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 두 번 죽이는 ‘엽기적 거래’

2006.03.14

미국, 시신장기 불법매매 조직 적발… 유족 몰래 훼손 의료용·실험용 팔아

장기매매 알선조직에 의해 뼈가 적출된 유명 방송인 앨리스테어 쿠크.

장기매매 알선조직에 의해 뼈가 적출된 유명 방송인 앨리스테어 쿠크.

앨리스테어 쿠크는 재작년에 타계한 영국 BBC 방송기자다. 미국에 거주하면서 인기 TV 프로그램 ‘명작극장’을 진행하며 유명세를 얻었다. 최근 뉴욕의 한 장기매매 알선 범죄조직이 장례식 하루 전날 영안실에 안치된 그의 시신에서 뼈만 훔쳐내 팔아넘긴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가족들은 경악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미국 검찰의 태도다. 이런 엽기적인 범죄에도 전혀 놀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유족들 몰래 해부되는 시신은 쿠크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의 범죄조직은 뉴욕의 장의사와 뉴저지 소재의 장기조직 가공처리회사와 결탁, 수백 명의 사체에서 골수·혈관·피부·심장판막 등을 강탈해 장기이식 병원에 팔아왔다. 2년 전 UCLA 의과대학 직원들이 뇌·동체·팔·다리 등을 법적으로 금지된 의학실험용으로 매매한 사실이 발각되기도 했다. 메인주에서는 공무원인 검시관이 생명공학 연구소에 사망자의 뇌를 판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을 조사 중이다.

이런 불법 장기매매사건이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키자 수사에 나섰던 뉴욕 브루클린 지방검사는 쿠크의 뼈가 7000달러에 중개인을 거쳐 병원에 장기를 공급하는 업체들에 팔린 사실을 밝혀냈다. 이 사실을 전혀 몰랐던 쿠크의 가족들은 뼈가 적출된 시체를 화장, 그의 유언대로 센터럴파크에 뿌렸다.

검찰 수사에 의하면 95세로 생을 마감한 쿠크는 골수암을 앓았는데, 그의 뼈를 공급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장기이식 전문 병원 기록은 85세의 심장마비로 급사한 자의 것이며 암세포의 침투가 없는 것으로 조작되어 있었다. 쿠크의 딸 수잔 키트리지는 “아버지의 시신이 훼손돼서 너무 슬프다”며 “하지만 병든 것인지도 모른 채 골수를 이식받았을 환자와 그 가족을 생각하면 더 소름이 끼친다”라고 말했다.

사건이 표면화되자 미 식품의약국(FDA)은 암세포가 전이되거나 고령자의 장기조직은 이식수술에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쿠크의 뼈는 시멘트처럼 갈아서 정형외과술과 치과용 충전물로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서는 신체 부위에 대한 수요가 순수 연구에서부터 피부·골수이식, 성형수술, 음경확대술을 망라해서 광범위하다. 장기 이식기술과 이식 거부반응을 막는 약의 발달로 장기이식 희망자의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미국 보건장관 자문위에 따르면 약 7만9000명의 환자가 장기이식 대기자이며 연간 40만 건의 이식수술에 인체의 뼈가 사용되고 있다.

이식 장기 절대적 부족 때문

[월드리포트]사망자 두 번 죽이는 ‘엽기적 거래’

법률적으로 장기매매는 사망 전 장기 기증서약에 동의했을 때만 가능하다. 미국도 한국처럼 금전이나 재산상 이익을 목적으로 한 장기매매는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를 이식받을 사람에 비해 장기 기증자가 절대 부족한 현실이다.
뉴욕의 장기매매 브로커들은 가난한 러시아 이민자를 대상으로 장기 공급을 하고 있다. 어떤 장의사는 무료로 장례식을 해주는 조건으로 연구용 시체를 제공받는다고 한다. 기증자에게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바람에 장기공급이 심각하게 부족한 현상을 두고 조지 메이슨 대학의 경제학자 알렉스 태버록은 “기증자의 이타정신에 의존하기보다는 사망자의 장기를 보상하는 등 장기매매를 합법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 유진(미국 오리건주)/조민경 통신원 mcg99@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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