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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드림 ‘사람사는 세상’

2009.07.21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그는 약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했다. 그러기 위해 국가의 의무에 대해 고민했다. 그는 유고에서 “어느 나라가 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일까?”라고 의문부호를 달았다. 노 전 대통령이 꿈꾸던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2005년 5월 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린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경향신문>

2005년 5월 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린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경향신문>

‘사람사는 세상’.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평소에 꿈꾼 세상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유고를 통해 제레미 리프킨이 쓴 <유러피언 드림>을 언급했다. 여기에서 ‘국가의 역할’을 이야기했다. 노 전 대통령은 유고에서 이를 ‘먹고 사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는 쉽게 풀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국민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노 전 대통령이 끝내 이루지 못한 미완의 저작은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의 표현에 따르면 ‘한국판 유러피언 드림’이다. 완성된 책에는 노 전 대통령이 꿈꾸는 나라의 모습이 실려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그가 꿈꾸던 나라, 한국판 유러피언 드림은 ‘사람 사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삶을 즐기는 ‘유러피언 드림’ 선택
흔히 사람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다. ‘무한 경쟁에서 승리한다’ ‘명예와 돈을 갖는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앞으로도 돈을 더 많이 벌 기회를 갖는다’. 할리우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꿈이다. 이에 반해 이런 꿈도 있다. ‘경쟁이 꼭 필요하지 않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해도 만족할 수 있다’ ‘힘없는 약자를 편하게 해주는 정부가 있다’. 아주 생소한 듯 해 보이지만 유럽 국가에서 실현해 나가고 있는 ‘유러피언 드림’이다. 한림대 국제대학원 최태욱 교수는 아메리칸 드림의 특징을 “개인의 자유, 부의 축적, 경제적 성장, 무한경쟁”이라고 요약했다. 이 꿈은 지난해 글로벌 경제위기로 산산조각이 나다시피 했다. 최 교수는 “아메리칸 드림에 반해 유러피언 드림은 공동체 내의 관계와 문화적 다양성, 삶의 질, 지속가능한 개발 등을 중시한다”고 특징화했다. 최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유러피언 드림은 ‘약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꿈’이다.

최 교수는 미국식, 유럽식 국가 모델의 갈래를 각각 정치와 경제 영역으로 나눠 특징화했다. 정치영역에서 미국식 민주주의 모델은 다수제 민주주의다. 이에 반해 유럽식 민주주의 모델은 합의제 민주주의다. 미국식 민주주의는 다수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책임정치를 하는 데 반해 유럽식 민주주의는 비례대표 선거제가 활성화해 연립정당이 합의를 통해 정국을 이끌어 나가는 구조다. 시장경제에 있어서 미국식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이고 유럽식 자본주의는 조정시장경제다. 유럽식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분배와 복지를 중시한다.

아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언 드림 중 노 전 대통령은 유러피언 드림을 선택했다.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보수는 무한 경쟁을 주장하지만 무한 경쟁으로 갔을 때는 민주주의도 휘둘릴 뿐더러 시장 만능을 내세우면서 경제도 휘둘리게 된다는 것이 노 전 대통령의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노 전 대통령이 주목한 것은 국가의 역할이다. 유러피언 드림을 이루기 위해 국가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다.

노 전 대통령은 유고에서 “어느 나라가 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일까?” “그것도 힘없는 보통사람들이 살기 좋은 나라는 어디일까?”라고 의문부호를 달았다. 그의 ‘한국판 유러피언 드림’ 즉 ‘코리언 드림’에는 그가 꿈꾼 나라의 구체적인 모습이 실렸을 것이다. 윤태영 전 대변인은 전화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이 만약 이 책을 완성했다면 아마 시민들이 쉽게 접하고 알기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고의 완성작업은 한국미래발전연구원(원장 김우식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서 진행하고 있다. 연구원 기획실장인 김성환 전 청와대 정책조정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이 책은 혼자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서 지성인이나 네티즌이 함께 쓰는 인터넷 협업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김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은 가치 지향적이지만 실증적이기도 했다”면서 “유러피언 드림에 나타난 철학적·실증적 분석을 한국판 유러피언 드림에 그대로 적용하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은 유러피언 드림에서 코리언 드림의 싹을 보았다. 조기숙 교수는 “아메리칸 드림이건 유러피언 드림이건 모두 서양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맞는 모델을 노 전 대통령은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태욱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이 꿈꾼 ‘코리언 드림’의 정치 영역은 한국형 합의제 민주주의, 경제 영역은 한국형 조정시장경제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형 합의제 민주주의는 국민이 정책 정당을 선택하도록 비례대표제를 손질하는 구조였을 것이고, 한국형 조정시장경제는 예를 들어 노사정 위원회 같은 조직에 비정규직 노동자와 자영업자 대표, 시민단체 대표 등이 모두 참석하는 기관이 결성돼 중요한 이슈를 결정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라는 게 최 교수의 추론이다. 황광우 지리산초록배움터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코리언 드림을 상상한다”면서 “오직 경제성장을 향해서 국가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였던 성장주의적 관행을 버리고 이제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새로운 가치관에 눈을 떠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권력보다 시민사회의 힘 강조
<유러피언 드림>과 ‘유고’를 읽은 최재천 전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꿈꾼 국가의 모델을 보면 지나치게 정치 우위, 시장 우위인 국가에 대한 비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 전 의원은 “유고 내용을 추론해 볼 때 유럽식 사회주의 모델 즉 사민주의를 모두 받아 들이는 것이 아니라 중도보수를 근간으로 사민주의의 장점을 배합하려고 시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전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은 시장경제에 모든 조정을 맡기고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보수쪽의 정부 모델은 아니지만 유럽식의 지나치게 큰 국가도 꿈꾸지 않았다”고 해석했다.

‘한국판 유러피언 드림’에서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의 역할이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고에서도 가장 마지막 단락의 주제는 ‘시민의 역할은 무엇인가’다. 김성환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은 우리 나라가 가야 할 길을 시민들이 깨어있는 속에서 진보의 가치를 구현하는 민주주의로 보았다”고 말했다. 조기숙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은 시민이 깨어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회를 꿈꿨다”고 강조했다. 서갑원 민주당 의원은 “정치권력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선진국의 예를 보면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성숙한 시민사회가 이뤄지고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서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은 바로 이런 시민사회 모델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의 꿈꾸던 ‘사람 사는 나라’는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주의적 모델이 아니다. 꿈을 꾸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 노 전 대통령의 곁에 있었던 인물들의 주장이다. 서갑원 민주당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은 평소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 반칙이 없는 나라, 돈 없고 배경이 없어도 설움받지 않고 차별받지 않으며 자신의 꿈을 키울 수 있는 나라를 꿈꾸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참여정부에서 “지역통합, 계층차별·학력차별·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 서 의원의 설명이다. 조기숙 교수는 “국민들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은 어렵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이 꿈꾸는 나라는 불필요한 경쟁을 하지 않아도 만족하는 나라였다”고 강조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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