 경공업 제품에 가격 경쟁력 면에서 밀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식 부문 기업들은 되도록 사람을 적게 쓰려고 한다. 그리고 이는 다시 고용의 질을 떨어뜨려 영세업자에 해당하는 비공식 부문의 성장을 가져온다. 표에서 보듯이 10년간 영세업자들이 운영하는 비공식 부문은 연평균 2.68% 증가했으나, 공식 부문은 0.38% 증가하는 데 그쳤다. 공식 부문의 비중도 1991년 8.5%에서 2001년 6.9%로 오히려 감소했다. 근로자들 가운데 무려 93%가 영세업자에 고용된 것이다. 또한 공식 부문 근로자의 40%는 공무원 및 정부 산하 기관과 같은 공공 부문 종사자들이다. 공식 부문의 근로자들이 임금 인상, 사회복리후생의 혜택을 받는 사이 비공식 부문은 제도권 밖에서 소외되고 있고 나날이 그 규모가 커지고 있다.

[친디아 리포트]노동력 풍요 속에 전문인력 빈곤

국가 전체로 보면 실업률이 높고 인구가 많아 노동력이 풍부한 편이나 산업 현장을 방문해보면 정작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자격을 갖춘 쓸 만한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잘 교육받고 경험을 갖춘 기술인력, 전문인력, 관리인력의 수가 매우 부족한 편이다.

인력 수요와 공급에 대해서는 정부의 공식 통계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여러 연구기관의 조사 결과를 종합해보는 수밖에 없다. 인도상공회의소연합(FICCI, Federation of Indian Chambers of Commerce and Industry)은 2007년 9월 발표한 자료에서 바이오, 식가공업, 의료, 금융 업종의 인력 부족 상황이 특히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바이오산업 분야에서는 박사급 인력이 80%나 부족하며, 식가공업계에서는 전기기술자, 농산물 연구자, 냉장전문가들이 부족하고 특히 자격증 소지자들의 부족 상태가 심각하다고 한다. 의료 분야에서도 마취전문의, 산부인과의사 및 외과의사가 부족하며, 은행 및 금융 분야에서는 위험관리자 90%, 금융전산전문가 65%, 재무분석가 80%, 자산관리사가 80%나 부족하다고 한다.

한편 2006년에 열린 14차 인도산업연맹(CII, The Confederation of Indian Industry) 회의에서는 현재 인도 공식 부문은 850여만 명의 인력을 고용하고 있으나 그 중 30% 정도가 5년 내 은퇴할 것으로 보여 앞으로 인도의 인력 부족 상태가 심화할 것이라는 예견이 나왔다. 특히 IT·소매업·은행·제조업·유통업·건설 및 고급 관리자 부문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 분야 인력 부족이 더욱 심각한 것은 적정 자격을 갖춘 인력이 드물고 직업 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이외에 인력 이동이 빈번하다는 점도 꼽힌다. IT/BPO(Business Process Outsourcing) 산업만 하더라도 현재 약 120만 명이 부족한 상태이나 2010년이면 그 수는 230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2008년 임금상승률 세계 최고 예상
직급별로도 수급 공급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신입사원이나 초급 관리자는 인도 교육기관의 노력으로 향후 공급 부족이 완화할 것으로 보이나, 전문직이나 관리직 인력 양성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공급 부족을 단기간에 해소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처럼 산업인력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학교에서 배출되는 인력은 많으나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상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도에는 1100여 만 명의 대학생이 있고, 그중 약 200만 명이 매년 대학을 졸업한다. 하지만 일부 유수 교육기관을 제외하면 산업계가 요구하는 수준에 못 미친다. 또 다른 이유로 영어 구사 능력과 우수한 전공 실력을 갖춘 인력이 외국으로 진출하면서 국내 인력시장의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쓸 만한 인력이 귀하다 보니 인도의 임금 상승은 매우 가파르다. 단 이때 임금은 비공식 부문이 아닌 공식 부문 관리자, 기술자, 전문직의 임금을 말한다. 글로벌 인적자원 전문 컨설팅기관인 이씨에이 인터내셔널(ECA International)이 다국적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8년 인도의 임금상승률은 14%로 세계 최고 수준이 될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기관인 휴잇 어소시엇츠(Hewitt Associates)가 아시아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2008년 인도의 임금상승률이 15.2%에 달해, 경쟁국인 중국, 베트남을 제치고 아시아 최고 수준이 될 것으로 나타났다.

[친디아 리포트]노동력 풍요 속에 전문인력 빈곤

산업별 임금인상률을 살펴보면 최근의 부동산 붐을 타고 부동산개발업이 25%로 최고일 것으로 보이며, 에너지 분야 또한 높은 상승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다만 IT·통신업종은 한때 전체 임금 인상을 주도했으나 최근에는 다른 산업의 약진으로 기세가 다소 누그러진 듯하다.

왜 이렇게 인도의 임금이 가파르게 오를까? 그 배경에는 높은 이직률이 존재한다. 휴잇 어소시엇츠의 조사에 따르면 보험산업의 이직률은 연간 35.2%에 달하며, IT서비스는 28.9%, 요식숙박업은 27.1%에 이른다. 그리고 인도인들은 단기 이익에 쉽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고, 보통 이직 시에는 20% 이상의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 인력 풀은 한정되어 있으니 이들을 붙잡아두는 쪽에서나 스카우트하는 쪽에서나 높은 임금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이직이 많아질수록 임금 인상은 가속화하는 측면이 있다.

임금 수준을 살펴봐도 인도의 임금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산업 평균적으로 생산직을 제외한 일반사무직의 경우 경력 3년 이하 직원은 연 급여 수준이 6200달러에 달하며, 대리급이라 할 수 있는 경력 4~7년 차 직원의 경우 1만3000달러, 과장급인 경력 8~12년 차 직원은 약 2만7000달러에 이른다. 인도의 인당 국민소득이 800달러 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식 부문에 속하는 기업의 직원들은 상당한 고소득자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전문·숙련 인력 부족이 심각한 인도에서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사실 인재 부족을 해결하는 데 꼭 이것이다 하는 정답은 없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쓸 만한’ 인력은 항상 부족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잘 교육받고, 경험 많고 숙련된 인력이라면 수요가 많아지므로 당연히 몸값이 높을 수밖에 없다.

다국적기업 현지 직원 교육 강화
과거엔 낮은 인건비 수준에서는 조금 더 높은 임금을 제시하면서 인재를 확보하는 일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IT 인력을 중심으로 인건비가 오를 대로 올라, 임금 인상으로 해결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답은 비싼 경력직에 미련을 두지 않고 신입 직원을 쓸 만한 인재로 키우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인도에는 매년 200여 만 명의 대졸자가 사회로 나온다고 했는데, 이들 중 즉시 현장에 투입이 가능한 유수 대학 졸업자들을 제외하고 나면 나머지는 기업에서 일정 부분 교육시켜야 현장에 투입할 수 있다. 즉 이들 중에서 옥석을 가려 장래성이 있는 인재를 고르고, 체계적인 훈련을 거쳐 인재로 키우자는 것이다. 학력과 경력이 좋으면 기회가 있을 때 다른 기업으로 이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직원을 인재로 육성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의견이다. 인도의 현실 속에서 이미 발 빠른 일부 다국적기업들은 회사 내에 교육센터를 두고 현지 직원들에 대한 교육에 크게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키운 인재를 조직 내에 잘 붙들어둘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키워놓은 인재의 가치가 외부에 알려질 정도가 되면 어김없이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쟁력 있는 보상시스템을 구축하고, 장기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직보다는 기존 조직 내에서 경력을 쌓는 것이 본인에게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을 주지시키는 것이 인재를 계속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대우<포스코경영연구소 연구위원> Ldw@pos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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