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의 위기

2006.05.02

대중음악을 단순히 가요에만 국한하지 않고, 오늘날 우리가 듣는 우리 시대의 모든 음악이라 해도 우울한 기분은 여전하다. 대중음악의 우울함.

한때 문단에선 시(詩)의 위기가 대두되고, 시의 시대가 죽었다는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가요의 위기, 대중음악의 위기라는 말은 많아도 그것으로 논쟁을 한다거나 분석한다거나 하는 노력은 사실 찾아보기 어렵다.

음악의 위기는 사회의 위기다. 비록 오늘날의 음악이 단순한 상품처럼 생산되고, 소비되고, 유통되는 것이 현실이다. 요즘 음악을 들어봐야 정서적으로 더욱 피로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음악은 우리 시대의 감성을 깨우고 위로가 되어야 한다. 감성이 없는 사회, 위로가 없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사실. 이 명명백백한 사실이 바로 대중음악이 여전히, 앞으로도 불리고, 감상되어야 하는 이유라는 말이다. 그런 존재의 이유 때문이라도 이 위기의 시대에 대중음악은, 만들어지는 단계에서부터 자기반성을 할 필요가 있다.

모처에서 우연히 임동창 선생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요즘 가요를 부르는 가수들에게는 미국(서양)적인 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 그것을 따라 하려 목소리에 잔뜩 ‘부황’이 들었고, 클래식, 성악가들에게는 예전부터 고질적인 ‘후까시’가 배어 있고, 국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왠지 모를 ‘궁상’이 보인다”는 말씀으로 오늘 우리 대중음악의 병폐를 시원하고 아프게 지적했다.

대중음악에서 창작자들과 연주자들의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그러한 음악들이 ‘나’ 같은 기획자를 만나면 트렌드가 되고 정서가 되어 대중들의 귀를 버리고 감성을 좀먹게 된다.

어쩔 수 없다. 만들었으면 무조건 많이 팔아야 하는 시대다. 음악을 상품으로 기획하고 유통하는, 문화가 산업이 된 오늘날의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아니 바뀔 수 없는 한, 창작자들의 일차적인 의무와 책임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인 것이다.

팔아야 할 음악을 듣고 있는 이 밤. 서늘한 예감에 몸을 떠는 이유는 ‘부황끼’ 빼고, ‘후까시’ 접고, ‘궁상끼’ 버리지 않았을 때, 오늘 대중음악의 위기가 그저 위기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공연기획자 탁현민> tak05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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