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통의 ‘위기’

2007.02.13

‘한 사람이 그리워지면서부터, 난/날마다 가슴 살짝 풀어헤치고/사연이 당도하길 기다린다/이미 다 써버린 시간은/종이 한 장의 가벼움으로 뜯겨나가고/(중략)/그대 눈빛으로 건너오는/길목을 내기 위해/언어에다 내 마음 덧칠하고 있다’ (향일화·우체통)

[우정이야기]우체통의 ‘위기’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우체통은 이미 현실이 아니다. 시(詩)의 세계, 영화의 영역이다. 동화 같은 사랑이야기가 펼쳐지는 장면의 배경 소품이다. 바라보면서 정감 어린 시어(詩語)를 떠올리고, 상상의 나래를 펴는 회상의 물체다. 꿈이고 행복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우체통은 전혀 다르다. 시나 영화 속의 아름다움은 온데간데없고, 찾는 이 없어 버려질 운명에 처하기 십상이다. 몰상식한 시민들 때문에 종종 거리의 쓰레기통으로 천대받기도 한다. 우체통을 열면 편지는 들어 있지 않고 경찰서에 가야 할 지갑이나 휴대폰 같은 습득물, 담배꽁초, 먹다 버린 빵봉지까지 갖가지 쓰레기들이 튀어나오기 일쑤다.

우체통은 무조건 하루 한 번 개함(開函)하도록 돼 있다. 편지는 ‘전국 어디서나 당일 수거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한 통의 편지도 들어 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직원 한 명이 담당하는 우체통은 하루 평균 20여 개. 매일 허탕치다 보면 “저 우체통에는 오늘도 보나마나 비어 있겠지” 하며 건너뛰는 직원이 나오지 않을까 해서 예방하는 장치까지 마련해놓았다. 우체통 속 바코드가 그것. 수거 직원이 매일 이 바코드와 접촉한 기록을 우체국에 제시하도록 시스템화했다. 하루종일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우체통이어도 수거 직원만큼은 반드시 열어보게 돼 있는 것이다. 대당 설치비 5만 원에 연간 유지·보수비 7510원이라는 직접비용 외에 우체통을 관리하는 비용은 결코 만만찮은 셈이다.

효용은 적고 비용은 많이 든다면 갈수록 줄어드는 게 세상 이치다. 우체통을 설치하고 철거하는 것은 지역의 우체국장 재량이나, 대체로 하루 평균 3통 미만인 날이 3개월 지속될 때는 지역 주민의 의견을 들어 철거하는 게 보통이다. 이렇게 해서 없어지는 게 매년 1000~3000여 개다. 지난해 서울에서만 678개, 전국적으로 3000여 개가 철거됐다. 하루 3통 미만인 우체통 수는 사실 더 많지만, 농촌 주민들이 “우리에게 우체통은 외부와 연결되는 유일한 창”이라고 하면 철거하기 어렵다고 우정사업본부 우편사업단의 김동룡 사무관은 전한다. 2006년 전국의 우체통은 2만7000여 개. 4년 전인 2002년에 비해 1만 개 가까이 줄었고, 가장 많던 1993년 5만7000여 개와 비교하면 절반 이상이 없어졌다. 13년 전에는 인구 764명당 1개꼴이었는 데, 지금은 1758명당 1개꼴로 준 것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이종탁〉



[우표이야기] 괴테에게 퇴짜 맞은 슈베르트

[우정이야기]우체통의 ‘위기’

초·중학교 시절 내게 슈베르트는 ‘가곡의 왕’이었다. 그러나 고교시절에 관람했던 ‘미완성 교양곡’이라는 영화에 영향을 받아 베토벤보다 더욱 위대한 음악가로 이해됐다. 지금은 그의 현악 4중주곡 제14번에 나오는 ‘죽음과 소녀’를 즐겨 듣는다. 나로 하여금 슈베르트를 반려자나 다름없게 만든 곡이다.

슈베르트 역시 천재였기에 31세로 요절하고 말았다. 독일 낭만주의 가곡을 완성시켜놓은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음악가답게 그는 600여곡의 가곡을 남겼다.

오늘날에도 애창되고 있는 ‘마왕’ ‘들장미’ ‘송어’(숭어는 오류임) ‘아베마리아’와 ‘겨울나그네’의 ‘보리수’는 정겹기 그지없다.

이 위대한 슈베르트가 생전에 시성 괴테의 시에다 몇 편의 가곡을 작곡하여 보냈는데 괴테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 불운을 겪기도 했다. 모르긴 해도 괴테는 악보를 읽을 줄 모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멕시코 항공우표 속에는 ‘죽음과 소녀’의 장면과 표제가 보인다. 그의 탄생 150주년이던 1978년에 발행되었다. ‘슬픔은 이해를 돕고, 정신을 강하게 한다’라는 명구도 남겼다.

<여해룡 시인·칼럼니스트 yhur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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