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량독서대’ 특허청 전시 중단… ‘이지원’은 기록유출 논란에
"생활 속 발명가 노무현.” 노무현 전 대통령 주변인사들의 말이다. 직업발명가는 아니지만 항상 사물을 관찰하면서 이치를 생각하고 그것을 편리한 장치로 구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안 했다면 무엇을 했겠는가’라는 질문에 생전 노 전 대통령은 “컨설턴트 아니면 발명가”라고 답했다. 특허청의 특허정보검색란을 확인해 보면 실제 그는 두 개의 특허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있다. 개량독서대와 이지원(e知園)시스템이다. 개량독서대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화부락’에 사는 노무현 명의로 낸 특허이고, 이지원 시스템은 ‘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 청와대’ 노무현이 발명자로 등록돼 있다. 이지원 시스템의 특허청 발명 명칭은 ‘통합 업무 관리 시스템 및 이의 운영방법’이다. 노 전 대통령 이외에도 청와대 비서관 및 행정관 4명이 같이 발명한 것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강태영 비서관(현 포스코경영연구소 상무), 민기영 전 청와대 업무혁신비서관실 행정관, 조미나 현 세계경영연구원 이사, 박경용씨 등이다. 현재 청와대가 사용하고 있는 업무시스템인 위민(爲民)은 이지원의 보안과 디자인 등 일부를 바꾼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량독서대의 특허는 두 개다. 1974년 10월 12일 등록된 실용실안과 3일 후 등록한 의장등록이다.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은 2004년 5월19일 ‘발명의 날’을 맞아 개량독서대에 관한 일화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렸다. 고시공부생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실제 이 독서대를 만들어 사업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윤 전 대변인의 글에는 두 사람이 A씨(J씨), B씨로 표기되어 있다. A(J)씨는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으로 추정된다. 윤 전 대변인은 “오래 전 일이라 (누가 누구인지) 잘 기억나진 않는다”고 말했다.
독서대 실용화사업 실패로 끝나
윤 전 대변인에 따르면 “나도 만들어줘”라는 정 전 비서관의 제의에 노 전 대통령은 선뜻 망치를 잡고 직접 독서대를 만들어줬다. 특허등록은 사업을 구상하며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기자본금은 부산의 지인에게 빌린 500만원이었다. 화폐구매력에 따른 물가지수로 계산해보면 2008년 기준으로 약 4221만원이다. 그러나 사업은 망했다. 윤 전 대변인의 글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변호사가 된 뒤 맨 처음 이 500만원을 갚았다. 청와대 기록비서관을 지낸 김정호 (주) 봉하마을 대표는 “그 때도 실패했지만, 지금 다시 하더라도 사업성은 크게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독서대는 책상에 올려놓고 쓰는 책 독서대 형태가 아니라 책상 크기의 거대한(?) 목제 제품이었다. 특허청 관계자는 “당시에는 지금처럼 의자를 놓고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문화가 아니라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책을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노 전 대통령의 발명도 그에 맞게 고안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업에는 실패했지만, 이 독서대는 특허청에 오랫동안 전시되어 있었다. 허동만 전 특허청장(현 전남발전연구원 원장)은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노 대통령 집권 이전부터 실물이 제작돼 테헤란로 특허청 서울사무소에 전시됐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특허청에 따르면 이 독서대는 특허청 ‘발명의 전당’에 2008년 3월 31일까지 전시됐다.
공교롭게도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한 달 만에 치워진 것이다. 새 정권 눈치보기일까. 이에 대해 특허청 관계자는 “상설 전시물은 아니었고, 독서대가 바닥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관리상 애로가 있었다”고 말했다. 결정 과정에서 그 어떤 ‘정치적인’ 의도도 없었고, 관련 실무자가 전결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현재 이 독서대는 일반인들은 ‘구경할 수 없는 장소’에 보관돼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외에도 감 따는 장치, 무릎에 단추달린 등산용 바지, 양복걸이가 달려있는 의자 등을 주변 인사들에게 제안했다. 김경수 비서관은 “감 따는 장치는 가위 모양의 장치가 위에 달려 있어, 아래에서 잡아당기면 와이어로 연결된 가위가 작동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 장치는 실제 만들어져 관저 주변의 감을 따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등산복이나 의자 등의 발명품은 제안 수준에 머물러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주변 인사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자주 말했다. 허동만 전 특허청장은 “코엑스에서 열린 발명품 전시회에 단 둘이 가던 길에 노 전 대통령은 ‘아침마다 머리를 손질하는데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쓰면 바로 머리가 손질되는 모자 같은 건 없나’고 해서 알아본 적이 있다”며 “당시 실제 특허출원 나온 건 없는 것을 확인했다”고 회고했다. ‘감 따는 장치’의 현재 행방은 묘연하다. 윤태영 전 대변인은 “딱 하나 제작되었던 것으로 아는데, 발명 특허 등은 추진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감 따는 장치’ 만들어 실제 사용
더 기구한 운명은 노 전 대통령의 IT 발명품이다. ‘이지원’은 퇴임 직후 기록유출논란에 휩싸였다. 노 전대통령은 14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정치인용 인물종합관리프로그램인 ‘한라1.0’을 발명했다. 몇 차례 개량을 거듭한 이 발명품은 1998년 ‘노하우 2000’으로 업그레이드됐다. ‘노하우 2000’은 일정·명함관리 기능, 메신저, 회계기능 등 자료관리 프로그램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 프로그램에 대한 애착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노 전대통령의 공식홈페이지 ‘사람사는세상’의 웹 주소도 knowhow.or.kr이다.
그러나 퇴임 후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면서 ‘노하우 2000’은 논란에 휩싸였다. 프로그램을 매개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아들 건호씨에게 500만 달러를 건넸다는 것이 검찰이 주장한 ‘핵심 의혹’이었다. ‘노하우 2000’ 업그레이드 작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 ㅇ사 관계자는 “아직 언급할 처지가 아니다”며 말을 아꼈다. 김경수 비서관은 “49재까지는 가급적 거론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이후 우리 쪽에서 (ㅇ사 의혹 관련으로) 할 말은 많다”며 여운을 남겼다.
그가 2년간 준비해 지난해 선보인 정치토론사이트 ‘민주주의 2.0’도 결국 미완의 프로젝트로 남게 되었다. 김종민 비서관은 “(노 전대통령은) 민주주의 2.0에 대해 비공개로 보완작업을 하면서 인맥관리 부분은 노하우 2000을 추가 개발해 붙이는 것도 검토해 보라고 했다”며 “좀더 논의를 해야겠지만 앞으로 관련 재단이 만들어지면 ‘사람사는 세상’과 통합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노 전대통령의 생전 구상을 구체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