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구매촉진법’ 통과로 참여기업·제품군 급증
“친환경이 아니면 기업도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
2005년 12월 23일 오전 10시.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에 위치한 사무용가구 제조업체 ‘우드메탈’ 직원들은 제품 납기를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다. 환경마크를 획득한 사무기기를 구입하려는 정부기관의 주문이 연말을 맞아 쏟아졌기 때문이다. 환경마크란 친환경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우드메탈은 지난해 8월 환경마크를 인정받았다.
어떻게 보면 미래를 예측한 선택이었다. 우드메탈의 김춘수 대표(47)는 2003년부터 친환경 사무용가구 개발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미 정부는 친환경상품 관련법을 만들기 위해 선진국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자료를 모으는 중이었고, 소비자들도 새집증후군 등으로 친환경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상황이었다. 김 사장은 집보다는 사무실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사무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 유해물질을 내뿜는 가구가 있는 사무실에서 하루의 절반가량을 보낸다면 ‘새가구증후군’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봤다.
“원자재 상인들 친환경개념 없어 난관”
2004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돌입했다. 그러나 난관에 봉착했다. 우드메탈에 원자재를 대주는 중간상인은 친환경상품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 친환경소재를 생산하는 소재업체를 직접 찾아 나섰다. 당시만 해도 친환경 사무용가구를 만드는 곳이 별로 없어 소재 생산도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폐목을 재활용한 나무판, 유해물질 함량이 적은 접착제와 도료 등을 수소문 끝에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업체는 친환경기준도 제대로 몰라 우드메탈에서 기준을 제시했다.
사무용가구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칸막이가 문제였다. 칸막이 표면에 사용하는 천은 폐PET병을 녹여 만든 실로 된 것이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실을 생산하는 업체가 없었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찾아낸 것이 쓰고 남은 실을 재활용해 새로운 실을 만들어내는 업체였다. 이곳에서 생산한 직물을 칸막이에 씌워 친환경 상품 요건을 맞출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04년 5월 제품이 출시됐다.
일반 시장을 상대로 한 것이었으나, 시장의 반응은 좋지 못했다. 저가형 중국산 제품이 가구시장을 점령한 상황에 일반제품보다 10~15% 비싼 친환경상품은 처음부터 가격경쟁력이 모자랐던 셈이다. 이에 우드메탈은 눈여겨보던 정부 조달시장으로 진출했다. 2004년 초에는 연말에 ‘정부기관은 우선적으로 친환경제품을 구매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명시된 친환경상품 구매촉진법이 통과할 예정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우드메탈은 우선 환경마크를 신청했다. 우드메탈은 두 가지에 유의했다. 우선은 자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나무를 최대한 재활용한다는 것. 기준은 70% 이상이지만 우드메탈은 90% 이상 재활용 나무를 썼다. 폐기대상이던 목재를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그만큼 환경보호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우드메탈은 가구를 사용할 때나 사용하고 난 뒤 폐기할 때를 중요하게 봤다. 최대한 유해물질 사용을 자제했다. 우선 가구 표면에 비닐 대신에 종이를 사용했다. 태울 때 유독가스가 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희석제로 희석한 페인트를 뿌리는 대신, 분채를 사용해 공기오염을 최소화했다. 폐기시에도 유해물질이 덜 나온다. 덕택에 기준치보다 훨씬 낮은 검사결과를 획득했다. 그래서인지 공장 옆에 위치한 전시장에서는 새 가구에서 날 법한 쏘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자원의 재활용과 유해물질 함량 최소화가 인정돼 2004년 8월 환경마크를 획득했다. 현재 우드메탈이 생산하는 친환경제품은 총 134품목이다.
2004년 10월에는 조달청에 조달등록을 했다. 그리고 친환경성이 널리 알려져 우드메탈의 매출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2003년 24억 여 원이던 매출액은 2005년 55억 여 원이 예상되고 있다. 이중 90% 정도가 정부 구매분이다. 정부의 방침을 시의적절하게 이용한 셈이다.
친환경 개념 컴퓨터에 도입한 넥스트원
올해 3월 컴퓨터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환경마크를 획득한 ‘넥스트원’도 정부의 정책을 기업 발전의 계기로 삼고 있다. 넥스트원이 개발한 컴퓨터는 저절전, 저소음, 환경적 설계를 자랑하는 일체형 컴퓨터다. 3년 전 처음으로 일체형 컴퓨터를 내놓은 넥스트원은 자금력이 약하다는 중소기업의 약점을 이기지 못하고 시장의 쓰라림을 맛봐야만 했다. 랩톱처럼 적은 공간을 차지하며 데스크톱과 같은 안정성을 가진 일체형 컴퓨터를 개발하긴 했지만, 메인보드 등 직접 개발부품을 사용한 탓에 변화가 빠른 컴퓨터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오랜 시간을 들여 부품을 개발, 제품을 내놓았지만 시장에 내놓자마자 이미 구사양이 되어버린 것.
넥스트원의 정연범 대표(44)는 2004년에 참가한 한 세미나에서 힌트를 얻었다. 친환경성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세미나였다. 정 대표는 이를 컴퓨터에도 도입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정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친환경적 설계였다. 공간을 적게 차지하면서 뛰어난 안정성을 보이는 일체형 컴퓨터의 가장 큰 약점은 업그레이드와 A/S였다. 각 회사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부품을 사용한 까닭에 부품을 구하기가 어려워서다. 하지만 소비자는 될 수 있으면 최신사양을 유지하기를 원한다. 이런 소비자를 배려해 업그레이드를 쉽게 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즉 용산 등 전자상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적인 부품을 사용해 컴퓨터를 만들었다. 원하는 부품을 사서 갈아 끼우기만 하면 된다. 결국 한대의 컴퓨터를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셈이다.
일반 부품을 이용해 컴퓨터를 만들다보니 시행착오가 많았다. 일체형 컴퓨터에는 내부공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동안에는 개발부품을 사용한 까닭에 부품 배치가 쉬웠다. 하지만 일반부품을 사용하니 부품 배치가 쉽지 않았다. 열이 발생하는 CPU를 잘못 배치해 부품이 탄 적도 있었다. 정 대표는 이런 친환경적 설계를 더욱 향상시킬 생각이다. 볼트를 없애 간단히 본체를 분리, 업그레이드 등의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USB포트를 모니터 윗면에 설치하는 등 사용자의 편의성도 최대로 고려한다는 계획이다.
정 대표는 소음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컴퓨터에는 열을 식히기 위해 내부에 ‘팬‘이 달려 있다. CPU에 부하가 걸려 열이 발생하면 이를 식히기 위해 팬이 돌고, 결국 소음이 발생한다. 데스크톱이라면 본체를 보통 책상 아래에 두기 때문에 소음을 무시할 수도 있지만 일체형은 그럴 수 없었다. 머리 앞에서 소음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에 정 대표와 김경원 기술본부 부장은 냉매를 사용한 ‘히팅파이프’를 도입해 문제를 해결했다. 일단 히팅파이프를 통해 CPU를 식혀 팬의 작동을 최대한 억제했다. 또한 CPU에 온도센서를 달아 온도에 따라 팬이 작동하도록 했다. 덕택에 기준치 절반 이하의 소음을 실현할 수 있었다.
친환경에서 중요한 것은 재활용이다. 하지만 컴퓨터에서 재활용을 할 수 있는 여지는 많지 않다. 기껏해야 본체와 모니터를 감싼 케이스 정도. 넥스트원은 이를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으로 처리했다. 이런 작업으로 가격이 높아지긴 했지만, 일정부분은 회사에서 부담하고 적은 부분을 가격에 반영했다. 넥스트원은 올해 3월 컴퓨터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환경마크를 획득했고, 10월에 조달시장에 진출한 이래, 청와대 경호실과 수도방위 사령부, 육군본부 등 많은 기관에 친환경 컴퓨터를 납품했다. 공장을 찾은 12월 22일에도 넥스트원 직원들은 합동참모본부에 납품할 친환경 컴퓨터를 제작하느라 분주했다.
넥스트원은 일단 조달시장에 주력한다. 최대한 가격을 낮췄다고 하지만 여전히 일반 제품에 비해 8% 정도 비쌀 뿐 아니라 중소기업 제품이라는 약점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조달시장에서 신뢰를 얻은 뒤 다른 쪽에 진출한다는 생각이다. 수출시장도 알아보고 있다. 환경마크를 획득한 친환경적 일체형 컴퓨터라 영국 등 외국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해외에 수출할 때에는 LCD모니터와 케이스만 수출하고, 나머지 부품은 전부 현지에서 조달해서 조립하는 형태로 진행할 계획. 국내 일반 시장에는 홈쇼핑이나 인터넷 판매만 생각하고 있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 자리에서 제품을 만들어 당일 발송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소비자에게 최신 사양의 제품을 판매할 수 있고 재고가 쌓이지 않아 회사에도 좋기 때문이다.
30개 국내대표기업 녹색구매 협약 체결
정부의 정책으로 국내의 많은 업체가 친환경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2004년 12월 31일 국회를 통과하고 올해 7월 1일부터 시작된 친환경상품구매촉진 법률이 국내 업체의 인식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2002년에 227개 업체 84개 제품군, 439개에 불과했던 친환경상품은 친환경상품 판매촉진과 관련된 정부의 정책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늘어났고, 2005년 12월 현재 677개 업체 107개 제품군, 2721개 제품으로 크게 늘었다.
이런 움직임에는 민간도 동참했다. 30개 국내대표기업은 2005년 9월 친환경상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한다는 녹색구매 협약을 체결했다. 기업은 통상 매출액의 3%를 소모품류 등에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0개 기업의 매출액은 2004년 기준으로 266조 원이다. 이중 1%만 친환경상품 신규구매로 전환해도 약 3조 원 규모의 엄청난 시장이 만들어진다. 이는 2010년 정부 조달시장에서 친환경상품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1조2000억 원의 배가 넘는 규모다.
친환경상품에 눈을 돌리는 기업은 더 많아질 전망이다. 해외시장 때문이다. 2007년부터 EU는 친환경적인 제품만 수입할 예정이다. 사실 환경부가 친환경상품을 의무 구매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한 것은 해외 각국의 친환경 상품정책에 대비한다는 의미도 있다. 결국 친환경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는 셈이다. 우드메탈의 김춘수 대표는 “완성품 업체가 친환경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협력사 제품의 친환경화가 필수적이며 이미 많은 협력사가 친환경화를 시도하고 있다”며 “2006년에는 이런 기업이 더욱 많아지는 친환경상품의 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재용 기자 jj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